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300

초대받은 잔치

잘난 체하는 모습이 눈꼴시다. 자랑인지 허풍인지 뻔한 소리를 쉴 새없이 내뱉고, 인심인지 생색인지 모두가 아는 짓을 거리낌없이 해댄다. 소설 같은 영웅담을 늘어 놓는 얼굴이 참으로 뻔뻔하다. 지가 살아온 과거를 속속들이 알고, 무슨 짓을 하고 사는지 훤히 알고 있는데 심장이 두껍기도 하다. 눈도 깜짝하지 않고 해대는 거짓말이 역겨워 속이 뒤집어진다. 점잖게 뒤로 물러서 있는 잘난 사람은 빈 깡통이 질러 대는 소리에 귀를 막는다. 의전용 차량이 주차장 자리를 축내며 서있고, 진품을 뺨치는 명품 핸드백의 짝퉁이 거리를 활보한다. 방학을 앞둔 중학생들의 예약러시가 강남 어느 지역의 성형외과를 달군다. 쌍꺼풀은 기본이고 웬만한 연예인 못지않은 견적을 요청한다. 공항에 겹겹이 쌓인 여행용 가방이 깊은 산의 단풍처..

교황님의 묵상 2019.11.06

부활 묵상

“개나리가 피었네. 어쩐 일이야.” 11월 들어서도 여러 날이 지났는데 거짓말 같은 소리를 듣는다. 그것도 그리 낮지 않은 산 중턱에 피어 있는 노란 꽃이 비리비리 원래 제 모습은 아니다. 사실 그 방면에 둔한 나는, 그 것이 그 놈인지 확신하지 못했지만 여럿이 다 그렇다고 하니 그러련 여기고 돌아섰다. 반나절이 지났는데도, 잔뜩 움츠렸던 얇고 작은 꽃잎의 모습이 애련히 떠오른다. 가엽게 여기고 애처로워하는 마음이, 무미건조, 삭막한 내 가슴에 한줌 젖은 흙덩이처럼 남아있었나 보다. 이건 이래야 하고, 저건 저렇게 있어야 한다고 믿고 살았다. 거꾸로 가고 반대로 사는 것들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 데 꽤 긴 세월이 필요했다. 오래된 믿음이 바뀌는 것을, 이제는 그리 희한하게 느껴지도 않는다. 멀찌..

교황님의 묵상 2019.11.05

카타콤바

길고도 길었던 과정이 끝나간다. 마지막 시험과 자료 제출에 분주한 동창들의 모습이 보인다. 침실에도 화장실에도 성당을 올라가는 계단에서도 바쁘게 움직이는 이들이 눈에 띈다. 개중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도 있고 삼촌 같았던 선배의 얼굴도 보인다. 하나같이 새로 맞춰 입은 수단자락을 휘날리는 종종걸음 속에 다정했던 모습을 감췄다. 엄숙한 것이 아니라 싸늘한 분위기가 우리의 따뜻했던 보금자리를 식힌다. 시간이 앞뒤로 흔들리고 위-아래 세상이 뒤섞였다. 오래 묵은 짐을 싸면서 어머니께 전화를 건다. 언젠가 사용했던 가장 작고 두툼한 ‘폴더폰’이 손에 잡힌다. 아무리 애를 써도 전화가 안 걸린다. 단축번호도, 초성검색도 먹히질 않는다. 틀림없이 새로 산 휴대폰이 주머니에 있었는데 훑고 뒤져도 헛수고다. 고향집..

교황님의 묵상 2019.11.02

모든 성인, 모든 영혼

제성첨례(諸聖瞻禮)라는 용어가 정겹다. ‘모든 성인 대축일’의 옛말이다. 위령성월을 열면서 이틀 연속 우리는 천상교회와 지상교회의 통공을 묵상한다. 바티칸 내사원장 추기경님은 그 원천이 삼위일체 신비라고 가르치시면서, 내일과 모레 축일을 지내는 동안 이 신비가 현실화된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초등학교를 마치고 출가할 때까지, 주일미사를 빼놓고 본당의 미사는 모두 새벽에만 있었다. 위령의 날 봉헌되는 세 대의 미사 복사를 하고, 학교까지 뛰어가야 했다. 새벽같이 메고 간 책가방은 제의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각을 염려해 서둘러 가방을 메어 주시던 신부님의 커다란 손길이 따뜻한 기운으로 머리를 감싼다. 마우로 피아첸차 추기경님의 글을 오래 전에 읽은 적이 있다. 다시 보는 이 어른의 말씀이 꽤 심하게 ..

교황님의 묵상 2019.10.31

바티칸 사도문서고

전문가가 아니라 해도 “아카이브”라는 용어가 그리 낯설지 않다. 본래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 “기록 보관소”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아마도 이 용어에 친숙한 요즈음 사람들은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말로 이해할 것이라 믿는다. 백업과 함께 데이터의 이동 보존을 위한 기법의 한 갈래이다. 이사를 하거나 집정리를 할 때마다 책을 싸고 옮기는 것이 큰 일이다. 주기적으로 거처를 이동해야 하는 신부님들로부터 책을 정리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짐을 줄인다는 핑계 속에 책읽기가 힘들어졌다는 고백이 숨어있는 것 같다. 가급적 평가의 수위를 낮추지 않으려, 눈이 침침해진 나이와 조용히 앉아 책을 보게 놔두지 않은 환경에 애매한 책임을 전가하며 동병상련을 나눈다. 니콜라오 추기경님의 저술이 담긴 저장매체를 새로..

교황님의 묵상 2019.10.30

구름에 오르는 기도

내가 처음 타본 비행기는 YS-11이라는 이름의 터보 프로펠러 기종이다. 노선 항공기가 많지 않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북한이 저지른 납치사건이 일어난 이후 보안검색이 하도 까다로워, 비행기 탑승은 어린 나에게 기말고사 치르듯 부담이 큰 연례행사였다. 작은 가슴을 팽팽하게 부풀리던 큰 설렘은 절대 공짜가 아니었다. 엄청난 소음과 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대가로 요구했다. 대류권까지 올라간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보는 구름세상이 참으로 맑고 깨끗하다. 내 고향 설악보다는 낮지만, 지금 사는 공원 옆 동산에 비해선 꽤 높은 산들이 수도 없이 이어진다. 봉우리 사이에 펼쳐진 평원에 같은 색깔, 같은 질감의 성당을 그려 넣는다. 우리 성당 정문 맞은편에 계신 성모상을 모셔왔다. 내가 놀던 마당엔 하얀색 조약돌을 뿌렸다. ..

교황님의 묵상 2019.10.28

희망의 원천이신 성모님

교회 안의 우스개 소리 중 하느님도 모르시는 네 가지 불가사의가 있다. 원본도 정설도 없으니 내가 틀린 소리를 해도 무어라 할 사람이 없어 안심이 된다. 세상에 수도회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신다는 이야기가 그 중 하나다. 의외로 수도회 신부님들에 관해 묻는 분들이 많다. 우리나라 교회상황 때문일 텐데, 알다시피 교황님도 수도회 출신 사제다. 내가 어렸을 적 본당 신부님들도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이었다. 하느님도 모조리 파악하시지 못한 수도회의 사제와 선교사들이 세상을 복음화하는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하셨는지는 따로 공부해야 할 일이다. 수유리 산꼭대기에 있는 수녀원에 대한 기억이 50년 세월로 인해 흐려졌다. 나와 윗반 형에게는 아주머니고, 아랫반 조카에게는 할머니 수녀님을 뵈러 카르멜 수녀원을 찾..

교황님의 묵상 2019.10.27

열려 있는 교회

누구든, 언제든 만나기만 해서 기쁜 것은 아니다. 기분이 상한다는 말이 아니라 感興이 그다지 크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뜻이다. 기다려지고 설레는 만남이 있는가 하면 찜찜하고 내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어쩌다 만났지만 맨송맨송한 느낌만 들 때가 있고, 자주 봐도 싫지 않은 사람이 있다. 인간사 참 엉클어진 게 많다. 어색하고 불편한 만남은 중요하고, 반갑고 즐거운 만남은 먹고 사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식이 살림을 떼어 나간지 반년이 채 안됐다. 저희들 말로는 ‘독립’이란다. 결심했다는 말을 처음 들을 땐,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울컥 솟아오르는 것을 감추지 못했다. 위로 누나 셋이 다 떠나고, 마지막 남은 막내누나가 시집가겠다고 선언하던 날, 뒤집혔던 심통과 닮은 것도 같았다. 데리고 있..

교황님의 묵상 2019.10.24

교회의 재정

최근 경제에 관해 부쩍 늘어난 국민들의 관심이 예전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지난 2년여 동안 새로운 경제정책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또 다른 느낌으로 체험하고 있다. 사회과학의 특징을 감안하면, 이론과 실제가 같지 않은 것이 이상하지 않을 때가 많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연스럽게 느끼기도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떻게 이어질지는 예측하기가 난감하다. 경제학을 배우면서 아주 의아하면서도 크게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표’가 정책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이론이었다. 國安과 民福의 가치가 정치적 利害에 자리를 내줄 수 있고, 때로는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국가적 위기관리의 의무도 무시될 수 있다는 현상적 관찰이, 학문의 영역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위정자들의 ‘섬김 정신’은 가냘프게 모양만 갖추고, 진..

교황님의 묵상 2019.10.23

전교는 명령

돌이켜 보니 몹시 부끄럽다. 이유와 핑계가 다양하지만, 나는 내 출신과 과거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소년기부터 청년이 될 때까지 길들여진 독특한 삶은, 완전히 딴 세상 안으로 쉽게 녹아들지 못했다. 손에 닿는 모든 것이 도전의 대상이었고, 눈에 띄는 모든 사람이 경쟁의 상대였다. 어떤 이 하나도 나를 도우는 사람은 없었고, 모두는 나의 적군이었다. 그것은 병적이었고 콤플렉스 증상이 틀림없었다. 회사라는 전혀 새로운 세상을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공개된 장소에서 성호를 긋지 않았다. 신앙을 가진 사람임을 감추려 했던 것은 아니다. 보고 있는 눈들이 나를 유난한 인물로 여기지 않기를 바랐다고 하는 것이 맞다. 어려서 어른들의 종파적 논쟁 속에 성모님에 관한 이야기가 소재로 등장하는 것이 매우 싫었다. 성모님..

교황님의 묵상 2019.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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