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조르노 파파

태양의 찬가

MonteLuca12 2019. 5. 12. 19:30

묵상이라는 말을 아무렇게나 쓰고 싶지 않다. 능력이나 자격 이야기를 듣는 것이 몹시 꺼려진다. 관대에 호소해 용서 청하는 것으로 해결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냥 기억이고, 추억이며, 아쉬운 마음이고, 일상에서 만나는 하찮은 생각들이다미루고 미루다 여유라는 것이 싣고 온, 생각지도 못한 은총이 몽당연필을 손에 쥐어 주었다. 남아도는 시간이 무심코 흘려보낸 안타까움 속으로 수백 묶음 묻혀버렸다. 발자국을 되짚어 한참을 가보니 사순 첫주가 닿는다. 사순시기를 뜻깊게 보내려 했다고 치장하고 싶지만 자꾸 입술에 침이 발라진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로 내 마음을 끌고 간 「복음의 기쁨」에 감사하고 싶다. 그분의 소식에 맛들인 것은 갓 태어난 강아지처럼 간신히 눈뜬 영어 덕이다. 내 평생 가장 중요한 부분을 여름날 소나기처럼 적셔준 신학교의 가르침과, 13살 까까머리 소년이 그토록 힘들게 배우기 시작했던 라틴어가 큰 용기를 주었다. 하느님의 자비와 섭리가 놀랍다. 한글판 바티칸뉴스가 목마름을 다 해소하지 못한 죄로 안내자가 되었다. 스마트한 세상의 利器는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교황청 문을 열어주는 길잡이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이런 여건과 환경이 내게 주신 큰 은총이며 또 하나의 성소임을 안다. 늙기 시작하며 맞는 성소주일의 감회가 새롭다.

 

화장실의 추억이 다채롭다. 성당과 맞닿은 비탈 자락에 웅크리고 있던 우리집 변소는 여느 그것과 다르지 않았지만 포근한 고향의 추억에 파묻혀 있다. 신학교의 거기에선 규칙을 위반하고 밤공부를 했다. 처음 하는 고백이다. ‘잿변소는 내가 경험한 화장실 중 두번째로 깨끗한 환경지킴이였다. 옛날과 달리 목욕탕과 역할을 분담하는 그곳은 내 생각의 공장이다. 머리가 생산활동을 열심히 하는 핵심공정은 씻는 시간 가운데 있다. 하느님께는 죄송하지만 미사 중의 분심도 만만치 않은 뇌리의 진동자다. 단지, 둘 다 생각을 담아둘 수 없는 결정적 흠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흘러가버린 단상들이 아깝다. 어차피 놓친 것이니 마음에 둘 필요도 없지만 강하구까지 흐트러지지 않고 잘 나가서 내 고향 바다 앞에 고여 있으면 좋겠다. 내 어린 마음이 그토록 '출고향'을 원했지만 죽으면 그곳에서 살고 싶다. 언제나 마음은 동쪽 끝으로 간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그분을 좋아하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 그분이 좋아하시는 태양의 찬가를 노래할 수 있어 영광이다. 어르신과 함께 하는 나날이 즐거웠다.

 

태양의 찬가

"지극히 높으시고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주여!
찬미와 영광과 칭송과 온갖 좋은 것이 당신의 것이옵고,

호올로 당신께만 드려져야 마땅하오니 지존이시여!
사람은 누구도 당신 이름을 부르기조차 부당하여이다.

내 주여! 당신의 모든 피조물 그 중에도,
언니 햋님에게서 찬미를 받으사이다.
그로 해 낮이 되고 그로써 당신이 우리를 비추시는,

그 아름다운 몸 장엄한 광채에 번쩍거리며,
당신의 보람을 지니나이다. 지존이시여!

누나 달이며 별들의 찬미를 내 주여 받으소서.
빛 맑고 절묘하고 어여쁜 저들을 하늘에 마련하셨음이니이다.

언니 바람과 공기와 구름과 개인 날씨,
그리고 사시사철의 찬미를 내 주여 받으소서.
당신이 만드신 모든 것을 저들로써 기르심이니이다.

​쓰임 많고 겸손하고 값지고도 조촐한 누나,
물에게서 내 주여 찬미를 받으소서

아리고 재롱되고 힘세고 용감한 언니 불의 찬미함을
내 주여 받으옵소서.
그로써 당신은 밤을 밝혀 주시나이다.

내 주여, 누나요 우리 어미인 땅의 찬미 받으소서
그는 우리를 싣고 다스리며 울긋불긋 꽃들과
풀들과 모든 가지 과일을 낳아 줍니다.

당신 사랑 까닭에 남을 용서해 주며,
약함과 괴로움을 견디어 내는 그들에게서 내 주여 찬양 받으사이다.

평화로이 참는 자들이 복되오리니,
지존이시여! 당신께 면류관을 받으리로소이다.

내주여! 목숨 있는 어느 사람도 벗어나지 못하는
육체의 우리 죽음, 그 누나의 찬미 받으소서

죽을 죄 짓고 죽는 저들에게 앙화인지고,
복되다, 당신의 짝 없이 거룩한 뜻 좇아 죽는 자들이여!
두번째 죽음이 저들을 해치지 못하리로소이다.

내 주를 기려 높이 찬양하고 그에게 감사드릴지어다.
한껏 겸손을 다하여 그를 섬길지어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 최민순 신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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