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키시스(Catechesis)

필요한 것을 구하라

MonteLuca12 2019. 5. 29. 14:34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라틴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영어에 눈뜬지 1년밖에 안된 햇병아리에겐 엄청나게 무거운 짐이다. 신학교의 1년 짬밥은 대단하면서도 별거 아니었다. 요령이 통하는 틈새가 극히 좁았지만, 그런 걸 찾았다 해도 혼자만 누리라고 감싸줄 덮개가 빤한 세계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힘들게 느껴지는 두번째 해가 두 달 정도 지났을 무렵, 우리의 작은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큰 바위가, 갑자기 날아든 뉴스로 뒤엎어졌다. 서울교구장에 새 주교님이 임명되었고 그분은 우리학교 교정을 착좌식장으로 정하신 것이다. 주교님은 착좌 미사가 봉헌된 후 일주일 간 우리와 함께 사시면서, 당신 신학교생활의 경험담을 옛날이야기처럼 들려주셨다. 그분은 그후 꼭 1년만에 같은 자리에서 추기경 서임 미사를 집전하신다.

 

학교에는 사설은행이 있었다. 방학을 끝내고 돌아오면 가진 돈을 전부 환전해야 한다. 돈을 찍어낸 은행의 총재는 當家神父님(1)이다. 일주일에 한번 여는 매점에서 파는 것이 학용품과 생활필수품 뿐이다. 넉넉히 쓸 만큼 돈도 없었지만, 먹을 것은 아예 없는 곳에서 돈 자랑할 일이 없다. 진폐(眞幣)의 소지가 엄격하게 규제되는 것은 얼마를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인가? 내가 육성으로 직접들은 추기경님의 회고가 신문에는 이렇게 실렸다. “하루는 신학교에서 쫓겨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1원짜리 동전을 갖고 꾀를 냈다. 어차피 내 의지로 들어온 신학교가 아닌데다 난생 처음 떨어져 살아서 그런지 어머니가 몹시 그리웠다당시 우리는 규칙상 개인적으로 돈을 갖고 있을 수가 없었다. 돈은 모두 담당 신부님께 맡겨 놓아야지 만일 돈을 갖고 있다 들키면 집으로 쫓아 보낸다는 얘기를 여러차례 들었다.” (2) 돈에 관한 규칙만이 아니라 성소에 대한 갈등을 겪으신 어른의 말씀이 얼마나 따뜻하게 들렸는지 모른다. 결코 위안이 될 수 없는 말씀이 어린 마음을 흔들어 용기가 솟구치게 만들었다. 희한한 일이다.

 

비록 사본이지만 이 「성신은행권」은 지구상에 몇 장 안 남은 특별한 이다. 이건 더 찍어낼 수 있겠지만, 그 안에 담긴 정신을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철저와 엄격의 상징이었던 교장신부님도 말씀하신 적이 없다. 50년도 더 된 것에 대한 해석이고 그냥 나 혼자만의 부족한 생각이다. 하느님의 뜻을 최우선으로 받들라는 명령이 아니었을까? 오늘 우리에게 들려오는 말씀이다. "그러면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루카 20,25)

 

 

옛날 소신학교에서 사용하던 내부 화폐

 

「주님의 기도」 두번째 부분의 네 개 주제 중, 첫번째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에 대한 교황님의 교리교육을 두번에 나누어 싣는다이탈리아어 원문을 번역한 영문텍스트를 필자가 우리말로 중역한 것임을 밝힌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

「주님의 기도」 두 번째 부분은 인간에게 필요한 것을 하느님께 청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일상 생활의 냄새가 나는 단어, 빵으로 시작합니다.

필요한 것에 대한 간절한 요청으로 시작되는 예수님의 기도는 거지가 구걸하는 모습과 아주 비슷합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이 기도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엄연한 사실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인간은 저절로 생명을 부지하는 피조물이 아니라 매일 양식을 섭취해야 하는 존재라는 점입니다.

성경은 많은 사람들이 요청할 것을 가지고 예수님과 만나기 시작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절제된 기도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인간의 실존적 상황, , 가장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문제들이 기도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에서 많은 사람들 해방과 구원을 청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빵을 청하는 이들, 치유를 원하는 이들, 죄의 사함을 바라는 이들이 있습니다. 또한 시력을 되찾기를 청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다시 살아나길 청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요구와 그들이 겪는 슬픔을 모른 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일용할 양식을 하느님 아버지께 청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이 기도가 어떤 이들에게는 애절한 간청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과 같은 마음으로 이 기도를 바치라고 일러주십니다. 매일 걱정거리를 안고 사는 그들에게 이 기도는 울부짖음과 같지만, 그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부모들이 당장 내일 자기 자녀들에게 먹일 빵이 부족한 마음의 고통을 안고 잠자리에 듭니다. 편안한 아파트 안에서 안전한 가운데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좁은 단칸방에서 생활필수품이 부족한 위태로운 상태에서 바치는 기도라는 것을 머리에 그려보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은 새로운 힘을 보여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이 단계에서 시작됩니다. 그것은 금욕생활을 연습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의 현실적 문제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들의 영혼과 육신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생활필수품이 부족한 이들의 상황을 이해하는 이들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극단적인 신비주의자들조차도 이러한 단순한 청원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 아버지, 우리와 모든 이들에게 오늘 필요한 양식을 주소서. 아울러 물과 약, 집과 일자리도 저희는 필요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청하는 것입니다.(3)(4)

(1) 當家란 일가의 재정을 맡아본다는 뜻으로, 당가신부는 경리담당 신부, 흔히는 교구나 신학교의 경리담당 신부를 가리켰다. (가톨릭사전. "가톨릭사전: 당가신부." GoodNews. Accessed May 29, 2019. http://maria.catholic.or.kr/dictionary/term/term_view.asp?ctxtIdNum=4360&keyword=&gubun=01.)

 

(2) 김원철.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2.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 시절." 가톨릭평화신문. Accessed May 29, 2019.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fid=1455&cat=&cid=190996&path=200305.

 

(3) Vatican News. "Pope Francis General Audience of 27 March 2019." Last modified March 27, 2019. https://www.vaticannews.va/en/pope-francis/papal-audience/2019-03/pope-francis-general-audience-of-27-march-2019.html.

 

(4) Forrester, Virginia. "Holy Father's General Audience: Full Text." Zenit. Last modified March 27, 2019. https://zenit.org/articles/holy-fathers-general-audience-full-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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