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구름에 오르는 기도

MonteLuca12 2019. 10. 28. 22:16

내가 처음 타본 비행기는 YS-11이라는 이름의 터보 프로펠러 기종이다. 노선 항공기가 많지 않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북한이 저지른 납치사건이 일어난 이후 보안검색이 하도 까다로워, 비행기 탑승은 어린 나에게 기말고사 치르듯 부담이 큰 연례행사였다. 작은 가슴을 팽팽하게 부풀리던 큰 설렘은 절대 공짜가 아니었다. 엄청난 소음과 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대가로 요구했다.

 

대류권까지 올라간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보는 구름세상이 참으로 맑고 깨끗하다. 내 고향 설악보다는 낮지만, 지금 사는 공원 옆 동산에 비해선 꽤 높은 산들이 수도 없이 이어진다. 봉우리 사이에 펼쳐진 평원에 같은 색깔, 같은 질감의 성당을 그려 넣는다. 우리 성당 정문 맞은편에 계신 성모상을 모셔왔다. 내가 놀던 마당엔 하얀색 조약돌을 뿌렸다. 솜을 뭉쳐 성당 옆에 우리집을 짓고, 구름을 굴려 눈사람을 세우니 감쪽같이 내가 살 세상이 된다. 우리 신부님도, 부모님도, 누나들도 다 모여 사는 꿈을, 눈을 뜬 채 꾸고 있다. 착륙을 위해 힘을 내는 프로펠러의 빠른 손짓이 내가 만든 모든 걸 몽땅 헤집어 놓았다. 천국을 맛본 짧은 꿈에서 깨어나 아직 더 살아야 할 세상으로 돌아온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바치고 있는 기도가 대체로 같은 내용의 반복이고 거의 구걸에 가깝다. 그러다가 하느님께서 들어주시지 않을 이유가 있는지 찾아본다. 그 정도면 특별한 하자가 없지 싶어 느긋하게 청원을 이어간다. 말이 감사이지 살짝 불만이 섞인 감정으로 어제 그 요청을 다시 늘어놓는다. 대놓고 이것저것 아뢰는 짓이 필시 청탁하는 자의 모습이다. 다른 이들을 위한 기도를 인심 쓰듯 끼워 넣었지만 그건 순전히 내 기도의 응답효과를 높이기 위한 얄팍한 전략이었다. 그래도 나는 평균 이상 기도하는 사람이란 위안을 바리사이처럼 쓸어 담아 불러오는 배를 문지르며 그분 생각을 접는다.

 

‘구름에 닿는 기도’에 관한 교황님의 말씀이 헛바람 든 배를 찌른다. 구원의 은총이 깃드는 곳은 가난한 마음이라고 일러주신다. 비우지 않고는 안된다는 가르침이다. 구름 속에 내가 지었던 세상에 영원히 머무를 수 있도록 데려가 주는 것은 비행기가 아니다. 가난한 사람의 기도가 해준다는 것을 이렇게 늦게 깨닫는다. 새로운 느낌으로 구름을 쳐다본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루카 21, 27)

 

아마존 시노드 폐막미사 중에 교황께 토착 식물을 드리는 토착민 여인

가난한 이들의 기도

교황은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아마존 주교 시노드 폐막미사를 집전하면서 기도의 세 가지 모델에 관해 이야기했다.

교황은 이번 주일 복음에 나타나는 세가지 모습, 바리사이, 세리, 그리고 가난한 사람의 기도에 관해 성찰한다. 그들 각자가 기도하는 방법을 살펴보면서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기도가 어떤 것인지 일러준다.

바리사이의기도


“바리사이가 바치는 기도는 하느님께 대한 감사로 시작되는 점에서 훌륭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기도는 감사와 찬양의 기도입니다. 하지만 바리사이는 곧바로 자기가 다른 사람과 같지 않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라는 이유를 붙입니다. 계명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는 자신감과, 자신의 장점과 미덕에 대한 자기확신으로 가득 찬 바리사이는 자기자신만 생각합니다. 그에게는 사랑이 없습니다.”


“바리사이는 결국 기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칭찬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에 서 있었지만 그가 숭배하는 존재는 바로 자신입니다. 그의 머리 속에는 하느님과 이웃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찌꺼기 정도로 여기고 그들과 적당히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소위 지위가 높은 유명한 인사들은 차별화를 강화하기 위하여 벽을 높게 쌓음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거부반응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들은 전통을 가볍게 여기고, 역사를 왜곡하고, 영토를 차지하고, 재산을 빼앗아 갑니다. 이런 빗나간 우월감은 오늘날 억압과 착취로 모습을 바꾸어 수없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마존의 얼굴


“아마존의 상처 난 얼굴을 보면서 과거의 실수가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약탈하고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함께 살아가는 지구와 이웃행성에까지 상처를 입히는 엄청난 과오를 우리는 막지 못했습니다. 자기숭배는 자신들만의 예식과 기도로 위선을 덧씌워 갑니다. 언제나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드러나는 하느님께 대한 진정한 숭배는 잊어버리고 맙니다.” 


교황은 우리가 받는 은총을, 우월하기 때문에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냉소적이고 멸시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기를 위해 기도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당부한다. “우리가 주변의 이웃들을 멸시하는 악습을 치유해 주시도록 예수님께 청합시다. 이런 우리의 잘못은 하느님의 마음을 상해 드리는 것입니다.”


세리의 기도


“반면에, 세리의 기도는 하느님께서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도록 도와줍니다. 그는 자신의 단점으로 시작하여 자기가 하느님 앞에서 부족한 자임을 인정합니다. 그는 멀찌감치 서서 자기의 심장이 있는 가슴을 쳤습니다. 그의 기도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기도는 오해를 풀거나 변명이나 해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눈을 바라보며 서있는 것입니다. 어둠과 거짓말은 마귀로부터 오는 것이며, 빛과 진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세리의 모습을 보면서, 죄인인 우리 모두에게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 깨달음에서 기도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재발견합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느님을 추운 바깥에 서있게 내버려두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일면 세리와 같고, 동시에 바라사이와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이면서도 주제넘게 건방진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을 잊고 우리 혼자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우리 스스로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좋은 기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구원은 내적 가난의 상태에서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의 기도


“가난한 이들의 기도는 하느님께로 직접 올라갑니다. 집회서에 “그의 기도는 구름에까지 올라가리라”(집회 35, 20)는 말씀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평생 다른 이들을 앞서가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느님 나라에만 재산을 쌓아 두는 분들로, 그리스도인의 예언직을 실천하는 살아있는 표상입니다.”


“이번 아마존 주교 시노드는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약탈적 방식의 개발로 인해 위협받는 아마존 지역 주민들의 불안정한 삶을 돌아보는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지으신 이 세상을 착취해야 할 자원으로 보지 않고 공동의 집으로 여길 수 있다는 증언을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진 이들을 통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교황은 가난한 사람들의 외침을 들을 수 있는 은총을 구하면서 기도를 마무리했다.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은 교회의 희망을 갈구하는 외침입니다. 그들의 외침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기도도 구름에까지 올라갈 것입니다.”


출처: Vatican News, 27 October 2019, 11:17, 번역 장주영

https://www.vaticannews.va/en/pope/news/2019-10/pope-francis-amazon-synod-closing-mass-praye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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