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조르노 파파

순종과 열린 마음

MonteLuca12 2019. 5. 11. 07:34

도심에로의 발길이 많이 줄었다. 어쩌다 나가보면 커피장사만 잘되는 것 같다. 점심 값보다 비싼 커피라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실감한다. 나도 커피를 좋아한다. 당뇨와 비만을 조심하라는 유행에 휩쓸려 맛있는 삼박자를 끊은 건 내 커피 이력의 초창기 쪽에 속한다. 친구의 취향에 편승해 뒤늦게 배운 커피 맛이 아마추어세계에선 한 마디 거들 정도가 됐다. 봉투에 새겨진 설명이 기특하다. 진한 초콜릿 풍미와 오렌지 톤의 산미, 농후한 단맛, 입안에 머금었을 때 탄탄한 질감, 부드러운 목넘김을 추구한다.” 다른 하나는 이렇다. 복숭아, 살구 같은 새콤달콤한 과일향과 은은한 꽃향, 밀크초콜릿 같은 단맛으로 따듯한 봄에 어울리는 커피그 맛을 이해하고 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럴듯한 말로 아는 체하고 싶은데 뭔가 오그라든다. "하나는 낮은 음 도처럼 묵직하지만, 하나는 높은 음 라에 샵 하나 붙여 놓은 것처럼 가볍다.”

 

제법 오래 전, 새로 출범하는 평협의 쇄신 TFT에 불려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도적 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을 맡아 공부한 적이 있다. 발표와 강의를 위해 준비한 소논문 중에 커피 이야기를 한 줄 썼다. 우리는 극도로 다변화된 사회 속에 살면서 복잡다단한 사목적 환경에 부딪혀 있다. 세계 주요 도시가 하나의 문제를 가지고 동시에 기뻐하고 슬퍼하는가 하면, 바로 옆집 이웃의 사정은 전혀 알지 못한다. 서울-뉴욕-런던의 패션이 같은 물결을 타고, 트위터 안에서는 지구 반대편의 낯 모르는 사람들과 하나의 관심사를 가지고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눈다. 최빈국의 농민들이 피땀 흘려 재배하여 헐값에 팔아 넘긴 커피를 우리는 글로벌 브랜드가 찍힌 잔에 따라 그 농민들이 들으면 까무러칠 가격에 하루에도 몇 잔씩 마신다. 여기에서 불화와 불행의 싹이 트고 있다. 그로 인한 상처들은 지독히 비복음적인 양태로 어디선가 곪고 있고, 종래에는 또 하나의 「9.11 테러」로 이어질지 모른다.”

 

어제 글에 얹은 바오로 사도의 회심을 교황님께서 강론하셨다. 구원역사를 뒤흔든 거대한 변화였다고 말씀하신다. ‘동티모르’, ‘공정무역과 같은 단어가 커피와 함께 떠다닌다. 그 작은 콩 한 알에 상극의 애환이 담겨있다. 비단 커피뿐일까? 부지불식 간에 인간 존엄성에 번호를 매겨 놓은 세상에 갑자기 하늘에서 번쩍이는 빛이 나타나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군상이 차고 넘친다. 바오로 사도는 절대 순종하는 믿음과 활짝 연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우리를 초대하신다. 당신이 받은 성소가 오늘 우리에게 이어졌으니 이젠 일어나라고

 

냉철하지만 냉정하지 않은 바오로 사도

금요일 카사 산타 마르타에서 열린 미사에서 교황은 그리스도인들은 바오로 사도의 모범을 따라 주님의 목소리에 순종하라고 권고했다교황의 강론은 이날 미사의 제1독서에서 봉독된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일어난 바오로 사도의 회심에 관한 것이었다. 바오로 사도는 이방인에 대해 냉철한 입장이었지만 냉정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회심의 순간은 구원역사의 여정에서 일어난 거대한 변화입니다. 그것은 이방인과 비유대인,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교회의 보편성과 개방성을 드러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를 매우 중요하게 보시고 이 사건을 섭리하셨습니다.

일관성과 열의
교황은 바오로 사도의 성격을 법의 순수함에 매료된 단호한 분이라고 말한다. 정직하고 한결같은 분으로 까다로운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이다"무엇보다도 사도는 하느님을 향해 열려 있었기 때문에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그리스도인을 박해한 것도 그것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습니다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확실하게 믿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 집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바오로 사도가 바치신 열의입니다그는 주님의 목소리에 마음을 열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밀어붙였습니다. 그의 행동에 나타나는 또다른 특징은 그가 온순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온순한 분으로 절대 냉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열린 마음
교황은 바오로 사도가 완고했을 망정 마음이 차가운 분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분은 하느님의 표징에 언제나 마음을 열어놓고 있었다바오로 사도는 믿음에 불타는 그리스도인을 감금하고 살해했다. 그러나 주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그는 마치 어린아이 같이 되어 자기를 주님께 맡겼다"눈이 멀게 된 그는 예루살렘 성문을 나와 사흘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주님의 말씀을 기다렸습니다. 그는 침묵하며 확신을 가지고 주님의 말씀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주님, 제가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그리고 그는 다마스커스에서 만났던 분과 그분을 따르는 이들을 만나러 갑니다. 그리고 어린이처럼 교리 교육을 받고 세례를 받습니다힘을 되찾은 그분이 이제는 무엇을 하셨을까요그분은 침묵했습니다그리고 나서 아라비아에 가서 기도하셨는데 그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몇 년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마음을 열었던 그분은 우리 삶의 본보기입니다."

성령의 은사
교황은 오늘날 교회가 가야할 길을 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애쓰는 용감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말한다"우리가 새로운 길을 찾읍시다주님을 따르는 길이라면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그것은 기도와 순종과 하느님께 마음을 여는 방향으로 깊이 있게 나아가는 길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교회 안에서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 교회는 성령의 크고 작은 은사를 입어 영적투쟁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은사로 무장해야 합니다.
” 
교황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주님께 마음을 여는 은총을 구하며 기도했다. 두려움 없이 큰 일을 해낼 수 있는 은총과 함께, 작은 일에 세심하게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은총을 주소서

출처: Vatican News, 10 May 2019, 11:49, 번역 장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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