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키시스(Catechesis)

공의회와 여성

MonteLuca12 2019. 6. 19. 15:07

 

아버지가 형님이라고 부르는 고아원 원장님을 나는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내 친구의 외할아버지이기 때문이다. 한 방울의 피도 섞이지 않았지만 우리는 틈이 없는 친척이었다. 친구의 형은 내게도 형이고, 걔네 삼촌과 고모를 나는 '아재'라고 불렀다. 성당 말고 어쩌다 놀러 간 곳이 할아버지네 고아원이다. 미군부대에서 보내준 시리얼이 그곳 아이들의 간식이다. 먹을 것이 귀한 시절이었지만 달지 않아서 별로 맛은 없었다. 굳이 다른 이유를 대라면 고아원 아이들의 귓속에 덕지덕지 붙은 귀지를 연상하는 결벽증 때문이라 해야 하나? 우리는 모양이 비슷해 그것에 귀청과자라는 사투리 이름을 붙였다고아들이 늘면서 돌봐 줄 손길이 턱없이 부족했다. 전쟁이 낳은 가슴 아픈 비극이다. 

 

성탄이 다가오면 성당 마당에 구호품 옷가지가 산더미처럼 쌓인다. 어느 나라에서 온 것인지도 모르는 옷은, 전쟁의 폐허로부터 갓 탈출한 가난한 국민들에겐 말할 수 없이 고마운 입을거리다. 고아원 아이들에게 우선배정이 되지만 그에 앞서는 권력형 비리가 있다. 복사들에게 포상조로 줄 가장 좋고 깨끗한 옷이 골라져 따로 보관된다. 신부님의 특명에 의한 것이나, 이제는 별도의 지시가 없어도 관리원 아저씨가 알아서 한다. 할아버지 빽으로 시리얼을 가로챈 염치없는 손이 옷보따리를 들고, 자랑이 급한 마음을 따라 집으로 달려간다.

 

베풀며 사는 것이 갈수록 어렵다. 오랫동안 조금씩 해온 후원금 자동이체를 금년 들어 몇개 해지했다. 수입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거리낄 것 없는 이유가 있다. 시쳇말로 간을 보고 정하려 미룬 교무금도 반년이나 미납 상태로 남아있다. 성당 신축을 위해 일상화되었던 이차헌금을 없앤 신부님이 고맙다. 규제가 심해서인지 지하철에서 동냥하는 이들도 줄었다. 만난다 해도 망설이겠지만, 안 보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빌리기도 싫지만 빌려줄 마음도 없는 각박한 세상이 앞으론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사목하시는 신부님께 보내 드릴 옷을 모은 적이 있다. 엄청나게 들어온다. 깨끗하게 빨아 곱게 개켜 봉투에 넣어오는 옷이 있는가 하면, 내팽개치듯 던져버린 냄새 쿨쿨 나는 신발도 있다. 간신히 대형 컨테이너 두개를 빌려 꾹꾹 눌러 담았다. 아뿔싸! 현실이 그게 아니다. 해상운송비는 이미 고려되었지만 아프리카대륙 안에서의 운송비가 어마어마하다. 그 뿐만이 아니라 사방에 흩어져 사는 그곳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방법도 간단하지 않다니, 보내주고 폐 끼치는 일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컨테이너를 채우고 넘치는 따뜻한 마음을 바라보는 눈이 밝아진다.

 

어제 SNS를 통해 받은 짧은 격려의 글이 내가 평생 은혜입은, 이름도 모르는 고마운 분들을 생각하게 한다. “花香百里 人香萬里

 

人若愛我 (인약애아;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요한 14, 23),  夷亭 朴詠茂(아오스딩) 作

2차 바티칸공의회의 여성들
"놀라운 여성", "놀라운 공의회"

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시작된 여성들의 역할에 관해 쓴 책이 최근에 출간되었다. 이 책은 공의회의 여성참여에 관한 역사와 공헌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2차 바티칸공의회 (1962-1965)는 가톨릭 교회의 새로운 오순절이라고 할 수 있다이 공의회는 여성의 기여와 역할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성 바오로6세 교황의 초청으로 23명의 여성이 공의회에 참여하였기 때문이다이 여성신자들은 참관인 자격으로 참여했으나 공의회의 큰 맥락 안에서 보면, 그들은 훌륭한 역할을 해냈다여성참가자들은 교회의 개혁에 관한 관심사를 나누고 자기들이 기대하는 바를 정리하여 작성한 탄원서를 로마로 보냈다그들은 주교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공의회에서 때론 주관자로, 때론 중재자로서 자기들의 역할을 해냈다공의회가 마무리될 즈음에, 23명의 여성 참관자들은 공의회의 성과를 배가시키는 데 기여한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바티칸 저널리스트인 구드룬 세일러 (Gudrun Sailer) 교회 역사학자인 레지나 헤이더 (Regina Heyder)와 나눈 대화를 통해 보다 자세한 내용을 알아본다. 그녀는 최근에 출간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의 여성참여 관한 책, Katholikinnen und das Zweite Vatikanische Konzil : Petitionen, Berichte, Fotografien을 저술한 저자 중 한 명이다.

“1962년 공의회가 시작될 무렵 여성들이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교황이 공의회 후반부에 여성들을 참관인 자격으로 참여시킨 것은 어떤 결과를 얻었습니까?”

"교황 바오로 6세는 대규모 평신도 참관인을 임명한 최초의 교황이었습니다. 1963 년에는 13명의 남성 평신도가 참관인으로 공의회에 참여했습니다이미 공의회가 시작되기 전에 여성들은 참여를 허용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여성 신자들은 공의회 참여를 위한 활동을 강화해 나갔습니다. 주교들과 공의회 사무국에 편지를 보내, 참가 후보자 명단을 제출하고, 기자회견에서 파격적인 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에는 자기들의 의견을 관철하기 위한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벨기에 메헬린의 수에넨스(Suenens) 추기경은 1963 10월의 유명한 연설에서, 여성이 인류의 절반을 구성하고 있는 만큼 참관인으로 초청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함으로써, 여성 평신도들을 참관인으로 참여시키자는 의견이 점점 더 설득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1964년에 시작된 공의회의 제3차 회기의 개회식에서 교황이 여성참가자들에 대한 환영인사를 하고있을 때, 사무국 직원들은 아직도 ​​초대해야 할 사람을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1주일이 지나서야 참가자 각자에게 보내는 임명장이 작성되었고, 그로부터 며칠 후 최초의 여성 참관인이 회의장에 도착하게 됩니다." (내일 계속) (1)

(1) Sailer, Gudrun. "Women at Vatican II: Surprising Women, a Surprising Council!" Vatican News. Last modified June 18, 2019. https://www.vaticannews.va/en/vatican-city/news/2019-06/second-vatican-council-women-regina-heyde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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