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키시스(Catechesis)

두려움을 떨쳐내고

MonteLuca12 2019. 5. 23. 22:05

 

아내가 챙겨준 옷을 싸 들고 일찍 집을 나선다. 길에서 허비하는 시간을 아껴 운동까지 할 수 있도록 지혜를 짜서 만든 습관이다. 오늘은 혼자 대충 챙겨 나왔다. 이불에 얼굴을 묻은 사람은 남편을 버릴 기세다. 긴 세월 엄청나게 큰 부담을 준 어머니의 사고만 아니었으면, 그렇게까지 완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작은애를 출산하고 한달 반 만에 시작된, 혹독한 간병이 3년 이상을 끌었다. 이제 두 아이도 어느정도 키웠는데 또 다른 십자가를 질 수 없다는 주장이다. 내가 왜 모를까? 그것만 아니라면 수천 번이라도 양보하고 싶다.

 

두번째 비닐하우스 성전을 지었다. 처음 지은 자리에 성전건축을 시작하려고 새 터로 이사한 것이다. 시멘트를 채운 사각 깡통을 다리 삼아 널빤지를 얹은 의자나, 바람 숭숭, 덥고 춥고, 조금도 다르지 않은 성전이었지만 옮긴 것 자체로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비닐하우스 성전에도 성탄은 오고 있었다. 늘 하던 대로 교중미사 후 신부님과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 전화 받는 신부님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주일학교 성탄제 준비를 하던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어찌 아이를 탓하랴? 큰 길에 붙은 성전의 열악한 조건이 어린 초등학생의 아까운 생명을 하늘로 보냈다. 내가 주관해 장례를 치러 준 그 예쁜 꽃은 아녜스. 새성전의 축성식에 그 아이의 영혼이 초대되었다. 아녜스의 희생은 우리 공통체의 은총이 되어 다시 내려왔다.

 

엄마의 태중에서 건강하게 자라 준 늦둥이의 출산이 다가왔다. 나는 회사 일에 쫓겨 늘 바빴다. 뒤늦은 공부까지 욕심내, 사서 고생을 하고 있었다. 집에서 식사해 본 것이 언제인지 모른다. 집의 일은 다른 나라 사정과 다를 바 없다. 회의 중인 나를 부르는 직원의 숨이 턱에 찼다. 같은 여의도 안에 있는 병원이 멀기도 하다. 산부인과 선생님의 표정이 모든 걸 말하고 있었다. 아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하루낮과 하룻밤의 긴 투쟁을 했다.

 

며칠이 지나 간호부장 수녀님의 전화를 받았다. 무엇을 의심하는지 뻔하다. 그 애기는 끝내 자연분만을 통해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분만실에 들어가기 전에 심장 뛰는 일을 멈춘 착한 아이였습니다.” 분만실 안에서 신부님은 그 아기에게 세례를 주셨다. “아녜스”, 내가 원해 붙인 이름이다. 우리 늦둥이 딸은 그 이름 밖에 없다. 그 뜻이 '하느님의 어린양' (Agnus Dei)이라는 걸 아녜스의 아빠는 알고 있다. 그 천사는 한번도 보지 못한 아빠의 믿음을 지켜주었다. 

 

信(믿음), 夷亭 朴詠茂(아오스딩) 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에 대한 교황님의 교리교육 마지막 부분이다. 이탈리아어 원문의 영문 번역 텍스트를 필자가 우리말로 중역한 것임을 밝힌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3)

우리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라고 기도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 첫 번째 청원에는, 아버지 하느님의 아름다움과 엄위에 대한, 예수님의 온전한 경외심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실존을 깨닫고 아버지로서 사랑하기를 바라는 갈망이 담겨있습니다. 동시에, 그분의 이름이 우리 자신과, 가족과, 우리의 공동체와, 온 세상 안에서 거룩하게 빛나게 되시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우리를 성스럽게 만들고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또한, 우리의 증거를 통해 이 세상에 하느님의 거룩함을 드러내고 그분의 이름을 빛나게 하는 분도 하느님 자신입니다하느님은 거룩하시지만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삶이 거룩하지 않다면, 그것은 엄청난 모순입니다하느님의 거룩함이 우리의 행동과 삶에 반영되어야 합니다나는 그리스도인이고 하느님은 거룩한 분이지만, 내가 끔찍한 짓만 한다면 그건 옳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짜증나는 것일 뿐, 도움이 되지 않는 해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거룩함은 확대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힘으로 세상의 장벽을 신속하게 깨주시기를 우리가 간청하는 것입니다예수님께서 설교하기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치른 대가는 사람을 괴롭히는 마귀의 저항이었습니다마귀들이 소리지르며 말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마르1,24).

이 거룩함은 종전에 본적이 없는 것으로, 당신 안에 가두어 두지 않고 밖으로 드러내 보이십니다. 예수님의 이 거룩함은, 연못에 돌을 던질 때 동심원으로부터 퍼지는 물결처럼, 넓게 퍼져 나갑니다. 본디 영원하지 못한 마귀의 힘은 수명을 다해, 더 이상 우리를 해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힘센 분이 오셔서 당신의 집을 차지하실 것입니다. (마르3, 23-27 참조). 그 힘센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집안을 지키도록 힘을 주십니다.

기도는 모든 두려움을 떨쳐내게 해 줍니다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성자께서는 우리를 돕기 위해 팔을 들고 계시며, 성령께서는 세상의 구속을 위해 은밀히 역사하십니다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우리가 가진 것이 너무나 확실하기 때문에 불안해하고 주저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예수님은 나에게 당신의 생명을 주셨고,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십니다. 이 이상 더 확실한 것이 있겠습니까악마는 두려워서 떨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다 잘된 일입니다.

(1) Vatican News, "Udienza Generale 6 Marzo 2019," Vatican News, last modified March 6, 2019, https://www.vaticannews.va/it/papa-francesco/udienza-papa/2019-03/papa-francesco-udienza-generale-padre-nostro-regno-mitezza.html#play.

 

(2) Virginia Forrester, "General Audience: Pope Reflects on 'Thy Kingdom Come' (Full Text)," Zenit, last modified March 6, 2019, https://zenit.org/articles/general-audience-pope-reflects-on-thy-kingdom-come-full-text/.

 

 

'카테키시스(Catechesi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곧 간다  (0) 2019.05.25
긍정적 징후  (0) 2019.05.24
하느님, 저의 희망  (0) 2019.05.22
기도의 밑그림  (0) 2019.05.21
하느님의 사랑  (0) 2019.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