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오늘부터는 너를 ‘빵과 포도주의’ 마르첼리노라고 부르마.” (바오로딸 큰나무 시리즈, 마르첼리노의 기적 중에서)
52년 만에 다시 읽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에도 도서관은 있었다. 믿을까 싶지만 순위경쟁과 입시전쟁에 시달려야 했던 초등학교 시절, 내게는 도서관을 드나들며 책을 읽을 만큼 여유가 없었다. 중학교에 진학해 책읽기에 맛을 들이고 나서, 처음으로 시작한 영적독서가 ‘마르첼리노의 기적’이다. 읽고 또 읽었다. 울다 말고 다시 울었다. 바짝 조여져 통증을 짜내던 가슴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이, 내 평생 간직해온 예수님의 마음을 그 자리에 새겨 놓았다.
지난 봄, 부활축일을 지내고 ‘신비와 기적’에 관한 英文 전자책을 한권 샀다. 그걸 읽으며 계속 생각나는 것이 어릴 적에 본 동화책의 기적 이야기다. 주문해 받은 책이 옛날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예쁘게 꾸며져 있지만, 다행히 내용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것을 읽는 地空居士의 마음도 52년 전 소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에 놀란다. 희한하게도 그 대목에 가서는 마음에 간직해 두었던 그날의 눈물이 다시 살아나, 그 때보다는 커진 가슴을 흠뻑 적신다. 작은 빵 한 조각이 이어준, 다락방 예수님과 소년의 우정 이야기를, 내 마음대로 실화라 믿고 평생을 살았다. “무지개 다리 너머로”, 마지막 챕터에 달린 타이틀이다. 여기에서 나누는 예수님과 마르첼리노의 대화가 단순하지만 애절하다. 다섯 살 꼬마와 예수님의 사랑이 참으로 예쁘고 또 슬프다.
“그럼 뭘 해 줄까?”
“엄마가 보고 싶어요.”
평생을 그랬듯 오늘도 먹고 산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 강냉이 죽과 도시락에 찐 우유가루를 먹고 자랐다. 된장 항아리에서 커온 구더기가 쌀벌레와 상봉한 멀건 국 속에 말려 있는 밥을 떠먹으며 배를 채우던 시절도 있었다. 격식과 품위를 지키는 식사의 사치는 옛 것이 되었고, 수수하고 평범한 뒷골목 음식이 더 당기는 나이가 되었다. 대충 먹고 산다면서 맛을 찾고, 불어나는 체중을 걱정하면서 식탐을 이겨내지 못한다. 잔뜩 부풀은 고무풍선 같은 배를 하늘로 향하고 드러눕는다. 우리집 거실에 예수님이 계신다 해도 내 배가 부르니 뵈는 게 없다.
교황님이 들려주시는 빵 이야기가 잠을 깨운다.
우리가 낭비하는 것은 가난한 이들의 빵
「세계 식량의 날」을 맞아, 교황은 ‘식품과 영양의 왜곡된 관계’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 취동위(Qu Dongyu) 사무총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금년 「세계 식량의 날」의 주제는 “우리의 행동은 미래를 만듭니다 - 기아종식을 위한 건강한 식습관”이다. 교황의 메시지는 이 주제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된다. 최근 수십 년에 걸친 노력에도 불구하고 ‘2030 지속가능 발전의제’는 아직 세계 여러 지역에서 시행되지 않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음식낭비나 초과소비
교황은 ‘식품과 영양의 왜곡된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을 당부하면서 현실적 문제를 거론한다. “전세계적으로 8억2천만명이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반면, 거의 7억명은 과체중에 걸려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잔인하고 부당하며 역설적인 현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음식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만, 모든 사람이 음식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음식이 낭비되거나, 버려지고, 과도하게 소비되거나, 영양공급 이외의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통탄할 일입니다.”넘침의 병리학
“‘과잉’으로 인해 유발된 영양실조가 일으키는 질병이 있습니다. 당뇨병, 심혈관 질환과 여러 형태의 퇴행성질환이 대표적인 것입니다. ‘결핍’으로 인한 질병의 사례는 거식증과 폭식증으로, 자료에 따르면 이로 인한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습니다.”간단하고 냉철한 라이프스타일
이 현실상황은 우리의 생활방식과 행동방식의 혁신적 전환을 요구한다고 교황은 덧붙인다. “영양장애는 우리가 받은 선물에 대한 감사의 영감이 깊게 깃들어 있는 생활방식을 통해서만 이겨낼 수 있습니다. 또한, 금주와 절제, 금욕과 자기관리, 그리고 연대의 정신을 받아들임으로써 물리칠 수 있습니다.”“보다 더 단순하고 냉철한 생활방식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호혜적 연대를 키울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함께 공동선을 추구하면서, 배고픔과 사회적 불평등을 유발하는 개인주의와 자기중심주의를 피해가게 될 것입니다.”
가족의 역할
교황은 계속해서 가족의 주요한 역할을 강조했다. "가족 안에서, 여성과 어머니의 특별한 민감성과 지혜 덕분에, 우리는 땅이 제공하는 열매를 남용하지 않고 즐기는 방법을 배웁니다."가난한 이들의 빵
교황의 「세계 식량의 날」 메시지는 다음과 같은 권고로 마무리된다.“기아와 영양실조를 퇴치하기 위한 싸움은 무성한 시장논리에서 헤어나지 못하거나 이윤추구에 집착하는 한 결코 끝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첫 번째 관심사는 항상 인간에 맞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쌓아 두고 낭비하는 것이 바로 가난한 이들의 빵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출처: Vatican News, 16 October 2019, 12:41, 번역 장주영
https://www.vaticannews.va/en/pope/news/2019-10/pope-message-world-food-day-wasting-bread-poor.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