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키시스(Catechesis)

사랑이 없으면

MonteLuca12 2019. 5. 28. 19:20

 

우리가 함께 열정을 쏟아 참여했던 운동을 되돌아봅니다. 좋은 날이 많았지만 희뿌연 연기 속에서 더듬고 헤매던 기억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행복해서 웃은 시간이 대부분인 것 같아도, 얼굴 벌개져 날카로운 화살촉에 쓴 말을 담아 쏜 순간이, 꽃꽂이 속 강아지풀처럼 눈에 띕니다. 기쁨, 행복, 우정, 사랑, 이런 것들은 빨랑까 봉지에 담고, 눈물, 걱정, 미움, 분노, 그런 것들은 후회의 통에 넣었습니다. 그 마음과 노력이 모여 있는 방에 봉사라는 문패가 달렸습니다. 가운데 놓인 묶음은 하늘색 봉투에 들어 있고, 구석쟁이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보자기의 거무튀튀 색깔은 이름짓기가 어렵습니다.

 

예쁜 방을 만들어 분홍 바구니만 넣을 걸 그랬습니다. 거기에는 사랑이라는 이름표를 붙여야 어울릴 겁니다. 우리가 즐겨했던 회의에서, 협력과 평화, 활기와 생명의 풍선을 불어 그 곳간을 꾸미자던 제안을 따르는 게 옳았었습니다. 아쉬움이 많습니다. 바티칸공의회의에서 고민했던 어른들의 마음을 공부하는데 게을렀습니다. 복음화의 전선에서 보병과 같은 임무를 부여받은 우리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더 깊게 토론하지 못했습니다. 평신도 그리스도인, 그 문헌이 모범답안인 것을 알고도 열심히 외우지 않았습니다. 「복음의 기쁨」은 바로 우리를 위한 기본사상이며 전투 매뉴얼인 걸, 너무 가볍게 흘렸습니다. 우리 동네사람들 중에,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는 이웃들 속에, 심지어, 바로 우리 집안에, ‘기쁜소식의 수취인이 살고 있는데도 찾지 못했습니다. 배달 보따리만 주무르다가 우리가 우체부라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누군가 우리를 봉빙놀자라고 놀리고 있습니다. “봉사를 빙자해 자기들끼리 놀기만 하는 자들이란 비웃음입니다.

 

세상은 가만히 있질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불어넣으신 생명이 그 안에 살아 숨쉬기 때문입니다. 이곳 일을 다 마귀의 짓이라고 생각하면 큰일입니다. 부지런히 뛰지 않으면 전세가 뒤집힙니다. 그들이 오히려 우리 손을 잡으러 되돌아올지도 모릅니다. 자칭 복음화의 사도는 라만차의 돈키호테가 되어, 괴성을 지르며 풍차를 향해 돌진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봉사는 성직자를 모시라는 것이 아닙니다. 숙련이나 기술을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뒷담화만 안 해도 사랑의 문패는 때묻지 않을 것입니다. 도원결의처럼 다 함께 손을 잡고 이런 다짐을 하지 못한 것이 참 많이 후회됩니다. 훈수만큼 쉬운 게 없다는 걸 내심 즐기면서 잉크가 말라버린 펜을 마구 놀리고 있습니다.

 

누가 뭐라해도, 우리가 바치는 시간과 노력은 그 자체로 큰 공로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의도하지 않아도 하느님의 마음 속에 담겨 있는 헤아릴 수 없이 큰 사랑이 그렇게 받아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若無愛則於我無益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 夷亭 朴詠茂(아오스딩) 作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에 대한 교황님의 교리교육의 마지막 부분이다이탈리아어 원문을 번역한 영문텍스트를 필자가 우리말로 중역한 것임을 밝힌다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3)

「주님의 기도」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보여주신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불타오르게 하는 기도입니다. 그 불꽃은 세상을 사랑으로 변화시키도록 우리를 이끌어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믿지 않습니다그리스도인들의 신앙에는 무의미한 것이 없습니다. 신앙은 온 세상 모든 이들을 위한 구원의 징표이며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선을 가지고 악을 물리치심으로써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자기자신을 버리고 하느님을 따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겟세마니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괴로워하며 기도하셨을 때와 같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루카 22, 42)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죄로 인해 핍박을 당하셨지만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셨습니다. 순교자들도 재판에서 죽음을 원하지 않았습니다그러나 그분들은 죽음 이후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부활입니다만일 하느님께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힘든 길을 걸으며 아픈 상처와 가시에 찔리는 고통을 경험하겠지만, 그분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그분은 항상 우리 옆에 계시고, 우리 뒤에 계시고, 우리 안에 함께 계실 것입니다믿는 이들에게는 이것은 희망이 아니라 확신입니다하느님께서는 나와 함께 계십니다우리는 항상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루카복음의 비유에서도 똑같이 나타납니다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루카 18, 7-8) 이것이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법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이런 방식으로 돌보십니다우리 모두 「주님의 기도」를 함께 바칩시다.(1)(2)

(1) Vatican News, "Pope Francis General Audience of 20 March 2019," Vatican News, last modified March 20, 2019, https://www.vaticannews.va/en/pope-francis/papal-audience/2019-03/pope-francis-general-audience-of-20-march-2019.html.

 

(2) Zenit, "General Audience of March 20, 2019: Full Text," Zenit, last modified March 20, 2019, https://zenit.org/articles/general-audience-of-march-20-2019-full-text/.

 

 

'카테키시스(Catechesis)'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감과 연대  (0) 2019.05.30
필요한 것을 구하라  (0) 2019.05.29
아들의 기도  (0) 2019.05.28
나를 찾고 계신다  (0) 2019.05.26
내가 곧 간다  (0) 2019.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