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이름 3

두려움을 떨쳐내고

아내가 챙겨준 옷을 싸 들고 일찍 집을 나선다. 길에서 허비하는 시간을 아껴 운동까지 할 수 있도록 지혜를 짜서 만든 습관이다. 오늘은 혼자 대충 챙겨 나왔다. 이불에 얼굴을 묻은 사람은 남편을 버릴 기세다. 긴 세월 엄청나게 큰 부담을 준 어머니의 사고만 아니었으면, 그렇게까지 완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작은애를 출산하고 한달 반 만에 시작된, 혹독한 간병이 3년 이상을 끌었다. 이제 두 아이도 어느정도 키웠는데 또 다른 십자가를 질 수 없다는 주장이다. 내가 왜 모를까? 그것만 아니라면 수천 번이라도 양보하고 싶다. 두번째 비닐하우스 성전을 지었다. 처음 지은 자리에 성전건축을 시작하려고 새 터로 이사한 것이다. 시멘트를 채운 사각 깡통을 다리 삼아 널빤지를 얹은 의자나, 바람 숭숭, 덥고 춥고, 조..

하느님, 저의 희망

안마당에 우물이 있었다. 내가 얼마나 맛있는 물을 먹고 자랐는지 안 것은 집을 떠난 다음이다. 우리집 닭은 참 고은 노래를 불렀다. 여명 알리미, 닭우는 소리에 대한 환상은 얼마전 동남아 여행 중에 깨졌다. 아침마다 온기가 가시지 않은 달걀을 상납받았으니 우리 닭만 예뻣는지도 모른다. 사랑도 고마움도 다 제 잇속 차림이다. 어머니는 구정물 처리를 위해 돼지도 한 마리 키웠다. 냄새는 좀 났지만 덩치가 산 만한 녀석은 성당너머 우리 밭에 뿌릴 거름을 부족하지 않게 생산했다. 단차가 있는 뒤뜰의 윗단에는 작은 소대 규모의 장독대가 한결같이 점호를 준비한다. 단층 둘레의 장식은 채송화와 봉숭아의 몫이다. 나팔꽃과 맨드라미, 호박꽃이 주인이었지만 양귀비꽃도 손님으로 함께 살았다. 성당에서 흘러내린 비탈의 경계에..

기도의 밑그림

마침내 파란만장했던 공사가 마무리되어 새 성전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감격을 맛봤다. 계속해서 행사가 이어진다. 입당음악회를 끝내고 겨우 한숨 돌린 것 같은데 벌써 5월에 들어서 있었다. 이른바 ‘IMF 금융위기’로 인해 시공사와 타절한 후유증이, 자질구레한 일들을 제법 많이 남겼다. 9월로 예정되어 있는 성전봉헌식 준비만으로도 감당하기 버거웠지만 축성이 끝나면 떠나실 신부님을 위해서라도 잡힌 행사를 소화해야 한다. 어버이 날을 맞아 원로사제를 찾아 뵙기로 한 계획이 그 중에 끼어 있다. 와락 기대가 덮친 것은 말이 나온 첫날이고 시간이 갈수록 자꾸 망설여진다. 25년이 족히 지났다. 그 어른은 어떤 모습이 되어 계실까? 대신학교 본고사를 보기 위해 모처럼의 긴 방학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왔다. 홀가분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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