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마더 테레사

MonteLuca12 2019. 8. 28. 17:39

아무리 막고 지켜도 구멍은 뚫린다. 철벽같은 규율의 장막에 덮인 소신학교 시절이 생각난다. 방송청취와 신문구독이 엄격히 금지된 폐쇄사회에서 우리는 킹스컵과 메르데카배 축구경기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고 있었다. 난방을 위해 설치된 스팀 파이프에 묶인 구리선이 깊숙한 그곳을 지나는 전파를 잡아 이석라디오로 재생시켜주는 고도의(?) 기술을 발휘한 손재주 좋은 친구 덕분이었다. 물론 중계를 듣는 사람은 엉성한 전파수신기의 주인이고, 상자 안에 나란히 누워있는 크레용처럼 4열 횡대로 오와 열을 맞춘 소대 규모의 침대 속에서 우리는 손수건 돌리듯 귓전으로 이어 주는 속삭임으로 주요 상황을 전달받고 있었다.

 

겁이 많은 나는 축구중계를 듣는 규칙위반이 걱정되어 졸아든 가슴에 손을 얹고 잠에 빠진다. 촌놈의 꿈은 조금 전 들은 도시 쿠알라룸푸르와 방콕이 어둠에 잠겨 사방을 분간하기 어려운 곳일 거란 선입견을 만들며 시작된다. 모스코바를 생각하면 수용소의 침침한 복도가 떠오르고, 아프리카는 먼지가 가득 찬 갑갑한 황야로 그려진다. 그저 눈으로 보고 비교적 상세히 설명할 수 있는 외국 땅은 아리조나 사막과 그곳 중간중간 마을마다 모여 서있는 목조 건물들이다. 그건 서부영화를 통해 빼꼼히 떠진 눈의 힘이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 것이란 주장에 대항할 논리가 전혀 없다.

 

애초에 맛을 모르는 것이 나을 뻔했다. 텁텁하고 침침하다. 산뜻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상큼한 안주가 생각난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다. 눈과 귀를 덮는 어두컴컴한 세상이 부실한 가슴에 먹칠을 한다. 듣지 않으려 귀를 막아도 들리고, 보기 싫어도 보이는 세상을 산다. 사순절엔 읽기 바쁘게 올라오던 바티칸뉴스의 관심기사가 정성 들여 옮기고 싶은 것을 찾기가 어려워진 것도 원망스럽다.

 

오늘 아침엔 답답한 가슴을 씻어주는 시원한 사랑이야기를 만났다. 나와 같은 세대를 사신 마더 테레사, 엊그제까지 그분의 헌신적 봉사를 전해들은 것 같은데 선종하신지 벌써 22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공수 역전을 반복하며 어지럽게 윤회하는 네 탓 놀음의 고리는 성녀 마더(Mother)가 계시면 끊을 수 있을텐데생각만으로 청량음료 한잔이 목을 타고 넘는다.

 

마더 테레사 탄생 109 주년

<사랑의 선교 수녀회> 수녀들은 월요일 창립자 테레사 수녀의 109 번째 생일을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성인의 사랑과 봉사가 그리스도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부터 우러난 것임을 기리는 행사였다.

8월 26일 콜카타의 토마스 드수자 대주교가 <마더 데레사의 집>(Mother House)에 있는 성녀의 무덤에서 기념미사를 집전했다. 인도 동부의 도시 콜카타는 성녀 마더 테레사의 무덤과 <사랑의 선교 수녀회>의 본원이 있는 도시다. (역자 주: 영어식 이름 캘커타(Calcutta)는 2001년 이후 공식명칭으로 전통이름인 콜카타(Kolkata)로 개명되었다)

토마스 대주교는 강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데레사 성녀는 헌신적인 봉사와 열정적인 사랑으로 ‘가난한 이들 중 가장 가난한 이들’을 섬김으로써 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했습니다. “

대주교가 무덤 주위의 초에 불을 붙이자, 미사에 참례한 수녀들이 창설자 데레사 성녀의 생일을 축하하는 노래로 ‘Happy Birthday’를 불렀다. 성녀는 우리가 ‘마더 데레사’로 알고 있는 그 분이다.

<사랑의 선교 수녀회>의 마리아 프레마 총장 수녀는 성녀께서 늘 하시던 말씀을 들려주었다. "우리의 소명은 반드시 성공하라는 것이 아니고 굳은 믿음을 가지고 하라는 것입니다. 성녀의 생일이 생전에는 가족 간의 중요한 축하 행사였겠지만, 1997년 돌아가신 후, 또 2016년 시성되신 다음에는 우리 수녀들이 기념해 드리고 있습니다.”

원로 수녀들은 <가톨릭 아시아뉴스연합>이 성녀의 생일을 축하해온 전통에 관해 이야기했다. 성녀가 돌아가신 후에도 136개국 700개 가정에서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사랑의 선교 수녀회> 소속 수녀는 전세계적으로 약 4,500명에 달한다.

대주교와 함께 미사를 집전한 도미니코 고메스 총대리 신부는 <아시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상적인 기념식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성녀 마더 데레사의 109주년 생일은 성당을 가득 매운 모든 사회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 기도하고 기쁨을 나누면서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성인들의 축일은 선종일로 정해져 전례력에 등록됩니다. 그 이유는 그분들이 천국에서의 삶을 시작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마더 테레사는 1910년 8월 26일 유고슬라비아(오늘날의 북마케도니아)의 스코페예에서 아니스 곤히아 브약스히야(Agnes Gonxha Bojaxhiu)라는 이름을 받고, 알바니아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19세의 십대 소녀는 1929년 인도 동부 콜카타에 있는, 아일랜드에서 건너온 로레토 수녀원에 들어가, 수련을 마치고 수녀가 된 후, 20여년이 지난 1950년 후반에, 가난하고 버려진 사람들을 위한 <사랑의 선교 수녀회>를 설립했다. 성녀는 22년 전인 1997년 9월 5일 <마더 데레사의 집>에서 87세에 선종했다. 2016년 9월 4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려진 성녀의 축일은 선종일인 9월 5일로 정해졌다.

굳은 믿음의 산물

<사랑의 선교 수녀회>의 마리아 프레마 총장 수녀는 성녀의 생일 축사를 통해 이렇게 기도했다. "지극히 사랑하올 성녀시여, 하느님께 대한 굳건한 믿음과 가난한 이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신 당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십시오.”

"하느님은 성공적으로 일하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니고, 굳은 믿음을 가지고 우리가 봉사하기를 원하십니다.” 총장 수녀는 테레사 성녀의 신념을 상기시킨다. “테레사 수녀님은 성공, 부와 명예, 권력 같은 것에는 아예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알바니아 문화에 따라 성녀의 어머니는 생명을 바쳐서 자기가 언약한 말과 명예를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성녀의 굳은 믿음은 자기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섭리에 의탁하도록 했습니다. 성녀는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을 닫지 않았는데, 특히 자기에게 상처 준 사람들에게 그랬습니다. 수녀님의 신심은 태중의 생명을 지키고, 버려진 아이들과 장애 아동들의 생명권을 수호하는 성녀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분은 원치 않는 출산으로 태어난 생명들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아주 특별한 축복을 받아 생겨난 수녀님의 놀라운 신앙이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의 아이콘이 되게 했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자신이 몸바친 봉사를 가장 미천한 것이라 여겼지만, 1985년 당시 유엔 사무총장 페레즈 데 케야르는 마더 테레사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이라고 칭송한 사실을 총장 수녀는 상기시켰다.

2012년 12월 17일 유엔총회는 마더 테레사 수녀와 수녀원을 포함한 자선단체 및 개인들의 사랑과 자비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성녀의 축일인 9월 5일을 <국제자선의 날>로 제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출처: Vatican News, 27 August 2019, 15:15, By Robin Gomes, 번역 장주영

https://www.vaticannews.va/en/church/news/2019-08/mother-teresa-109-birthday-celebration-kolkata-mc.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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