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키시스(Catechesis)

그들이 원하는 것은?

MonteLuca12 2019. 6. 16. 16:20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토록 엄하고 폐쇄적인 신학교 안에서도 선배들이 들으면 놀라 넘어질 꿈 같은 일이 일어났다. 휴게실에 설치된 텔레비전이 촌놈들에겐 신기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만화가게에서 김일의 박치기를 보며 자란 문화인에 속한다. 우리에게 TV시청이 허락된 것은 일주일에 한번, 특정 프로에 한정되어 있었다. 게리슨 유격대, 「타잔」 같은 옴니버스드라마가 정기시청 프로였지만, 국가대항 축구 결승전 같은 빅매치가 아주 드물게 교장신부님의 특별 관면에 따라 시청이 허용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축구가 새 역사를 썼다. 아쉬움이 남지만 어린 선수들이 기특하다.

 

교장신부님이 운동하시는 것을 본 일이 없다. 하긴 밤낮으로 그 넓은 신학교 곳곳을 다니시니 그만한 운동이 있을까? 그런 분 밑에서 자란 신학생들이 공 다루는 운동을 다 잘한다는 것은 진정한 신비. 아침식사 후에는 각자 맡은 구역을 청소하지만, 점심과 저녁엔 각종 구기종목의 운동장이 학년별로 배정된다. 운동하는 것도 규칙이다. 이 시간 다른 짓을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규칙위반이다.

 

싸늘한 분위기가 조직폭력배들의 집단대결 같이 험악하게 바뀐다. 오늘 하루 종일 치러진 학년대항 체육대회에서, 중학교 일학년 막내들이 3학년 형들을 꺾고 우승한 괘씸죄가 작지 않다. 괜한 트집을 잡는 것이 눈에 보인다. 조무래기들은 겁먹은 표정으로 교실에 앉아 입으로만 거든다. 대표선수가 아니니 보복의 대상도 못된다. 한 학년이 한 학급이고 고작 60명이지만, 입학 초기부터 나이도 인원도 뒤섞인다. 재수와 삼수 합격생, 윗반에서 내려온 선배동창’, 호적 지연신고자, 사유가 다양하다. 뭘로 해도 밀리지 않는다. 어쩌겠는가? 자존심 상하면 이기든가

 

사제의 덕목에 ‘3S’가 있다. 첫째는 聖德(Sanctitas)이다. 이것이 빠지면 팥소 없는 찐빵이다. 훌륭한 리더는 조기축구회에도 있고, 선량한 계주도 살림에 도움주는 인생의 안내원이다. 사제는 멜키세덱의 후예로, 간택되어 기름부은 받은 하느님의 사람이다. 본질이 다르다. 그들은 거룩하다. 다음은 健康(Sanitas)이다. 체력이 약하면 십자가를 질 수 있겠는가? 양떼를 돌보려면 비실대서는 안된다. 정신도 육체도 함께 건강해야 한다. 마지막은 智慧(Scientia). 양들은 기본적으로 목자의 지혜를 믿는다. 그래야 자기를 온전히 내맡기고 따라갈 수 있는 것이다. 믿음이 무너지면 헛다리짚는 신세로 전락한다. 하물며 사제는 천국가는 여정의 이끔이.

 

바라건대, 신학교의 축구는 계속되어야 한다. 하급생이 선배를 이기는 것은 하극상이 아니다. 지식의 경쟁은 더 치열해야 한다. 세상이 절대 만만하지 않다. 전문가가 넘쳐난다. 그들을 인도하려면 조금이라도 알아야 한다. 성덕은 언필칭 사제들의 전문분야다. 따라잡히면 매우 곤란하다.

 

當稱聖潔(당칭성결; "당신의 집에는 거룩함이 어울립니다." 시편 93장) 夷亭 朴詠茂(아오스딩) 作

3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에 관한 교황님의 담화문 후반부이다. 

소외 계층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담화에서 교황은 불우한 이웃을 위해 열성적으로 일해 온 두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먼저 프리모 마쪼라리 (Primo Mazzolari) 이탈리아 신부의 말을 인용한다. “가난한 이들은 우리의 불의에 대해서 끊임없이 반발합니다. 그들의 저항이 극에 달하면 불붙은 화약통처럼 세상을 폭발시킬 것입니다.”

이어서 고인이 된 장 바니에(Jean Vanier)의 이야기를 한다. 그의 열정에 매료되어 젊은이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주변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매일 모여 취약계층의 이웃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웃음을 되찾아 주는 일을 하였다. 그들을 소외와 고독으로부터 구원해 줄 진정한 방주를 만들어 준 것이다.

희망의 증거자

가장 작은 이들을 위한 선택, 사회가 저버린 이들을 위한 선택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가장 우선으로 해야 할 일이라는 점을 교황은 강조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교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지 않고 취약한 처지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진정한 희망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교황은, 얄팍하고 일시적인 복지의 확산에만 관심을 가진 폐기의 문화가 만연되어 있다면서, 이러한 소비자 중심의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교의 희망을 증거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교황은 사고의 전환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야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보게 되며 하느님의 나라를 전파하는데 구체적이고 열정적인 노력을 경주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옷이나 따뜻한 음식 같은 것들을 필요로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이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은 사랑이라고 교황은 말한다. 순례자인 하느님 백성의 심장에는 구원의 힘이 고동치고 있습니다. 그 힘은 한 사람도 제외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진정한 회심의 순례 여정으로 불러들여, 가난한 이를 알아보고 그들을 사랑하게 만듭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교황은 강조해서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세상에서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여줌으로써 구원으로 인도합니다."

교황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진정한 복음전파자가되기를 원한다면 눈에 보이는 희망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는 말로 담화를 마무리한다이어서 교회 공동체와, 빈곤층에게 희망과 위로를 제공해야 한다고 느끼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촉구한다.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협조하도록 독려하는 계기가 되어, 한 사람도 친밀감이나 연대감을 박탈당했다고 느끼지 않도록 만드는데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1)(2)

(1)The Holy See, "Third World Day of the Poor, 2019: The Hope of the Poor Shall Not Perish for Ever," The Holy See, last modified November 17, 2019,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messages/poveri/documents/papa-francesco_20190613_messaggio-iii-giornatamondiale-poveri-2019.html.

(2)Lydia O'Kane, "Pope: The Poor Save Us Because They Show Us the Face of Christ," Vatican News, last modified June 13, 2019, https://www.vaticannews.va/en/pope/news/2019-06/pope-the-poor-save-us-because-they-show-us-the-face-of-chris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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