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카타콤바

MonteLuca12 2019. 11. 2. 07:18

길고도 길었던 과정이 끝나간다. 마지막 시험과 자료 제출에 분주한 동창들의 모습이 보인다. 침실에도 화장실에도 성당을 올라가는 계단에서도 바쁘게 움직이는 이들이 눈에 띈다. 개중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도 있고 삼촌 같았던 선배의 얼굴도 보인다. 하나같이 새로 맞춰 입은 수단자락을 휘날리는 종종걸음 속에 다정했던 모습을 감췄다. 엄숙한 것이 아니라 싸늘한 분위기가 우리의 따뜻했던 보금자리를 식힌다. 시간이 앞뒤로 흔들리고 위-아래 세상이 뒤섞였다.

 

오래 묵은 짐을 싸면서 어머니께 전화를 건다. 언젠가 사용했던 가장 작고 두툼한 ‘폴더폰’이 손에 잡힌다. 아무리 애를 써도 전화가 안 걸린다. 단축번호도, 초성검색도 먹히질 않는다. 틀림없이 새로 산 휴대폰이 주머니에 있었는데 훑고 뒤져도 헛수고다. 고향집에 맡겨 둔 아들과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 모습이 어른거린다. 언제 장만한 것인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차에 짐 실을 궁리를 한다. 오늘 떠나 바로 갈지, 하루 쉬어 춘천을 들렀다 갈지 쓸데없는 고민을 한다. 온통 머리 속을 헤집는 진짜 걱정이 모든 것을 뒤덮는다. 이대로 敍品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제는 그만둘 때도 됐건만 이 꿈의 ‘희곡’은 아직도 살아있다. 내 삶의 허리춤에 달려 다니며, 끊임없이 수정본을 만들어 낸다. 一場春夢이요 南柯一夢인가? 친하게 지내던 분의 떠나기 몇일 전 모습이 떠오른다. 술을 좋아했던 형이 가장 많이 취해서 했던, 두서 잃은 말을 다시 듣는다. 자주 끊기는 기억이 서로에 대한 애정의 편린들을 간신히 이어간다. 마지막으로 취한 듯, 졸린 듯, 그런 시간을 함께 했다. 천상의 교회는 꿈결같이, 그렇게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어제 밤을 바쳐 끙끙대며 어렵게 옮긴 교황님의 말씀을 접어서 별도로 분류된 폴더에 집어넣었다. 의미전달의 죄책감 보다는, 독자들이 느끼실 지루함과 모호함에 지레 겁을 먹었다. 몇 구절만 붙이고 싶은 교황님 말씀의 번역문에 ”죽음”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우리의 이야기가 글로 남겨지고, 그림으로 그려지고, 두 몸이 합해 하나가 되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입니다. 그러나 그 목표는 반드시 끝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일상생활 안에서 부딪치는 작은 목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결코 손에 닿지 않는 끝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 이야기를 꾸미는 모든 단어의 끝에, 모든 침묵의 마지막에, 모든 페이지의 말미에 삶의 의미를 새겨 넣어야 합니다. 바로 이 순간이 우리가 하던 일의 종국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우리의 삶을 영원하게 만듭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다 이해하거나 끌어안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우쳐줍니다. 우리가 만능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도록 채찍을 가하고, 평생동안 신비스러움에 끌리며 살도록 만들어 줍니다. 죽음은 자신을 과감히 비울 수 있는 용기를 줌으로써, 우리가 넘어지지 않을 것이며, 가라앉지 않을 것이며, 언제든 우리를 붙잡아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죽기 전과 죽은 다음이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순간으로부터의 죽음이나, 자아(ego)로부터의 죽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의 세상에서 죽는 것은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길을 제공합니다."

 

"죽음이 마지막 말을 하지 않는다면, 인생에서 우리는 서로를 위해 죽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 프란치스코 교황 -

 

카타콤바 내부 (미개봉 묘지 포함)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교황 미사

교황은 토요일에 로마에 있는 프리스킬라 카타콤바(Catacombs of Priscill)를 방문하여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미사를 봉헌할 예정이다.

초대교회 순교자 중 많은 분들이 프리스킬라 카타콤바에 묻혔는데, 이 카타콤바를 옛날에는 ‘지하묘지의 여왕’(Regina Catacumbarum)이라고 불렀다.

교황은 금요일 삼종기도를 바치면서 이 계획을 발표했다.


"요즈음 들어, 죽음과 돌아가신 이들에 관련한 메시지의 전달 문화가 부정적으로 흐르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가능한 한 묘지를 방문하여 기도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 마시기를 권고합니다. 그것은 ‘믿음에서 나오는 행위’입니다."


순교자의 묘지


비아 살라리(Via Salari)에 위치하고 있는 프리스킬라 카타콤바는, 원래 아칠리우스 글라브리오(Acilius Glabrio) 가족이 소유한 모래 채석장이었다. 프리스킬라 귀족 가문의 한 분이 초대교회에게 이 곳을 묘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2세기부터 4세기에 걸쳐 이곳에 묻혔다. 교황 마르첼리노 (296년~304년)와 교황 마르첼로 1세 (308년~309년)를 포함하여 최소한 일곱분 교황의 무덤도 이곳이다.

 


이 지하묘지에는 일부 전문가들이 동정성모에 관한 가장 오래된 묘사라고 여기는 프레스코화가 있는데, 이 그림이 2세기 중엽에 그려진 것이라 추정되고 있다.

출처: Vatican News, 01 November 2019, 14:27, 번역 장주영

https://www.vaticannews.va/en/pope/news/2019-11/pope-francis-catacombs-priscilla-all-souls-da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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