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가 피었네. 어쩐 일이야.” 11월 들어서도 여러 날이 지났는데 거짓말 같은 소리를 듣는다. 그것도 그리 낮지 않은 산 중턱에 피어 있는 노란 꽃이 비리비리 원래 제 모습은 아니다. 사실 그 방면에 둔한 나는, 그 것이 그 놈인지 확신하지 못했지만 여럿이 다 그렇다고 하니 그러련 여기고 돌아섰다. 반나절이 지났는데도, 잔뜩 움츠렸던 얇고 작은 꽃잎의 모습이 애련히 떠오른다. 가엽게 여기고 애처로워하는 마음이, 무미건조, 삭막한 내 가슴에 한줌 젖은 흙덩이처럼 남아있었나 보다.
이건 이래야 하고, 저건 저렇게 있어야 한다고 믿고 살았다. 거꾸로 가고 반대로 사는 것들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 데 꽤 긴 세월이 필요했다. 오래된 믿음이 바뀌는 것을, 이제는 그리 희한하게 느껴지도 않는다. 멀찌감치 뒤에 앉으니 보이는 것이 많고, 없애고 나니 편해진다는 것을 몸으로도 깨닫는다. 사랑이 집착이었다는 것을 고백하고, 애정을 드러내려 미워했었다는 변명을 하고 싶다. 상처주지 않으려 했다는 거짓말은 내 수치를 덮겠다는 수작이었고, 기도해 준다던 언약은 거룩한 척 쳐 놓았던 위장막이었다. 수도 없이 젠체하고, 끝도 없이 욕심부리던 삶을 어떻게 열어 놓을지 몹시 걱정된다.
위령성월이라서 하게 되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교황님은 바꿔보라고 하신다. “떠나가는 것”, "나에게서 나가는 것"을 묵상하라는 말씀이다. 죽음을 생각하며 부활을 희망하고, 거기서 살아있는 나를 느낀다. 예수님의 부활이 전해주시는 '진리의 역설'이다.
부활은 삶의 목표와 목적입니다
교황은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지난 1년 동안 선종한 추기경과 주교들을 위한 위령미를 봉헌했다. 교황은 강론을 통해 부활을 묵상하기 위한 세 가지 소재를 던져준다.
교황은 이날 미사에서 봉독된 성경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면서, 말씀의 내용 모두가 “죽음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부활을 위해 태어났다"는 점에 주목할 것을 요청한다. “다시 일어나라는 부르심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할 것입니까?”라는 물음으로 강론은 시작됐다. 교황은 먼저 예수님께서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고 하신 요한복음의 말씀을 인용한다.
예수님께로 가기
“'나에게 올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초대는 뻔하고 막연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에게 구체적으로 물어야 합니다. ‘나는 오늘 만난 사람 하나하나를 예수님과 연관지어 생각했는가? 기도를 통해 그들을 예수님께 데려가 주었는가? 내 삶의 여정은 어느 방향으로 향해 있는가? 나의 역할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을 때우는 정도로 체면치레하는 것은 아닌가?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떠나가기
“어머니의 태중을 ‘떠나온’ 우리의 삶은 이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떠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떠나 부활하신 분을 만나러 가신, 형제 추기경과 주교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떠나감’의 의미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 진정한 의미는 ‘나 자신으로부터 나간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에게서 떠나가야만 주님께로 가는 문을 열 수 있습니다.”
다른 이들을 향해 가기
“두 번째로, 제1독서에 나오는 유다 마카베오의 모습을 봅시다. 그는 죽은 이들을 위해 행동으로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동정심은 영원으로 연결되는 문을 활짝 열어줍니다.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자세를 낮추어 섬기는 것은 천국 문 앞의 대기실로 들어가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자선이 세상과 하늘을 연결하는 다리라고 한다면, 이 다리 위에서 앞을 향해 나아갈 것인지는 우리 스스로 결정할 일입니다. 당신은 가난한 사람의 상황을 보며 어떤 느낌을 받습니까? 고통받는 이들의 마음을 아파하며 함께 울어줄 수 있습니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이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까? 바로 이런 것들이 삶의 문제이고 부활의 문제입니다.”
끝까지 가기
“마지막으로 부활을 묵상하는 영신수련에 관해 함께 생각합시다. 이냐시오 성인은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생의 마지막 날 하느님 앞에 서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라고 당부합니다. 그것은 미루어 두고 지나칠 수 없는 요구이며, 인생여정의 최종 목적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뿌린 씨가 수확할 때 결과가 나타나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은 마지막 날에 제대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영신수련은 우리의 눈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주님의 눈으로 현실을 보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미래를 향해 있는 부활에 대한 희망은 영원한 삶의 맛을, 사랑의 달콤함을 선택하게 합니다.”
나 자신에게서 나가기
“당신은 매일같이 자신을 떠나서 주님께 나아가고 계십니까?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동정심에서 우러나오는 실천을 하고 있습니까? 중요한 결정을 할 때에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십니까? 위에 말씀드린 세 가지 중에 적어도 하나는 깊이 묵상하고 지켜 나가시기를 바랍니다.”“살아있다는 느낌을 잊게 만드는 이 세상의 많은 목소리에 묻혀 있는 우리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마음을 향해 돌아서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오늘 우리의 삶은 부활의 새벽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출처: Vatican News, 04 November 2019, 13:22, 번역 장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