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뜻 3

사랑이 없으면

우리가 함께 열정을 쏟아 참여했던 운동을 되돌아봅니다. 좋은 날이 많았지만 희뿌연 연기 속에서 더듬고 헤매던 기억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행복해서 웃은 시간이 대부분인 것 같아도, 얼굴 벌개져 날카로운 화살촉에 쓴 말을 담아 쏜 순간이, 꽃꽂이 속 강아지풀처럼 눈에 띕니다. 기쁨, 행복, 우정, 사랑, 이런 것들은 빨랑까 봉지에 담고, 눈물, 걱정, 미움, 분노, 그런 것들은 후회의 통에 넣었습니다. 그 마음과 노력이 모여 있는 방에 ‘봉사’라는 문패가 달렸습니다. 가운데 놓인 묶음은 하늘색 봉투에 들어 있고, 구석쟁이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보자기의 거무튀튀 색깔은 이름짓기가 어렵습니다. 예쁜 방을 만들어 분홍 바구니만 넣을 걸 그랬습니다. 거기에는 ‘사랑’이라는 이름표를 붙여야 어울릴 겁니다. 우리가 ..

아들의 기도

신부님은 면도기를 들이대는 내게 턱을 내맡기셨다. 두번째 입원이다. 한번 꺾인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취임하시던 날 성체조배를 마치고, 환영인사를 위해 성당에 와있던 신자들에게 던지신 제일성이, 120년을 사시겠다는 호언장담이었다. 열심히 생식을 하고 부지런히 걸으신 분이 병원에 누워 계신다. 비서신부님과 점심을 같이했다. 내일 있을 사제인사의 내용을 알아보겠다는 심사다. 못할 짓이라는 걸 모르지 않지만, 새로 오실 신부님께 인사드릴 사람이 없어 대비가 필요했다. 본당이 일주일 넘게 비기 때문이다. 소설 하나를 쓸 만큼 파란만장한 과정을 거쳐 성전건축을 마무리하신 신부님의 새임지가 내일 정해진다. 그 내일은 내가 기획한 성지순례의 첫 날이다. 이 순례는 떠나실 신부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회장단이 ..

나를 찾고 계신다

그저 시오리 정도되는 길이 참 멀기도 했다. 작은 냇물을 건너던 생각이 나지만, 길에 배겨 있는 돌의 크기가 매우 다양했다는 기억이 더 또렷하다. 한번 가보고 싶다며 되뇌이는 말은, 거기를 가기 위해 버스에서 내려야 했던 바닷가 마을을 돌아서는 순간, 안개 같이 흩어져버린다. 해발 삼백 미터가 채 안되는 운봉산 서쪽자락의 작은 마을은 구교우들이 모여 사는 옹기골이었다. 안방과 부엌을 가르는 토벽의 정 중앙에 편지지 한 장 크기의 구멍이 파여 있다. 그 턱에 올려진 작은 호롱이 비리비리 맥없는 불꽃 하나를 밀어 올려, 이쪽 저쪽의 어둠을 간신히 내몬다. 옹기가마의 열기가 식은 지 오래된 이곳 사람들의 삶은, 척박한 밭농사가 대부분이다. 복령 캐러 갔다가 지뢰를 밟아 다리를 잃은 아저씨 이야기를 들으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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