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에서 지뢰 밟듯 도처에 친척이 널려 있는 걸 몰랐다. 언필칭 구교우 집안은 ‘모퉁이의 머릿돌’(사도 4, 11)을 골라 잘 다듬어 두었다가 일찌감치 하느님께 바치는 가문의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1년을 넘게 살면서도 아래 윗반을 합해 열명도 더 되는 핏줄들끼리 서로 모르고 살았다. 방학을 끝내고 돌아온 같은 반 친구가 느닷없이 사죄를 구한다. 아재를 몰라보고 싸웠던 패륜에 대해 아버지께서 내리신 보속을 받고 온 것이다. 친구이자 동창생인 조카신부님의 전화를 받았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사제의 직무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겸손에서 우러나오는 자성과, 은퇴를 앞두고서야 깨닫는 아쉬움이 귀에 매달린 수신기 밖으로 철철 흘러 넘친다. 가슴이 먹먹한 걸 내색하지 않았다. 배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