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키시스(Catechesis)

아들의 기도

MonteLuca12 2019. 5. 28. 06:28

 

 

신부님은 면도기를 들이대는 내게 턱을 내맡기셨다. 두번째 입원이다. 한번 꺾인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취임하시던 날 성체조배를 마치고, 환영인사를 위해 성당에 와있던 신자들에게 던지신 제일성이, 120년을 사시겠다는 호언장담이었다. 열심히 생식을 하고 부지런히 걸으신 분이 병원에 누워 계신다.

 

비서신부님과 점심을 같이했다. 내일 있을 사제인사의 내용을 알아보겠다는 심사다. 못할 짓이라는 걸 모르지 않지만, 새로 오실 신부님께 인사드릴 사람이 없어 대비가 필요했다. 본당이 일주일 넘게 비기 때문이다. 소설 하나를 쓸 만큼 파란만장한 과정을 거쳐 성전건축을 마무리하신 신부님의 새임지가 내일 정해진다. 그 내일은 내가 기획한 성지순례의 첫 날이다. 이 순례는 떠나실 신부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회장단이 준비한 것이다. 내일 점심 전에 사제총회가 끝날 테니 공항에서 전화하라는 양해를 받아 들고 돌아섰다.

 

신부님을 찾아뵌 건 순례에서 돌아온 바로 다음 날이다. 바람이 조금 불긴 했지만 약간 낡은 주택의 툇마루에 먼지가 살포시 앉아있다. 의례적인 인사만 드리고 사제관을 나오는 마음이 무겁다. 결과를 듣고 개운하지 못했던 머리가, 그 원인을 조금 전에 찾았다. 이례적으로 인사 발표가 늦어 고도를 잡은 항공기가 울란바토르 상공까지 가고 나서야 기내전화를 통해 신부님의 함자를 받았다. 덕분에 첩보영화 같은 여행경력을 하나 붙였다

 

잡곡 몇 가지를 생식하시던 신부님이 뜻밖에 잘 드신다. 부임하신지 반년만에 처음으로 사제관 밖에서 하시는 식사다. 빈말처럼 드린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신 것도 의외인데, 성당에서 우리집 앞까지 걷는 거리와 소요시간을 정확히 알고 계신다. 공원길을 따라 여기까지 자주 다녀가신 것이다.

 

예사롭지 않은 일들이 예상치도 못한 가운데 일어났다. 성전 건축을 하자마자 꼭2년만에 본당이 분리되었다. 갈 곳이 없으니 두개의 본당이 한 성전에서 3년을 넘게 같이 살았다. 성전이 없어 미뤄둔 견진성사를 사흘연속 거행한 보기 드문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공동체다. 은퇴 전 마지막 소임을 다 마치지 못하고 한 지붕 두가족의 혼란한 시기에 하느님께 가신 신부님의 선종도 평범하지 않았다. 기쁨, 평안, 행복과 함께 슬픔, 걱정, 외로움, 고통의 감정 모두를 당신 허리 뒤 바지춤에 감추고 사신 조용한 분이다. 120년이든 70년이든 사는 날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세상이 바라는 멋진 모습과 인기몰이에 아주 무디셨던 신부님이 이 속물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억하고 있다. 그토록 열심히 바치시던 신부님의 기도도 늘 조용했다는 것을

 

石火光中 ( 부싯돌이 반짝이는 찰나  –  짧은 인생 ),  夷亭 朴詠茂 ( 아오스딩 )  作

 

「주님의 기도」 세 번째 주제로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에 대한 교황님의 교리교육의 두번째 부분이다이탈리아어 원문을 번역한 영문텍스트를 필자가 우리말로 중역한 것임을 밝힌다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2)

하느님은 모호하지 않으며, 수수께끼처럼 답을 찾기 어려운 분이 아닙니다. 또한 해독할 수 없는 방법으로 세상의 미래를 계획하지 않았습니다그분은 분명하십니다우리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기도」 세 번째 표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성경은 정말로 세상과 관련된 하느님의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에는 믿음이 충만하고 인내하시는 하느님의 의지를 입증하는 성서구절과 인용문들이 모여 있습니다. (2821-2827항 참조디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서간에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1티모 2, 4) 의심할 여지가 조금도 없는 하느님의 의지, 그것은 인류의 구원, , 우리 모두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하느님은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왜 그러시겠습니까? 우리를 당신께로 잡아당기어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 안에서 우리 각자 모두에게 가까이 계시고, 당신의 손길로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느님의 마음 속에는 헤아릴 수 없이 큰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고 하는 기도는, 마치 노예처럼 굽실거리며 머리를 숙이고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자유롭게 되기를 바라시며 당신의 사랑으로써 우리를 해방시켜 주십니다. 실제로 「주님의 기도」는 노예의 기도가 아니고 아들의 기도입니다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사랑의 계획 안에 포함된 아들을 위한 기도입니다우리가 변화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낙인 찍혀 항복의 뜻으로 이 기도를 한다면 얼마나 슬픈 일이겠습니까? 쫓겨날 운명에 처하여 자포자기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선함과 생명과 구원을 원하시는 하느님에 대하여 열렬한 믿음으로 가득 찬 기도입니다용감한 기도이며, 전투적인 기도입니다. 세상에는 하느님의 계획을 따르지 않는 상황이 너무도 많기 때문에 용감하게 기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 모두는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이사야의 예언을 이렇게 바꾸어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 이 세상을 보십시오. 전쟁과 속임수와 부정이 만연해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당신이 우리를 위해 선한 일을 하실 것을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께 간청합니다주님, 세상의 계획을 뒤엎고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아무도 전쟁을 배워 익히지 못하도록 해 주십시오! "(이사 2, 4 참조) 하느님께서는 평화를 원하십니다.(1)(2)

(1) Vatican News, "Pope Francis General Audience of 20 March 2019," Vatican News, last modified March 20, 2019, https://www.vaticannews.va/en/pope-francis/papal-audience/2019-03/pope-francis-general-audience-of-20-march-2019.html.

 

(2) Zenit, "General Audience of March 20, 2019: Full Text," Zenit, last modified March 20, 2019, https://zenit.org/articles/general-audience-of-march-20-2019-full-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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