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바티칸 사도문서고

MonteLuca12 2019. 10. 30. 09:54

전문가가 아니라 해도 “아카이브”라는 용어가 그리 낯설지 않다. 본래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 “기록 보관소”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아마도 이 용어에 친숙한 요즈음 사람들은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말로 이해할 것이라 믿는다. 백업과 함께 데이터의 이동 보존을 위한 기법의 한 갈래이다.

 

이사를 하거나 집정리를 할 때마다 책을 싸고 옮기는 것이 큰 일이다. 주기적으로 거처를 이동해야 하는 신부님들로부터 책을 정리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짐을 줄인다는 핑계 속에 책읽기가 힘들어졌다는 고백이 숨어있는 것 같다. 가급적 평가의 수위를 낮추지 않으려, 눈이 침침해진 나이와 조용히 앉아 책을 보게 놔두지 않은 환경에 애매한 책임을 전가하며 동병상련을 나눈다.

 

니콜라오 추기경님의 저술이 담긴 저장매체를 새로운 것으로 옮겨드린 적이 있다. 5.25인치 플로피디스크가 3.5인치로 바뀌어 안정성과 편의성이 크게 향상되었던 시절의 일이다. 그것도 실제 흘러간 시간에 비해 훨씬 가마득한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컴퓨터의 저장장치 용량은, 단위 자체가 당시에 비해 경천동지할 정도로 커졌을 뿐 아니라, 돈도 받지 않는 ‘클라우딩 스토리지’가 저장기능을 뛰어넘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이르렀다. 책과 사진은 물론이고 보관해야 할 것들은 웬만하면 디지털화 하여 넣어둘 수 있는 세상을 산다.

 

낡아가는 머리가 제일 먼저 잃는 것이 기억력이다. 생리적 용량의 변화인지는 몰라도, 저장, 검색, 재생의 성능 감퇴가 여러 기능에 앞서 오는 현상임을 깨닫고 나니, 내가 전에 흉봤던 노인들께 죄송한 마음이 샘물처럼 솟는다. 기억력만이 아니라 지능의 모든 부분이, 엄청나게 축적된 데이터의 분석결과에 항복할 때, 인공지능에 의해 지배되는 인류는 어떤 방법으로 살게 될까?

 

4세기에 걸쳐 문서와 자료를 보관해온 ‘바티칸 비밀문서고’가 이름을 바꿨다. 얼마나 많고 고귀한 정보가 그 안에 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명칭변경 이야기를 들으며 언젠가는 새로운 보관방법을 도입한다는 소식도 전해올 것이란 짐작이 든다. 관리와 검색의 효율성이 제고되는 장점이 있겠지만, 왠지 교회의 수백 년 전통이 앞으로도 쭉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선다. 편의를 제공하는 기술의 발달이 ‘사랑’도 보존하고 키워줄 수 있을까?

 

바티칸 사도문서고

바티칸 비밀문서고’ 명칭 변경

‘바티칸 비밀문서고’의 이름이 ‘바티칸 사도문서고’로 변경됐다.

교황은 '자의교서' 「역사적 경험」을 통해 바티칸 기록보관소의 이름을 변경했다. ‘바티칸 비밀문서고’로 불리던 이 기록보관소의 명칭은 ‘바티칸 사도문서고’로 명칭이 바뀐 것이다. 명칭변경은 자의교서 발표 직후 효력이 발생되었다. 이는 다양한 분야에 소속된 사제와 주교, 특히 기록 보관소에서 일하는 담당자들과의 협의를 거쳐 결정되었다.

[역자 주] 이 '자의교서'(Motu proprio)는 로마시간 28일 발표된 것으로 제목이 이탈리아어 "L'esperienza storica"라고 붙여졌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가 공식 제목을 달기 전에 역자가 “역사적 경험”이라 직역한 것임을 밝힌다.

28일 새로 발표된 '자의교서'에서 교황은, 17세기 초반에 설립된 바티칸의 기록보관소가 종교적 분야와 세속적 삶의 영역에 관한 중요한 문서와 기록물들을 수집하고 저장해 왔다고 밝힌다. 초창기에는 학자들에게 기록보관소를 방문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고 바티칸 직원들이 문서의 사본을 만들어, 그것을 요청한 전 세계의 학자들에게 보내주었다. 이런 이유로 독일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고트프리드 빌헬름 라이프니츠 (Gottfried Wilhelm von Leibniz)는 바티칸의 기록보관소를 ‘유럽의 중앙 기록보관소’라고 불렀다. 이곳은 1881년에 와서야 학자들에게 개방되었다.

교황은 기록보관소의 명칭을 변경한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여전히 ​​가톨릭교회의 공식 언어인 라틴어의 “secretum” (영어: secret)은, 통상적으로 “private” (“개인적인" 또는 “사적인”)이라는 의미로 번역된다고 말한다.

“라틴어와 여기서 파생된 언어 사이의 밀접한 관계에 대한 인식이 존재하는 한, ‘Archivum Secretum’(비밀문서고)이라는 명칭을 설명하거나 이 명칭을 사용하는 것을 정당화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비밀’이라는 단어가 일반 대중에게는 스캔들과 관련된다는 우려가 있어, 지식이나 정보 분야에서 사용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부정적 견해가 커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우려는 바티칸 비밀문서고가 한결같이 일해온 모습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으로, 이점이 명칭변경의 이유가 아님을 밝힙니다.”


출처: Vatican News, 28 October 2019, 17:00, 번역 장주영

https://www.vaticannews.va/en/pope/news/2019-10/motu-proprio-of-pope-francis-vatican-archives-to-be-renamed.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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