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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밑그림

마침내 파란만장했던 공사가 마무리되어 새 성전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감격을 맛봤다. 계속해서 행사가 이어진다. 입당음악회를 끝내고 겨우 한숨 돌린 것 같은데 벌써 5월에 들어서 있었다. 이른바 ‘IMF 금융위기’로 인해 시공사와 타절한 후유증이, 자질구레한 일들을 제법 많이 남겼다. 9월로 예정되어 있는 성전봉헌식 준비만으로도 감당하기 버거웠지만 축성이 끝나면 떠나실 신부님을 위해서라도 잡힌 행사를 소화해야 한다. 어버이 날을 맞아 원로사제를 찾아 뵙기로 한 계획이 그 중에 끼어 있다. 와락 기대가 덮친 것은 말이 나온 첫날이고 시간이 갈수록 자꾸 망설여진다. 25년이 족히 지났다. 그 어른은 어떤 모습이 되어 계실까? 대신학교 본고사를 보기 위해 모처럼의 긴 방학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왔다. 홀가분한 기분..

하느님의 사랑

예전부터 매미우는 소리는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저도 슬퍼서 우는 것이라 생각하니 연민마저 일었는데, 알고 보니 구애의 방편이라 한다. 싫은 표현을 대놓고 할 걸 그랬다. 사랑을 구하는 노래라는 것이 땡볕에 물을 들어붓는다. 사우나독 안에서 바짝 달궈진 돌에 종지 물 떠 붓는 것과 흡사하다. 옥수수 밭이 주는 답답함을 모르면서 시골의 여름을 논하기는 어렵다. 조밀함에 습기가 더해지면 숨막히는 화생방훈련의 '가상현실체험'이 된다. 감자 밭 고랑에 뒹구는 돌멩이가 태양의 열기를 잔뜩 머금고 있다. 자칫 터질 것 같아 옆에 가기가 겁난다. 자갈투성이의 좁은 신작로는 하루 한 번 지나가는 달구지 같은 버스에게 깡마른 몸을 억지로 내준다. 염치없는 막걸리 차가 불쌍한 이놈의 등때기를 하루에도 몇 번씩 밟아 재낀다..

사랑의 약점

‘펀치볼’, 매우 낯선 지명이다.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고, 삼엄한 경계 속에 갇힌 곳, 분단의 냄새가 짙게 나는 남쪽 땅 최북단에 있는 군사시설이었다. 미군 종군기자가 자기 나라의 화채그릇과 모양이 비슷하다 하여 이름 붙여준 ‘해안분지’라는 것을 몰랐다. 그 펀치볼에서 남쪽으로 사십리 남짓 떨어진 곳에 짐을 풀었다. 행정구역 상으로는 인제군 서화면에 속한 마을이지만, 펀치볼까지 가기가, 그것이 속한 양구군의 주읍 보다 훨씬 가까웠다. 사상 최고의 혹서라고 떠는 호들갑은, 숫자를 보고 부리는 엄살이지 싶다. 제법 북쪽이지만 그곳의 여름은 견디기 힘들 만큼 더웠다. 공소 대문을 나서던 발걸음이 유격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포병 대열의 허리춤 앞에서 막혔다. 그 많은 장병 중 가장 많이..

在天吾父

해외여행으로 치면 호랑이가 금단현상에 시달릴 정도쯤 되는 시절이다. 레오나르도다빈치 공항에 도착한 것은 이경이 가까워서였다. 몬테 피올로(Montefiolo), 올리브나무로 둘러싸인 이 작은 산은, 고색이 철철 넘치는 수녀원 건물을 털모자처럼 머리에 쓰고 있었다. 이탈리아 중부의 2월말 밤공기가 못 견딜 만큼은 아니라 다행이다. 시간은 벌써 삼경의 문턱에 닿아 있었지만, 산골 마을 카페의 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얼기설기 엮은 나무의자에 걸터앉아 그곳 사람들이 담근 맥주를 마셨다. 그 짜릿한 맛은, 아쉽게도 내 마음을 사로잡은 별무리의 기억에 묻혀버렸다. 오늘 새벽미사에서 부른 성가가 자꾸 입 속을 맴돈다. 선율은 단순하지만, 가사는 평범하지 않다. “무변해상 별이시요… 보이소서, 성마리아… 영원무궁 ..

복음의 기쁨

서운하고 허전한 마음이 삭기를 기다렸다. 다시 또 돌아서는 것이 두렵다. 그렇게 3년이 더 간다는 주장에 손들어 주는 이들에게 위안을 구한다. 강태공의 낚시를 생각해 보고, 와룡선생의 마음까지 읽으려는 어이없는 생각을 했다. 발기발기 찢어진 나약함의 천조각을 묶어 흉측스러운 허수아비를 여러 개 만들었다. 이래저래 몇 년이 됐다. 어디에도 써먹기엔 싹수가 샛노란 공부를 핑계삼아, 기웃거리는 곳이 생겼다. 딱히 마음에 모시고 싶은 의도도 아니었다. 별 목적도 없이 들인 습관에 쏠쏠한 재미가 붙었다. 콩깍지는 그렇게 씌는 것인가? 그분의 행적과 말씀에 빠져, 잊고 사는 은총을 선물로 받았다. 몽땅 다 행복한 건 아니다. 박쥐처럼 한밤까지 끙끙대다가, 벌건 대낮엔 비실대는 좋지 않은 병을 얻었다. 그래도 머리악..

본조르노 파파 2019.05.14

태양의 찬가

묵상이라는 말을 아무렇게나 쓰고 싶지 않다. 능력이나 자격 이야기를 듣는 것이 몹시 꺼려진다. 관대에 호소해 용서 청하는 것으로 해결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냥 기억이고, 추억이며, 아쉬운 마음이고, 일상에서 만나는 하찮은 생각들이다. 미루고 미루다 여유라는 것이 싣고 온, 생각지도 못한 은총이 몽당연필을 손에 쥐어 주었다. 남아도는 시간이 무심코 흘려보낸 안타까움 속으로 수백 묶음 묻혀버렸다. 발자국을 되짚어 한참을 가보니 사순 첫주가 닿는다. 사순시기를 뜻깊게 보내려 했다고 치장하고 싶지만 자꾸 입술에 침이 발라진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로 내 마음을 끌고 간 「복음의 기쁨」에 감사하고 싶다. 그분의 소식에 맛들인 것은 갓 태어난 강아지처럼 간신히 눈뜬 영어 덕이다. 내 평생 가장 중요한 부분을 여름날 ..

본조르노 파파 2019.05.12

프란치스코의 경제

어제 올린 글에 인용된 ‘소논문’의 다음 문단은 이렇게 이어진다. 점점 심화되는 빈부의 격차,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계층의 증가, 조기 퇴직이나 실직으로 기가 꺾인 중년의 가장, 아예 취직조차 하지 못한 사회 초년병들, 이런 문제들은 이미 우리 교회에도 치유의 책임이 지워진 사회 현상들이다. 도덕과 윤리의식의 실종현상도 보기보다 그 깊이가 심각할 지경에 도달했다. 지하철 안에서 노인과 청년이 다투었다는 기사는 차라리 고전에 가깝게 느낄 정도로 우리는 이 문제에 많이 둔감해져 있다. 살인과 낙태, 성폭행 등은 충격의 도가 전자의 것들보다 조금 더 심하게 받아들여지는 정도일 뿐이고, 웬만한 폭력이나 집단행동 등은 오히려 게임을 즐기듯 보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 외에도 교육문제, 고령화 사회에서의 노인문제,..

본조르노 파파 2019.05.12

순종과 열린 마음

도심에로의 발길이 많이 줄었다. 어쩌다 나가보면 커피장사만 잘되는 것 같다. 점심 값보다 비싼 커피라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실감한다. 나도 커피를 좋아한다. 당뇨와 비만을 조심하라는 유행에 휩쓸려 맛있는 삼박자를 끊은 건 내 커피 이력의 초창기 쪽에 속한다. 친구의 취향에 편승해 뒤늦게 배운 커피 맛이 아마추어세계에선 한 마디 거들 정도가 됐다. 봉투에 새겨진 설명이 기특하다. “진한 초콜릿 풍미와 오렌지 톤의 산미, 농후한 단맛, 입안에 머금었을 때 탄탄한 질감, 부드러운 목넘김을 추구한다.” 다른 하나는 이렇다. “복숭아, 살구 같은 새콤달콤한 과일향과 은은한 꽃향, 밀크초콜릿 같은 단맛으로 따듯한 봄에 어울리는 커피” 그 맛을 이해하고 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럴듯한 말로 아는 체하고 싶은데 뭔..

본조르노 파파 2019.05.11

내가 선택한 그릇

어제는 오밤중이 되기 전에 귀가한 덕에 교황님 말씀을 일찍 준비해 두었다. 다행히 이른 시간에 올라온 기사가 마음에 들어 날을 넘기지 않고 끝냈다. 눈을 뜬 것은 알람이 울리기 한참 전 애매한 시간이다. 다시 잠을 청해 보지만 허사다. 결국 미사 갈 시간이 다가와서야 졸음이 밀려온다. 그래, 오늘은 쉬자. 낮에 할 일이 많아 피곤할 것 같다. 엊저녁에 너무 많이 먹은 것에 핑계를 댄다. 배가 살살 아픈 것도 같다. 본당신부님의 얼굴이 뜬다. 늘 옆에 앉는 노인들의 시선이 팽이처럼 돌고 있는 망설임에 채찍을 가한다. 오늘따라 시작이 늦다. 5분이 한시간이다. 미사시간도 중요한 약속인데 이 많은 사람들의 5분을 합치면 반나절은 되겠다. 남는 것이 시간일 것 같은 노인들을 바쁜 사람들한테 갖다 붙인다. 새벽미..

본조르노 파파 2019.05.10

교회의 미래인 어린이

DDT라는 분말살충제를 몸에 뿌리던 시절을 살았다. 내가 가장 못하는 것이 사물을 정확하게 판별하는 것이다. 자연도감에서 사진으로 본 것 말고는 ‘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겨울이 시작돼서 입은 내복을 봄이 돼서야 벗었다. 말을 꺼내고 보니 다른 이들도 그랬기를 바라는 마음이 몽글몽글 아지랑이처럼 올라온다.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랐어도, 나는 몸바쳐 걔네들을 사육하는 이동식 온실이었다. 아이들을 뉘이고 머리에서 서캐를 잡는 엄마의 모습이 원숭이들이 하는 짓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는 기억은 그런대로 아련한 추억이다. 손주손녀만 생기면 삶이 확 바뀐다. 어쩌면 약속이나 한 듯 SNS앱의 프로필 대문에 애기사진이 걸리고 일정한 주기로 바뀐다. 남의 집 손녀가 자라는 모습을 직접 본 것처럼 훤하게 알고 있다..

본조르노 파파 2019.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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