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삶의 흔적

MonteLuca12 2019. 9. 5. 22:50

비무장지대에서 지뢰 밟듯 도처에 친척이 널려 있는 걸 몰랐다. 언필칭 구교우 집안은 모퉁이의 머릿돌’(사도 4, 11)을 골라 잘 다듬어 두었다가 일찌감치 하느님께 바치는 가문의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1년을 넘게 살면서도 아래 윗반을 합해 열명도 더 되는 핏줄들끼리 서로 모르고 살았다. 방학을 끝내고 돌아온 같은 반 친구가 느닷없이 사죄를 구한다. 아재를 몰라보고 싸웠던 패륜에 대해 아버지께서 내리신 보속을 받고 온 것이다. 친구이자 동창생인 조카신부님의 전화를 받았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사제의 직무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겸손에서 우러나오는 자성과, 은퇴를 앞두고서야 깨닫는 아쉬움이 귀에 매달린 수신기 밖으로 철철 흘러 넘친다. 가슴이 먹먹한 걸 내색하지 않았다. 배우고 공부한 것에 의존하는 복음선포에 한계를 느낀다는 고백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부대끼고 상처 입으며 살아온 40년 사제생활, 그 이전부터 아프게 겪어온 실패와 좌절, 실망과 후회가 녹아든 삶 전체가, 당신께 맡겨진 소박한 산골 신자들과 진정으로 나눌 수 있는 기쁜 소식이라고 믿는 신념을 쌍수 들어 동의한다. 조카는 계속해서 아재에게 진솔한 속내를 연다. 투박하고 거친 말이, 솔직하고 꾸밈없는 삶의 흔적이, 말씀과 구원에 목마른 신자들의 눈물과 교감할 수 있다는 영적 지혜가 가득 담겨 있었다.

 

복음의 증거, 그것은 모두의 사명이다. ‘모두’는 평신도를 포함하는 ‘하느님 백성’의 전 구성원을 말하는 것이다. 제2차바티칸 공의회의 교회관은 평신도에게 맡겨진 삼중사명을 분명히 밝히고, 그 사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나이 들어가며 부쩍 늘어가는 소외감과 허전함을 한탄하다가, 문득 깨닫는 뜻밖의 은총, 나는 조카신부님과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이걸 확인한다. 서로가 주는 위로와, 각자가 받는 용기를 전파에 태워서 나눴다. 그 무엇보다 오늘 나에게 주시는 ‘시간’이 참으로 소중한 것임을 안다. 돌이켜 보니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시간’에 대해 지독한 목마름을 안고 살았다. 오늘 나는 천금만금의 시간을 가진 부자가 되었다. 아재는 조카의 적극적 권유에 용기를 얻어, 삶의 자리에서 예언자적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자고 마음 먹는다. 

 

오늘 새벽 교황님의 소박한 모습을 읽었다. 내가 얻은 재산을 푹푹 써서 그 분을 따라가고 싶다.

 

엘리베이터에 갇힌 교황


교황이 기내를 순회하며 기자들과 인사를 나누는 시간은 존경과 친근감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비공식적 담화를 통해 뉴스거리가 생기는 계기가 된다.


모잠비크 행 기내 상황

웃어 넘길 수 있는 작은 사고가 있었다. 지난 주일 교황이 엘리베이터에 갇혀 있었다는 소식이 전 세계에 전해졌는데이 뉴스(?)는 이제껏 해온 삼종기도에 관한 교황님의 담화 중 가장 특이한 내용이었다. 삼종기도가 10분 이상 늦게 시작된 사연을 교황은 재미있게 설명한다. 긴급출동한 정비기술자들이 교황을 구출해 낼 때까지 25분 동안 좁은 공간에서 참고 견뎌야 했다는 것이다. 결국 교황은 12 7분에 성 베드로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창문에 모습을 드러내며 사과인사를 했다.

우리가 아파트에서나 경험할 것 같은 전압강하가 교황에게도 발생했다광장에 모인 사람들로부터 가장 먼저 박수를 받은 사람은 바티칸의 소방관이다. 그는 우연히 발생한 이 엄청난(?) 사건에 즉각적으로 대처했던 장본인이다. 결국 이날의 작은 사고는 이런 분들의 노력이 모여 행복한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또 다른 좁은 공간

기내의 객실은 좁은 공간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비좁은 곳에서 교황은 의전의 격식을 깨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교황청 출입기자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이 베테랑 기자들은 보편교회의 수장인 교황 옆에서 인간적인 믿음을 쌓는 시간을 가졌다.

기내를 순회하며 동승한 기자들과 악수하는 중에 로이터통신의 필 푸엘라 기자가 교황이 자기를 기자들의 부사령관으로 지명했다는 대화내용을 공개했다. 교황 앞에는 흰색, 빨간색, 노란색 리본이 펼쳐져 있었는데 이것은 소방관들이 일하는 구역을 지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리본이다정감 어린 농담을 나누며 웃음이 넘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수십장의 사진 속에 보관되었다.

[역자 주] 엘리베이터에 갇힌 사건을 빗대어 좁은 공간에 갇힌 자신을 구해줄 소방대원으로 기자를 비유한 농담

선물과 응답

교황은 선물과 담화를 나누던 중 지나가는 말로 프랑스, 라 크로이誌 니콜라 세네즈 기자가 쓴 책에 대해 언급했다. 저자가 비행기 안에서 직접 교황께 선물한 이 책의 제목은 미국은 교황을 어떻게 바꾸려 하는가?’였다. 교황은 이미 이탈리아 신문 메사제로(Messaggero)에서 책에 관한 내용을 읽어 알고 있었다. 이 책은 현실에 대한 비평과 비판을 담고 있다. 교황청 대변인 마테오 브루니는 이런 비판에 대한 교황의 생각을 전했다. “비판받는 것은 언제나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특히 지식이 풍부한 사상가나 중요한 국가가 제기하는 비판은 더욱 그렇습니다.”

출처: Vatican News, 04 September 2019, 18:45번역 장주영

https://www.vaticannews.va/en/pope/news/2019-09/pope-francis-mozambique-departure-rome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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