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키시스(Catechesis)

나를 기억하시는 하느님

MonteLuca12 2019. 6. 18. 07:03

 

며칠 장맛비가 쏟아붓더니 잠수교가 물에 잠겼다. 아침에 간신히 건너왔는데 퇴근 길이 걱정된다. 방법이라곤 제3한강교를 넘어가는 것뿐인데, 그러려면 1호터널을 빠져나가는 것이 큰 걸림돌이다. 좌석버스라는 이름의 승합차가 있었다. 입석을 하면 천장이 머리를 눌러 꺾어버리는 작은 사이즈의 버스다. 입석 마저도 얼마를 기다려야 탈 수 있을지 앞이 캄캄하다. 장마철이면 겪는 불편이지만 인구유입이 늘면서 해마다 고통의 수준이 급상승한다. 사우나독을 막 빠져나온 사람처럼 온 몸이 흠뻑 젖은 것 말고도 목이 아파 똑바로 펼 수가 없다. 지나치게 풍성한 콩나물 시루 안에서 두시간을 바닥만 보고 서있던 탓이다. 강을 건너오자 마자, 체면이고 염치고 모두 팽개치고, 그 지옥을 탈출하는데 기를 썼다. 긴 여름 태양도 버티지 못하고 소등을 하고 나면 성당을 비출 조명이 없다. 쓸쓸한 「성심원」 성당의 깜빡이는 성체불을 바라보며 짧은 조배를 바쳤다. 경부고속도로 끝자락을 가득 메운 차량의 행렬이 보인다. 복잡한 머리가 식기를 기대하며, 오늘 하루 마무리할 곳을 향해 걷는다.

 

대문을 열면 넓지 않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턱 낮은 난간을 바로 만난다. 앞으로 기대서면 가슴과 배 사이에 난간의 턱이 닿고, 그 턱에 팔꿈치를 얹으면 제법 편안한 12층 높이의 전망대가 된다. 한강까지는 오래된 아파트 단지가 가려 보기 어렵지만, 코밑 공사장에서 작업하는 신형 중장비가 손에 닿을 듯 가깝다. 여기가 아버지의 바깥나들이 장소이고, 친구 없는 노인정이다. 평생 건축에 종사하신 분이 처음 보는 포크레인에 빠져 하루 종일 장난감 갖고 놀 듯 보고 있다가, 해가 떨어지면 그 어스름에 아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아들의 출퇴근 고생이 보기 딱하여, 이 지하철 공사가 빨리 끝나길 기도하던 묵주가 손에 들려 있다.

 

세식구가 이곳에 살림을 차린 지 1년이 되어 간다. 8남매 낳아 셋은 잃고 남은 다섯 키운 정든 곳을 떠나셨다. 50년 가까이 고향처럼 살면서 성당 짓고, 그 공동체 밖을 떠나본 적 없는 노인 두 분이, 잘난 아들 하나 믿고 손때 묻은 집을 버리셨다. 나 혼자 살자고 그런 것은 아니잖은가? 머리가 복잡하다. 잘 한 건지 모르겠다. 설상가상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어머니의 병세가 심상치 않다. 낯설고 물설은 환경변화 보다 반토막 나버린 신앙생활에 대한 죄책감이 이유일 수 있다.

 

안방과 거실은 미닫이문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었고, 안방의 한쪽 벽은 20년 전쯤 어머니가 장만하신 호마이카 장과 비키니 옷장이 거의 다 가리고 있었다. 어머니의 상태가 불안해 그 미닫이문을 열어 둔 채, 거실에 누었다가 얕은 잠이 들었다. 알 수 없는 외마디 소리를 따라, 엄청난 섬광이 번뜩였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포장된 도시를 달구던 이글거리는 태양인가? 놀란 내 토끼 눈과 마주친 것은 어머니의 얼굴이었다. 안방 천장의 30촉짜리 써크라인, 그 등의 스위치는 비키니 옷장으로 가려져 있어, 켤 수 있는 사람이 나 뿐이었다. 나지막이 흘러나오는 어머니의 비명을 성령께서는 간절한 기도로 받아 주셨다. 지난 성령강림주일에 뽑은 은사의 카드가 통달이다. 어머니를 죽음의 골짜기에서 건져내신 분을 알아본다.

 

世人爲誰  (세인위수; "인간이 무엇이기에"),  夷亭 朴詠茂(아오스딩) 作

 

교황님께서는 지진으로 고통을 당한 이들에게 하느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희망을 강론하셨다. 삼위일체의 신비 안에 담겨진 사랑이 우리 희망의 원천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교황은 이탈리아 마르케의 카메리노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시편 8장을 주제로 한 강론에서, 교황은 하느님의 기억’, ‘희망’, ‘친밀감등에 관한 내용을 성찰한다.

3년전 8월과 10, 연속적으로 카메리노와 근처 이탈리아어 언덕마을을 강타한 지진으로 300명이 희생되고 건물들이 폐허가 되었다. 리히터 규모 6.6의 당시 지진은 2009년 라퀼라를 황폐화시킨 지진 이후 또다시 발생한 것으로, 30여년 만에 이탈리아를 강타한 가장 파괴적인 지진이었다. 그곳 사람들은 그때부터 줄곧 피해복구를 위해 애써왔다.

시편 85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

교황은 시편 8장의 말씀으로 강론을 시작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교황은 이 지역의 사람들을 생각할 때 이 구절이 마음에 떠올랐다고 말한다. "집이 무너지고 건물이 돌무더기로 변한 것을 여러분들이 목격했습니다. 그 엄청난 재난이 여러분에게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런 끔찍한 현실 앞에 서면 이런 의문이 듭니다. 인간이 무엇인가? 희망이 먼지로 끝나고 만다면 도대체 인간은 무엇이란 말인가?”

기억하신다

시편 구절을 인용하면서, 교황은 말 그대로 기억하다또는 '진심으로 돌아오다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 동사 ricordare’ 사용했다교황은 앞에서 던진 자신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하느님은 우리가 허약한 상태에 처한 모습 그대로 기억하고 계십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당신 마음 안에 담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돌아오십니다. 지구가 흔들릴 때 우리는 하늘 아래 작고 힘없는 존재였을 겁니다. 하지만 하느님에게 우리는 세상 어느 것보다 소중합니다."

기억은 인생에 있어 아주 중요한 단어라고 교황은 말한다기억은 우리에게 굴복하지 않을 힘을 줍니다나쁜 기억들은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되살아납니다우리를 노예 상태로 묶어버리는 부정적 기억에서, 또 우리를 무력하게 만드는 후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을 치워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예수님은 우리에게 짐을 덜어주는 빠르고 쉬운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으셨습니다그 대신에, 위로자 성령을 보내셔서, 과거의 상처를 구원의 기억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심어 주셨습니다.”

희망을 주신다

교황은 희망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세상의 희망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이며 반드시 소멸되어 없어지는 것입니다. 반면에 성령의 희망은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므로 오래오래 지속됩니다그것은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게 하는 희망이며, 인생의 풍파가 뽑아버릴 수 없는 강한 뿌리를 가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실망하지 않는 희망인 것입니다.”

가까이 계신다

교황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대축일에 관한 내용으로 강론을 이어간다. 삼위일체는 신학적 미스터리가 아니고, 하느님께서 지니신 친밀함의 아름다운 신비입니다하느님은 저 멀리 계시는 무관심한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고치는 일에서 새로 지을 때보다 더 큰 힘을 얻는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교황은 2016년 지진이 발생한 후 3년이 가까이 지나온 과정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가장 먼저 나타났던 반응은 안타까와하는 감정과, 언론이 부추기며 쏟아진 수많은 관심과 약속들이었습니다. 이제는 모두의 생각에서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를 기억하고 계시고, 고쳐서 다시 일으키도록 격려하시고, 다 함께 이 일에 동참하도록 힘을 주십니다. 그분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가까이 있기 위해 오늘 이곳에 왔습니다"라는 말로 교황은 강론을 마무리한다. "희망의 하느님, 우리와 가까이 하느님이 계시기에 우리가 놓치지 않고 붙잡고 있는 확실한 믿음과 희망을 지구상의 불안정한 것들이 흔들리지 못하도록 늘 기도합시다.” (1)

(1) Vatican News, "Pope at Mass in Camerino: 'Remember, Repair, Rebuild'together?," Vatican News, last modified June 16, 2019, https://www.vaticannews.va/en/pope/news/2019-06/pope-at-mass-in-camerino-remember-repair-rebuild-together.html.

 

 

'카테키시스(Catechesis)'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의회와 여성  (0) 2019.06.19
아마존 시노드  (0) 2019.06.19
그들이 원하는 것은?  (0) 2019.06.16
가난한 이들의 날  (0) 2019.06.15
천주경  (0) 2019.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