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300

가난한 이들의 빵

“얘야, 오늘부터는 너를 ‘빵과 포도주의’ 마르첼리노라고 부르마.” (바오로딸 큰나무 시리즈, 마르첼리노의 기적 중에서) 52년 만에 다시 읽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에도 도서관은 있었다. 믿을까 싶지만 순위경쟁과 입시전쟁에 시달려야 했던 초등학교 시절, 내게는 도서관을 드나들며 책을 읽을 만큼 여유가 없었다. 중학교에 진학해 책읽기에 맛을 들이고 나서, 처음으로 시작한 영적독서가 ‘마르첼리노의 기적’이다. 읽고 또 읽었다. 울다 말고 다시 울었다. 바짝 조여져 통증을 짜내던 가슴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이, 내 평생 간직해온 예수님의 마음을 그 자리에 새겨 놓았다. 지난 봄, 부활축일을 지내고 ‘신비와 기적’에 관한 英文 전자책을 한권 샀다. 그걸 읽으며 계속 생각나는 것이 어릴 적에 본 동화책의 기적 ..

교황님의 묵상 2019.10.17

위선에서 벗어나기

같은 새벽이라도 세상의 밝기가 달라졌다. 같은 시간에 눈을 떠도 어둠 속에서 느끼는 기분이 다르다. 얼토당토아니한, 말도 안되는 꿈이 가시지 않는다. 온통 머리 속을 헤집어 놓고, 사지를 갈기갈기 찢을 듯 사방에서 잡아당기는 무엇인가에 붙들려, 한참을 침대머리에 앉아 있었다. 수십가지 일들이 바닥을 맴돌고, 수백명의 얼굴이 천장을 메웠다. 여기가 어딘지, 지금이 언젠지, 어질러진 생각의 초점이 잡히지 않는다. 몽유병 환자처럼 비척대며 움직여 눈을 씻는다. 새벽공기가 차다. 몇일 전까지 상쾌했던 느낌이 오한으로 바뀌었다. 속도를 내어 걷는다. 피하고 싶은 것이 감기였을 수도 있다. 콕 집어낼 순 없지만 털어내고 싶은, 막아내야 하는, 그 무엇으로부터 멀어지려는 노력에 정신을 집중했다. 덕분에 조금 더 일찍..

교황님의 묵상 2019.10.16

‘비리 프로바티’

가시방석이라는 말이 적합할지 모르겠다. 앉아있기 불편한 나만의 특별한 자리가 있다. 동창신부님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할 때가 그렇다. 혼자 교중석에 앉아 있어야 할 때면, 제단 위에 있는 동창들과 오랜 기간 같은 꿈을 꾸며 함께 살았던 시절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그래서 아무나 불쑥불쑥 제단에 올라가는 오늘날 성당 안의 풍경은 아직도 내 눈을 몹시 거스르는 모습이다. 몇 년 전 미국 동부 메릴랜드의 한 성당에서 동창신부님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한 적이 있다. 친구신부님 모친의 구순축하 미사였다. 내 마음을 드러내 보인 일이 없지만, 귀신같이 속내를 읽고 안쓰럽게 여긴, 구순 어머니의 아들 신부님이 나에게 ‘부제품’을 주셨다. 그래서 미국의 신부님 동생들은 나를 “부제님”이라고 부른다. 그 이야기를 아..

교황님의 묵상 2019.10.16

그리스도께로 돌아서기

도심을 떠나 사업장을 외곽으로 옮길 때는 서운한 마음이 적지 않았다. 비용을 꽤 많이 줄여준 효과도, 시끌벅적한 도시생활이 주는 편의와 오랫동안 몸에 배인 인간관계를 잘라내는 허전함을 이겨내기에 부족했다. 유배 온 죄인들의 심정을 헤아린다. 그나마 사무실 뒤편과 맞닿은 야트막한 동산이, 자동차의 매연 대신 맑은 산소를 제공해 줄 것이란 기대가 있었고, 때론 산책을 즐겨 보겠다는 꿈도 꾸었다. 쥐꼬리만큼 신선한 공기를 얻어 마시는 대가가 크다. 무성한 숲은 곳곳에 모기와 들벌레를 양산하는 훌륭한 서식처를 품고 있다. 햇볕 따사로운 초가을, 직원들과 야외 점심자리를 제공했던 마당도 아쉬움을 달래 줄 퍽이나 새로운 환경이었다. 그 자랑하고 싶었던 사치스런 연회는 과거 몇 년에 걸쳐 받은 모기의 공격을 한꺼번에..

교황님의 묵상 2019.10.10

주교 서품, 추기경 서임

어제 교황님은 열세분의 새로운 추기경님을 서임하셨다. 이 신임 추기경님들은 지난 9월 1일 삼종기도 직후 교황님이 임명을 발표하신 바 있다. 서임을 보도하는 Vatican News의 영어 기사는 새 추기경의 탄생을 ‘create’라는 동사를 사용하여 썼다. 하루 전날 네 분 주교님의 서품미사를 전하는 기사에 사용된 ‘ordination’이 서품식이란 뜻을 가진 것과는 차이가 있다. 성직의 품계는 부제, 사제, 주교가 있고, 대주교, 추기경, 교황은 모두 주교품에 올려진 분들이다. ‘대주교 임명’, ‘추기경 서임’, 이라는 보도의 용어에서 눈치챈 것으로 공부를 가름해도 될 것 같다. 선출직인 교황만 거기에 맞는 단어를 쓴다. 또 하나의 특이한 점은 추기경 서임이 이루어진 예식이 ‘주교서품미사’와 달리 ‘공..

교황님의 묵상 2019.10.05

주님의 증인 (2)

단풍나무가 단풍의 대표 자리를 내놓은 것 같다. 맑고 밝은 빨간색에 대한 아쉬움도 그렇지만, 개체수가 그 지위를 유지 못할 정도로 줄었다. 오히려 가을의 이미지는 노란색이 되어버렸다. 자작나무 잎도 은행나무 같이 노랗게 물드는지 몰랐다. 단풍의 나라 캐나다 서편 로키는, 온통 이 가을색이 물들어 장관을 이룬다. 매일같이 산책하는 동산에 얼마전부터 시커먼 청솔모가 노닌다. 작은 토종 다람쥐의 귀여운 모습을 자주 볼 수 없겠다는 염려가 커진다. 지난 봄 공원 연못에서 화통을 삶아 먹은 듯이 질러 대던 황소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듣고 생겨난 걱정이, 가을 동산 오솔길 바닥에 판박이가 되어 떨어진다. 차분하고 풍요로웠던 이 계절의 들녘을 닮은 마음은, 도심을 가득 메운 군중의 발걸음에 짓밟힌다. 귀를 찢는 대형 확..

교황님의 묵상 2019.10.05

주님의 증인

말 그대로 ‘십인십색’이다. 생각이 각자 다르고 재능도 아주 다양하다. 꽃밭에 어우러진 꽃들을 보며 걔네들의 크기와 색깔, 나를 쳐다보는 눈길이 각기 달라 더 예쁘다는 것을 알아채며, 하느님의 창조가 기획단계부터 그렇게 정해진 것이란 생각을 한다. ‘전교’란 단어를 들으면 부모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낚시만 담그면 입질이 오던 시대이긴 했지만, 그분들 신앙의 핵심은 기도와 전교였다. 안방 벽, 십자가 밑에 붙어있지 않았던 부모님 인생의 좌우명을 대신 이렇게 지어드리고 싶다. “눈뜨면 전교, 잠들면 기도” 시대적 환경이 전교 사명의 무게를 조절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중차대한 사명은 다르게 해석해야 하는 갈래가 있을 수 없다. 내가 열심히 참여했던 꾸르실료운동은 ‘복음화’라는 용어만 사용하며 그 의미에 ..

교황님의 묵상 2019.10.04

'복음 주일' 제정 (2)

뒤져보면 가지고 있는 묵주가 작은 성물가게 하나를 내도 될 만큼 많을 것이다. 사무실과 차에도 하나씩 두었지만,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의 기도 실적이 가장 우수하다. 요즈음엔 손목에 끼는 팔찌 묵주를 즐겨 사용한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빠트리는 실수를 줄일 수 있고, 눈에 잘 띄어 손이 자주가는 효과도 있다. 전문가가 만든 것을 뺨칠 정도로 잘 만든 이 묵주는, 내 친구 신부님의 작품이다. 현명한 일을 하셨다. 한알 한알 정성껏 묵주를 묶은 분을 위한 기도는, 한 조각뿐일지라도 절대 빼먹지 않는다. 내가 아는 원로사제 한 분은 ‘무접합 철사공예’로 십자가를 만드신다. 그 어른은 당신의 재주가 모아오는 정성을 나누어 멕시코와 필리핀 오지에 사는 가난한 이들을 돌보신다. 그 십자가는 눈에 확 뜨이지 않는다...

교황님의 묵상 2019.10.02

'복음 주일' 제정

'단독'과 '속보'라는 딱지를 달은 기사가 이렇게 많은 적이 있었나 싶다. 왠만한 소식과 논평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습관이 붙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이야기를 따로 들어야 한다는 옛말은 머잖아 진리의 목록에 들 것 같다. 교황님 소식도 따끈따끈해야 더 맛있을 거란 생각의 강요를 떨치지 못한다. '특별 전교의 달'을 시작하는 날, '속보'를 전하기 위해 서둘렀다. 우리 시간 엊저녁에 올라온 Vatican News의 기사다. 내일 다시 추가 내용을 붙일 예정이다. '복음 주일' 제정 9월 30일 발표된 교황의 자의교서 「그들에게 나타나시다」(Aperuit illis)는 연중시기 세번째 주일을 하느님 말씀을 공부하고 전파하는 축일로 지내기로 공표했다. [역자 주] 새 자의교서가 어제 발표되어 아직 우리말 공..

교황님의 묵상 2019.09.29

기술과 윤리

처음엔 알파고가 이기기를 바랐다. 약자를 응원하는 동정심에서 우러나온 마음이다. 판이 거듭되면서 생각이 달라진다 이렇게 쉽게 편을 바꾼 적이 없다. 선거에서도 평생을 변함없이 한편에 투표했고, 하다 못해 야구도 응원팀을 갈아탄 적이 없다. 끊임없이 성능개선을 이어오며, 기대 이상의 편의를 제공해 준 디지털 기술에 품었던 고마움이, 바둑선수 알파고로 인해 섬뜩한 느낌으로 뒤집힌다. 나는 전문가를 뺀 동세대의 사람들 중에서 컴퓨터와 가장 가깝게 살아온 사람임을 자부한다. 원고지에 글을 쓰고 고치는 일에 누구보다 익숙했던 내가, 문장이나 문단을 통째로 이리저리 잘라 붙이는 기능에 홀딱 반하고 말았다. 수요예측분석을 위해 다변수회귀분석을 하느라 책상 전체를 뒤덮고도 모자랐던 「훌스캡」(foolscap)紙는 「스..

교황님의 묵상 2019.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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