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방석이라는 말이 적합할지 모르겠다. 앉아있기 불편한 나만의 특별한 자리가 있다. 동창신부님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할 때가 그렇다. 혼자 교중석에 앉아 있어야 할 때면, 제단 위에 있는 동창들과 오랜 기간 같은 꿈을 꾸며 함께 살았던 시절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그래서 아무나 불쑥불쑥 제단에 올라가는 오늘날 성당 안의 풍경은 아직도 내 눈을 몹시 거스르는 모습이다.
몇 년 전 미국 동부 메릴랜드의 한 성당에서 동창신부님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한 적이 있다. 친구신부님 모친의 구순축하 미사였다. 내 마음을 드러내 보인 일이 없지만, 귀신같이 속내를 읽고 안쓰럽게 여긴, 구순 어머니의 아들 신부님이 나에게 ‘부제품’을 주셨다. 그래서 미국의 신부님 동생들은 나를 “부제님”이라고 부른다. 그 이야기를 아는 한국의 점잖은 어떤 분도 같은 칭호를 내게 붙여주는데, 가짜일지라도 그게 나는 싫지 않다.
미국에는 종신부제라는 제도가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초대 교회시절부터 있었던 이를 복원시킴으로써 초대교회의 성직제도로 돌아간 것이다. 특히 오늘날 같이 사제 성소가 부족한 때에 부제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공의회 문헌인 교회헌장 「인류의 빛」에 나타난 종신부제에 관한 내용은 이렇다. "부제는 성직자이며 봉사직에 종사하도록 주교가 서품하고 임명한다. 부제는 주교와 그를 돕는 사제들과 공동으로 말씀의 전례에서 봉사하고 또는 자선을 통해서 하느님의 백성을 위해 봉사한다. 부제의 직책은 세례를 주고, 성체를 분배하며, 교회의 이름으로 혼인성사를 집행하거나 돕는 일, 죽는 사람을 위해 마지막 기도를 해주는 일, 공동체에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강론하고, 가르치는 일, 공소예절 인도, 교우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 장례식과 하관식을 인도하는 일등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부제는 자선과 봉사의 임무에 봉헌된 사람이어야 한다."(3장 29절).
요한23세 교황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아조르나멘토(aggiornamento)’라고 요약했다. ‘현대화’ 또는 ‘쇄신과 적응’이라는 의미의 이 말은 자신을 새롭게 하여 사회와 시대상황에 맞춰 나간다는 뜻을 담고 있다. 요한 23세께서 하신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방 안에 가득 채우기 위해 창문을 활짝 열어라"는 말씀이 여기서 살아난다.
지금, 로마 교황청에서는 ‘아마존 지역을 위한 특별 주교 시노드’가 열리고 있다. 지난 8월 교황님은 이 시노드의 취지를 “환경 문제가 지구적 비상사태에 이른 오늘날 아마존지역 주교 시노드는 복음화의 선교 사명을 띤 교회가 소집한 긴급한 회의”라고 설명하신 바 있다.
지난 6일 시작되어 27일까지 진행될 이번 시노드의 주제는 ‘아마조니아 - 교회와 통합적 생태를 위한 새로운 길’이며, 아마존 열대우림이 처한 생태계의 위기와 경제적, 신앙적 어려움을 겪는 원주민 복음화에 가톨릭교회가 시급히 대처하고자 세계 주교단과 각계 전문가가 참여하여 열띤 논의를 하고 있다.
이번 시노드의 다양한 논제 중 ‘현지 사목자 양성의 중요성’이라는 테마가 들어 있는데, 이 부분에서 ‘비리 프로바티’(viri probati)라는 특이한 단어를 자주 접한다. 우리말로는 아직 정해진 용어가 없는 이 라틴어를 자구대로 투박하게 해석하면 “검증된 남자어른”이라는 뜻이다. 로마의 김호열 신부님이 “결혼한 남자 중 나이가 많으며 신앙심이 깊고 도덕적으로 검증이 된 사람, 혹은 검증된 기혼 남성”이라고 번역한 것을 봤다. 우리나라에는 먼 훗날 관심의 대상이 될지도 모를 이 논제에 대한 논의 내용을 Vatican News 곳곳에서 추려 싣는다.
아래 인용문은 기사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여러 보도에서 발췌하여 엮은 것임을 밝혀 둔다.
10월 9일 오후, 교황은 180명의 시노드 교부들과 함께 제6차 총회에 참석했다. 이날 논의된 여러 주제 중, 복음화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성소의 부족과 ‘비리 프로바티’의 길”이라는 小題가 달린 이 기사는, 사제 성소와 수도자 성소의 부족에 대한 이야기를 실었다. 시노드 교부들은 ‘비리 프로바티’의 서품 가능성에 대해 논의한다. 이 제도를 통해 다른 교구나 대륙으로 사제들을 강제 파견해야 하는 문제를 해소해 보자는 제안이다.
중재안으로 ‘비리 프로바티’ 司祭의 서품에 앞서 ‘비리 프로바티’ 副祭제도의 도입을 검토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것은 종신부제 중에서 ‘비리 프로바티’ 사제를 뽑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이다. 이를 통해 종신부제 제도는 결혼한 사람이 장차 성품에 올려질 가능성을 시험하는 좋은 실험실이 될 것이란 주장이다.
이번 시노드가 개막되기 2개월 전에, 이 주제와 관련하여 가졌던 교황님의 언론 인터뷰 내용을 돌아보자. “복음화를 담당하는 부서와 복음화의 다양한 방법들을 주요 주제로 다룰 예정입니다. 사제가 부족한 지역의 특정한 상황에서 기혼자의 사제서품 허용 (viri probati) 문제는 이번 시노드의 주된 주제는 아닙니다. ‘비리 프로바티’에 관한 주제는 단순히 ‘의안집’(Instrumentum Laboris)에 수록된 하나의 의안일 뿐입니다.”
위에 인용한 6차 총회에서는 기혼자의 사제품 허용에 관한 논의에 덧붙여 “사제는 특정 공동체가 아니라 교회 전체를 위한 사람이기에, ‘모든 공동체’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발표가 있었다. 또 다른 발표에서는 영적 사목 보다는 신앙적 섬김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강조됐다. 아울러 교부들은 사제들에 대한 신중하고 더 나은 양성교육의 필요성을 재확인했으며, 성직자중심주의와는 거리가 먼 평신도들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10차 회의에서도 성직자중심주의에서 비켜나 평신도 영성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논의가 있었다.
출처: Vatican News,여러 기사, 번역 장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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