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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음성

부모님을 뵙는 것은 교구장님께 인사 드리고 난 다음 며칠 뿐이다. 여름방학엔 교구 신학생이 단체로 MT를 한다. 죽을 때까지 함께 살아야 하는 식구들의 우애를 깊게 하려는 조치다. 나는 방학 때마다 시골 공소로 파견명령을 받았다. 거기서 거기지만 깡시골에서 살아보지 않은 나는 한달 남짓 오지생활에서 참 많은 것을 보고 들었다. 산골 아이들의 여름 간식은 옥수수가 전부다. 그 아이들에게 감자는 간식이 아니고 생명부지를 위한 귀한 먹거리다. 나는 '잿변소'를 경험한 흔치 않은 사람이다.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대단히 위생적이다. 그곳은 아이들이 무엇을 먹었는지 정확히 알려준다. 특히 옥수수 알갱이는 거의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재와 함께 밭으로 간다. 바닷가 꼬마들의 주전부리는 내게 퍽 익숙하다. '도루묵 알'..

본조르노 파파 2019.04.26

소중한 선물

산벚꽃이 '봄천지'를 수놓았다. '다소곳'의 전형 같은 이 꽃을 언제부터 내가 보았는지 알아내지 못한다. 남한강을 따라 동쪽으로 가는 길이 기억에 밟힌다. 윤중로의 벚꽃이 밉다는 생각은 안 했다. 눈곱만큼이라도 그런 마음이 있다면 그건 사람들이 벌떼같이 몰려드니 지가 엄청나게 예쁜 줄 알고 교만해졌나 싶은 나만의 의심이다. 하느님이 주신 새 옷을 입고 산들의 허리춤이 푸르러 갈 무렵에야 산벚꽃은 모습을 드러낸다. 걔네 가슴에 예쁜 '부로치'를 붙인다. 이름표 옆에 '콧물수건'도 끼워준다. 단추를 달아주고 머리핀을 꽂는다. 희뿌연 도시의 가스실을 벗어나야 만날 수 있으니 일년에 몇번 볼 기회도 없다. 걔네 팔에 힘이 붙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야리야리한 꽃잎을 다 따먹고 시침 뚝 뗄 것이다. 며칠 남지 ..

본조르노 파파 2019.04.25

교황님의 관심사

휴가는 떠나기 전 기분이고, 커피는 콩 갈 때의 향기다. 군사도로 미시령 밑엔 제법 큰 미군부대가 있었는데, 그곳은 우리 본당 공소 중 하나였다. 교중미사가 끝나면 복사하러 거기 가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신부님의 지프를 타는 재미를 놓칠 수 없었고, 미사 장소인 식당을 휘감는 코코아 냄새는 촌놈들이 절대 알 수 없는 특권층의 경험이었다. 도시락에 찐 우윳가루만 아는 혀가 처음 맛본 코코아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먹는 것이 아니었다. 슈호프는 수용소에 들어와서 그걸 절실히 느꼈다. 음식을 먹을 때는 그 진미를 생각하며 먹어야 좋은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이 조그마한 빵 조각을 먹듯이 먹어야 한다. 조금씩 입 안에 넣고 혀 끝으로 이리저리 굴리며 양쪽 볼..

본조르노 파파 2019.04.24

천사들의 월요일

부활 지나 두번째 맞는 아침이다. 인고의 계절 끝자락에 내 마음은 엠마오로 향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제자들을 흉내낸다. 눈을 뜨며 무의식적으로 짧은 기도를 읊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떠오른 기억이다. “Benedicamus Domino!” 그것은 내가 탯줄 떼고 11년 6개월만에 처음 들은 기상 나팔이다. 이른 새벽, 엄청나게 넓은 침실을 온통 뒤덮고도 남았던 이 기도의 계송(啓誦)은 우리 '침실장' 형님의 우렁찬 목소리에 실려 있었다. 같이 늙는다는 말이 이래서 생긴 것일까? 그때 고3 형님은 ‘삼촌’ 같았다. 어린 동생들 보살피러 중간중간 끼어 있던 ‘삼촌’들과 함께 살던 8호 침실은 80명을 수용하는 집단 숙소였다. 신학생이 되었다고 어제의 오줌싸개가 늘 해오던 짓을 하루아침에 그만둘 리 없..

본조르노 파파 2019.04.23

부활장엄강복

“Urbi et Orbi” 교황님의 장엄강복을 뜻하는 말이다. 字句 대로는 ‘도시와 전세계에’라는 의미의 라틴어이다. 그야말로 교황님은 전 세계를 아우르는 분임을 실감하게 한다. 전통에 따라 오늘 베드로 광장에서 전세계의 사람들에게 보내신 부활 메시지와 축복은 온통 인류가 안고 있는 고통과 어려움에 관한 것이다. 굳이 남의 골치 아픈 문제로 걱정하실 필요가 있나 싶다. 그렇다고 해결될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교회가 무엇인가? 이 세상 속에서 교회가 할 일은 어떤 것인가? 우리와는 도무지 연결되지 않는 교황님의 부활 메시지가 그런 의문을 갖게 한다. 80년 전 스페인의 젊은이들은 정치, 사회적으로 혼란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섰다. 뿐만아니라 무신론자들의 공격으로 부서진 교회의 본 모습을 찾기 위..

본조르노 파파 2019.04.22

어디로 갈 것인가?

부활성야미사도 「파스카성야미사」로 전례용어가 바뀌었다. 이번엔 옛 것이 좋고 편하다는 뜻이 아니라, 알아 두어야 하겠다는 다짐이다. 「망예수부활」이란 용어를 잊지는 않았다. “오 복된 탓이어라” (Felix Culpa) 나는 부활찬송의 이 구절을 좋아한다. “참으로 필요한 죄, 그리스도의 죽음이 씻은 죄, 너로써 위대한 구세주를 얻게 되었도다.” 내가 오늘 짓고 있는 죄를 선조 아담의 원죄에 붙여 넣고 싶다. 부활의 의미가 천 배는 뻥튀기 될 것 같다. 교황님은 부활이 묘비를 걷어내고 무덤의 돌을 굴려서 치우는 것을 기념하는 축제라고 말씀하신다. “복된 탓”에 매달리는 억지를 부릴 때가 아니다. 돌 치우러 가자. 주님께서 부활하셨으니까… 넘어지면 일으켜 주실테니까... Vatican News에 실리는 교..

본조르노 파파 2019.04.21

세상의 모든 십자가

그놈의 속물근성은 나이와 역주행이다. 이놈에게 필요한 영양공급원이 넘쳐난다. 교만과 욕심, 미움과 질투, 잘난체와 자랑질… 제멋대로 떠들면 말이 되고 가짜 뒷담화가 사실로 둔갑하는 것을 어찌하랴? 늙은 것들이 더하다. 십자가는 나만 지고 흉측한 놈은 떵떵거리고 사니 배알이 뒤틀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고 분하다. 십자가를 앞에 두고 그렇게 떠들었다. 말로만 사순시기, 입으로만 성주간을 보냈나 보다. 금년에는 조금 더 특별하게 지내자고 마음먹었던 '마흔날'이었다. 그것 밖에는 못된다. 그 속물이 누구냐? 이 세상에 널려 있는 십자가, 누구나 예외없이 모두가 지고 있는 십자가, 그걸 다 모아 골고타 언덕까지 메고가신 분이 있다. 오늘부터 다시 생각하자. 내가 진 십자가는 도대체 무엇인지? 교황님이 가르쳐..

본조르노 파파 2019.04.20

'기름부음' 받은 이들

외출 외박이 허락된 것은 꽤 나중의 일이다. 성주간이 시작되는 날, 갇힌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바깥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가고 오는 데 이틀을 잡아먹는 거리 보다도 도무지 집까지 가는 것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시절이었다. 그래도 나는 갈 곳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몸에 밴 성주간의 ‘예절’은 딱히 새로울 것이 없었지만 생전 처음으로 남의 성당에서 살아본다는 것은 떨리는 경험이었다. 그보다 외박을 하고 있다는 것에 마냥 신났다고 해야 옳다. ‘성체건립대례’, 옛 용어가 늘 친근하다. 그런데 성유축성미사는 뭐라했는지 기억에 없다. 많은 이들이 ‘사제서품식’에서의 감동만 가슴에 품고 신품성사의 지고한 가치를 생각하는 데에는 소홀하다. 우리의 목자들은 이 미사에서 성품에 올려졌을 때의 서원을 갱신..

본조르노 파파 2019.04.19

십자가 위에서

보릿고개 곳간 비듯 새벽미사 참례하는 숫자가 슬금슬금 줄더니 급기야 어제 아침에 작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성당 뒤 켠 반쪽의 전등이 꺼진 것이다. 하필 성삼일을 하루 앞둔 날 이런 일이 생겼다. 성당이 그렇게 큰 것도 아닌데 내가 봐도 너무 휑하다. 게다가 복사하는 아이 둘과 전례봉사자를 빼고 나면 내가 제일 영계다. 앞으로 10년 뒤엔 앞쪽 전등이라 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런저런 쓰잘데없는 걱정에 분심투성이의 엉터리 미사를 했다. 오늘 ‘성목요일’은 사제들의 축일이다. 성체성사와 함께 신품성사를 세우신 날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모든 신부님들께 축하인사를 해야 할 텐데 오늘은 별로 내키지 않는다. ‘사제들의 인사적체’라는 엉뚱한 이야기가 있다. ‘부주임 사제’의 범위를 넓힌 것은 이런 맥락과 ..

본조르노 파파 2019.04.17

아, 노틀담!

루이자는 윌이 떠나고 나서야 그가 생전에 쓴 편지를 파리 시내에 앉아 읽는다. “반드시 프랑 부르주아 거리의 카페 마르키에서 크루아상과 커다란 카페 크렘을 앞에 놓은 채 읽을 것.” (소설 『미 비포 유』의 에필로그 중에서) 지극한 사랑으로 전신마비의 삶을 보살펴준 여인이 파리에 살 수 있도록 사랑의 보답을 하고 애절한 내용을 담아 거기서 받게 맞추어 보낸 편지다. 30년도 더 전에 파리 복판에서 길을 잃고 당황한 적이 있다. 출장 중에 주일을 만나 성당에 갔다가 겪은 일이다. 분명히 호텔로 돌아올 길을 머릿속에 그려 두었는데 어쩜 그렇게 골목골목이 다 똑같을까? 대가가 컸지만 미사는 궐하지 않았다. 지금도 생각난다. 적잖게 어두운 성당 안이 요즘 여의도의 벚꽃 길처럼 온통 하얗다. 쉽게 만날 수 없는 ..

본조르노 파파 20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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