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키시스(Catechesis)

신학의 오순절

MonteLuca12 2019. 6. 23. 22:52

 

잠을 잘 수가 없다. 하루 종일 땡볕에 달아오른 건물이 밤에는 찜통이 된다. 6월초부터 30도를 훌쩍 넘는 로마 속 건물이 그 흔한 냉방시설 하나 갖추지 못하고 있다. 밤이고 낮이고 피하고 숨을 곳이 없다. 내가 한여름을 보낸 공소 앞 시냇물처럼 사방에서 모인 땀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래도 여기에 온 특별한 의미가 이 더위를 견뎌내게 하는 강력한 힘이다.

 

초등학생 두 아이를 데리고 유럽여행을 떠났을 때만해도 나는 사십대 초반의 젊은 아버지였다. 로마를 떠나기 전날 식구들을 끌고 여행그룹을 이탈했다.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머리 깊이 박혔던 기억을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싶은 욕심이 부린 억지다. 나보나광장의 노천카페에서 그곳 사람들처럼 저녁식사를 하고, 트레비분수와 판테온을 돌며 가진 즐거운 시간의 끝은, 아이들에게 인생 최초로 혹독한 모험의 기회가 되고 말았다. 패착의 고리는 꽤나 길게 이어졌다. 우선 택시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요, 구걸하듯 도움을 요청하는 말을 그 많은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한다. 설상가상, 적잖이 내리는 비를 속수무책으로 맞는다. 지나가는 구세주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잡은 택시기사는 내가 내민 쪽지에 적힌 호텔을 알지 못한다. 어린 아이들을 끌고 밤새 헤매다 새벽녘이 돼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교황님의 기사를 통해 일반알현이라는 단어를 수도 없이 본다. 나는 아주 특별한 알현자리에 있었다. 전세계에서 모인 신자들이 엄청나게 넓은 바오로6세홀을 가득 메웠다. 그 자리의 감동은 전날부터 시작된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임명된 새로운 대주교 44분이 전세계로부터 한자리에 모였다. 교황님은 성 베드로 바오로 대축일인 어제 새 대주교들께 팔리움(Pallium)을 걸어주는 장엄미사를 집전하셨다. 1700년이나 된 전통이라고 한다.

 

팔리움(Pallium)은 영예와 관할권의 전례적 휘장이자 길 잃은 양과 자기 양떼에게 생명을 주는 착한 목자의 상징이다. 팔리움은 두 마리의 하얀 어린양의 털로 만들어진다. 이 양들은 로마 파니스페르나의 성 로렌초 수도원의 수녀들이 기르고, 성녀 아녜스와 성녀 에메렌시아나의 유해가 지하 묘지 경당에 함께 모셔진 산타 아녜스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Basilica di Sant’Agnese fuori le Mura)에서 봉사하는 라테라노 의전율수회(Ordine dei Canonici Regolari Lateranensi) 수도자들이 교황에게 봉헌한다. 교회 이콘화 전통에서 어린양은 자주 아녜스 성녀와 함께 표현된다.”(1)

 

로마에 함께 가는 대신 하늘나라로 먼저 간 늦둥이 딸 아녜스를 기억하며, 내게 백번을 열어준 바티칸의 열쇠를 여기서 반납한다.

 

主歟 (주여; "주님", 시편 93, 3), 夷亭 朴詠茂(아오스딩) 作

자비의 신학

교황은 자기를 떠나 다른 이들을 만나는 일련의 여정 속에서, 신학자들은 연민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호소한다. 많은 이들의 억압받는 삶, 현대판 노예제도, 사회 속에서 받은 상처, 폭력, 전쟁, 그리고 이 지중해 연안에 함께 사는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고통을 겪게 만든 엄청난 불의를 보면서 신학자들은 연민을 느껴야 한다고 말한다. 성체성사가 빠지고 꾸준한 기도를 통해 영적 자양분을 공급하는 동정심이 없는 신학은 영혼을 잃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방식으로 實在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과 지능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비의 신학은, 공격적이고 호전적인 태도, 식민지의 관행, 전쟁의 정당화 등과 관련된 복합적인 사건들을 다뤄야 합니다. 종교라는 미명 하에 자행되거나 인종적 또는 교리적 순결을 요구하면서 발생하는 괴롭힘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비의 정신으로 이끌어 가는 대화방법은 고통스러운 역사의 재해석을 풍성하게 해 줄 것입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놓치지 않고 일깨워 주시는 평화의 예감이 작용하기 때문에 얻는 결실입니다.
서방의 그리스도교가 과거의 많은 실수와 비난을 통해 깨우친 덕에, 동서남북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교회의 근본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신학은 지중해 연안에 사는 사람들이 재정복의 유혹을 뿌리치고, 자기들의 머리 속에 심어진 사회적 정체성에 대한 신념을 거절할 용기를 심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와 시민사회가 난파선에서 신음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그들이 갔던 길을 되돌아올 수 있을 것입니다.”

신학의 오순절

교황은 신학의 임무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감정을 알아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님 곁으로 가까이 가야하고, 심지어 그분의 생각에까지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신학자들은 계시와 聖傳에 근거한 문화적 만남을 촉진해야 한다고 교황은 역설한다. 그러면서 과거의 위대한 신학적 종합’(theological syntheses)은 신학적 지혜의 광산이지만 현재의 문제에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 없는 것임을 경고했다.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신학자들의 소중한 임무입니다. 신학의 첫 번째 근원, 즉 하느님의 말씀과 성령은 무궁무진하여 항상 결실을 맺는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시대의 모든 이들이 각자 자기들의 말로 다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해 주는 신학적 오순절'을 바라보며 신학자들은 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꼭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를 그리스도인의 생각에 투영시켜 보면, 이런 노력이 삶의 의미와 풍만함을 찾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응답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하기 위해서는 자비의 복음에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학은, 사랑으로 찾아가시는 하느님의 시선을 만난 인간의 실존 가운데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신학을 공부하는 것은 또한 자비의 행동입니다. 훌륭한 신학자들은 착한 목자와 같이 사람들과 그들이 사는 곳에서 풍겨오는 냄새를 맡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지만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아낼 수 있고 그들의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부어줄 수 있게 됩니다. 신학은 이 세상에서 구원과 치유의 사명을 수행하는 '현장 병원'입니다!”
교황은 신학의 자유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새로운 방법을 실험할 기회가 사라지면 새로운 것은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신학을 공부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라도 가능한 한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모든 가능성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신학생과 수도자에 국한하지 말고 남녀 평신도 모두에게 신학공부의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저의 꿈은, 많은 사람들이 신학공부를 통해 서로가 다르기 때문에 얻는 기쁨을 맛보고, 대화와 수용의 신학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이런 공부는, 신학적 지식이 정체되어 있고 육신의 문제와는 동떨어진 영역의 분야가 아니라, 영육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다면체와 같은 모형을 가졌다는 것을 깨닫게 할 것입니다. 신학공부가 녹록하지 않아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지만, 그 안에는 빠져나오기 힘든 흥미로운 문화형성 과정이 담겨있습니다.”

교황령 「진리의 기쁨」이 반포된 이후, 신학은 개인과 국가공동체가 평화롭게 공존해 나가기 위하여 나누는 문화와 종교 간의 대화라고 교황은 결론 내린다.(2)

 

(1) Vatican Radio. "교황과의 친교의 상징인 팔리움." Archivio Radio Vaticana. Last modified July 3, 2018. http://www.archivioradiovaticana.va/storico/2018/07/03/%EA%B5%90%ED%99%A9%EA%B3%BC%EC%9D%98_%EC%B9%9C%EA%B5%90%EC%9D%98_%EC%83%81%EC%A7%95%EC%9D%B8_%ED%8C%94%EB%A6%AC%EC%9B%80/kr-1377026.

 

(2) Vatican News. "Pope in Naples: Dialogue and Welcome for Mediterranean of Peace." Vatican News. Last modified June 21, 2019. https://www.vaticannews.va/en/pope/news/2019-06/pope-in-naples-dialogue-and-welcome-for-mediterranean-of-peac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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