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키시스(Catechesis)

사랑의 불

MonteLuca12 2019. 6. 21. 19:58

 

손님이 기다리고 있는 접견실에 들어섰다. 말이 손님이지 며칠 전 받은 인사청탁의 장본인이 찾아온 것이다. 내가 앉을 자리에 떡하니 앉아있다. 주객이 바뀐 것을 모르는 눈치다. 가리고 지켜야 할 기본예의는 모른다고 용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동차에도 좌석선택의 매너가 있다. 그것도 차종에 따라 다르다. 식탁예의는 말할 것도 없다. “Don’t make any noise.” 내가 배운 중학교 영어교과서는 단지 말만 가르치지 않았다.

 

계열회사 몇 개를 묶어 전산화를 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고 있었다. 286PC가 탄생한 시대이니, 중대형시스템 도입이 매우 어려운 과제였다. 그 덕에 다국적 초거대 기업의 방문기회가 생겼다. 첫인상에 적잖게 놀랐다. 장발이 유행하던 시절임에도 그들의 머리는 사진으로 보던 북한사람처럼 짧고 가지런했다. 사무실 내부구조와 집기가 촌놈 서울 구경하듯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지만, 그 안에 감도는 절도가 나를 주눅들게 한다. 자유로운 것 같으면서 엄격함이 덧씌워져 있다. 나중에 이 회사를 상대로 사업을 시작하면서, 그들이 제공하는 기업윤리와 신사도에 관한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그 과정 안에는 직장생활만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지켜야할 예의범절이 망라되어 있었다. 사업에 우선하여 예절과 규범을 중시하는 정신이 그 안에 깃들어 있다.

 

아우토반을 달리면서 우리를 초대해 준 고마운 분의 안내가 계속된다. 구간구간 속도제한이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내가 머리를 크게 끄덕인 것은 고속도로에서의 주행매너 설명에 대한 답이었다. 빠르게 가야하는 다른 차를 위해 반드시 추월선을 양보하는 관습이 속도 무제한의 아우토반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도로상태나 교통시설은 우리 것이 절대 뒤지지 않는다. 차선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주행습관이 운전대 잡는 입을 더럽게 만든다.

 

세상이 뒤집어졌다고 한탄하는 목소리가 잦아졌다. 전철에서, 공원에서 젊은이들에게 훈계하고 싶어 안달이 난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내 옆구리는 아내 손가락의 공격을 받는다. 예의범절도 세월에 따라 바뀐 건 아닌지 확인하고 싶다. 자식도 내가 뱉은 말에 마음 상할까 걱정된다. 새장 안의 새요, 품 안의 자식이다. 나이 먹으면서 따라 낮아지는 것이 목소리다.

 

정신을 차리고 잘 봐야한다. 천국가는 인터뷰 자리인데 그분의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앉으면 아무리 하느님이라도 퇴짜를 걱정해야 한다. 머리도 단정히 깎고, 옷도 예쁘게 다려 두어야겠다. 그분은 이미 일러주셨다.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마태 22,12)

 

主我之主歟 (주아지주여; "주 저희의 주님", 시편 8, 2), 夷亭 朴詠茂(아오스딩) 作

사랑의 불, 말씀의 힘

사도들이 성모님과 함께 다락방에 모여 있을 때 그들에게 강림하신 성령께서 지속적으로 우리와 함께 계신다.
이번주 일반알현은 햇빛이 따가운 베드로광장에서 열렸다. 사도행전에 관한 교리교육을 이어간 교황은 특별히 성령강림대축일에 대한 교육에 초점을 맞추었다.

기도와 숨결

교황은 다락방에서 성모님 주위에 모인 사도들을 "기도하고 있었다"고 묘사하며 이렇게 말한다. “기도는 ‘폐’와 같아서 제자들이 계속해서 숨쉴 수 있게 해 줍니다. 기도 없이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성령강림은 그들의 기대를 뛰어 넘은 사건입니다. 원시의 숨결을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바람의 힘은 놀라운 것입니다."

바람과 불

"바람과 함께 나오는 단어가 불입니다. 불은 우리에게 ‘불타는 가시 덤불’을 상기시킵니다. 성경의 전승에서 불은 하느님의 현시를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불을 통하여 생명의 말씀을 전하고, 불은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나타냅니다. 하느님의 역사는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빛을 비추어 마음을 밝게 하고 제대로 작동하는지 검사해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시나이산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오순절 축제에서는 베드로 사도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자신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불로 가득 찬 베드로의 말은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을 얻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물리치기 위하여 세상에서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진실과 사랑

교회는 사랑의 불에서 태어났습니다. 성령강림에서 점화된 불이, '성령으로 인하여 부활하신 분'의 말씀에 힘을 불어넣었습니다. 사도들의 말도 같은 성령으로 충만해집니다. 사도들의 말은 새롭게 만들어진 다른 언어가 되어, 모든 나라 말로 통역된 것처럼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은 진리와 사랑의 언어이고,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언어인 것입니다. 그래서 문맹인조차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성체성사와 고해성사

성령은 친교의 창조자이십니다. 성령은 유대인과 그리스인의 사이를 가로막는 담과, 노예와 노예에서 해방된 사람들 간의 벽을 허무는 법을 아는 화해의 예술가입니다. 성령께서는 인간의 한계와, 죄와 수치스러운 일들을 뛰어넘도록 교회를 이끄시어 성장하게 하십니다. 오직 하느님의 영만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실 수 있고 상호연대하여 살 수 있게 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친교와 화해의 공동체 안에 가족으로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1)

(1) Vatican News. "Pope at Audience: the Fire of God's Love, the Power of His Word." Vatican News. Last modified June 19, 2019. https://www.vaticannews.va/en/pope/news/2019-06/pope-francis-general-audience-fire-of-gods-love-word.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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