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조르노 파파

어디로 갈 것인가?

MonteLuca12 2019. 4. 21. 08:52

부활성야미사도 「파스카성야미사」로 전례용어가 바뀌었다. 이번엔 옛 것이 좋고 편하다는 뜻이 아니라, 알아 두어야 하겠다는 다짐이다. 「망예수부활」이란 용어를 잊지는 않았다.

 

오 복된 탓이어라” (Felix Culpa) 나는 부활찬송의 이 구절을 좋아한다. “참으로 필요한 죄, 그리스도의 죽음이 씻은 죄, 너로써 위대한 구세주를 얻게 되었도다.” 내가 오늘 짓고 있는 죄를 선조 아담의 원죄에 붙여 넣고 싶다. 부활의 의미가 천 배는 뻥튀기 될 것 같다.

 

교황님은 부활이 묘비를 걷어내고 무덤의 돌을 굴려서 치우는 것을 기념하는 축제라고 말씀하신다. “복된 탓에 매달리는 억지를 부릴 때가 아니다. 돌 치우러 가자. 주님께서 부활하셨으니까… 넘어지면 일으켜 주실테니까...

 

Vatican News에 실리는 교황님의 강론이나 연설이 즉흥적인 것이라는 설명을 자주 본다. 강론 원고도 당신이 직접 쓰시지 않나 싶다. 외람되지만 교황님의 글솜씨에 놀란다. 오늘 강론 말미의 아름다운 문장을 예쁜 우리말로 옮기기에 시간이 부족했다. 어제 저녁 로마에서 봉헌된 「파스카성야미사」의 시작시간이 우리 새벽 330분이었다. 동이 트고 나서야 올라온 기사다. 거기에 담긴 교황님의 강론을 식기 전에 전하고 싶어 서둘렀다. 아직 따끈따끈하다.

 

부활하셨습니다. 승리하신 주님께서

 

교황의 「파스카성야미사」 강론 - 희망을 꺾는 돌을 치우자.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루카 24, 5)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봉헌된 「파스카성야미사」의 강론에서 교황은 이 주제를 여러 차례 되풀이하며 우리가 죄와 좌절의 돌을 치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은 「파스카성야미사」가 모든 가톨릭 전례 중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성토요일 저녁에 거행되는 이 미사는 부활을 극적으로 소개한다. , , 성가, 세례수는 모두 희망과 재탄생을 나타내는 강력한 상징이다. 교황의 강론도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돌을 굴려 치우자
교황은 여자들이 향료를 준비하여 무덤에 가져오는 복음말씀으로 강론을 시작했다. 그들은 입구를 막고 있던 돌이 치워진 것을 발견하고 헛걸음을 한 것으로 생각했다"그 여자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때로는 모든 것이 돌로 막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기대에 부푼 희망이 허망하게 꺼져버리는 것이 인생법칙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오늘 보고 있습니다. 부활은 묘비를 걷어내고 무덤의 돌을 굴려서 치우는 것을 기념하는 축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희망과 기대를 깨트리는 가장 단단한 돌까지 치워 주셨습니다. 그 돌들은 죽음과 죄, 두려움과 세속화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묘비 앞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 살아있는 돌’, 즉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좌절의 돌
교황은 우리 각자의 마음에서 굴려버려야 할 돌을 찾기 위해 노력하라고 말한다그는 먼저 희망을 막아버리는 좌절의 돌을 들었다. 우리가 모든 일이 잘못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약해져서 냉소적이고 부정적인 사람으로 변하고 결국 실의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살아 나올 희망이 없는 일종의 "무덤 심리학"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주님은 체념하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분은 죽은 자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있는 이들의 하느님입니다절대로 희망을 묻어버리지 마십시오." 

죄악의 돌
교황은 죄악의 돌은 마음을 봉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죄는 유혹합니다. 쉽고 빠르게 부귀와 성공을 얻을 수 있다고 약속하지만, 결국 고독과 죽음만을 남겨줍니다. 죄는 죽음 가운데서 생명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 말해 사라져가는 것에서 생명의 의미를 찾으려는 것입니다. 죄는 당신 마음의 입구를 막고 있는 돌과 같아서 하느님의 빛이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화려해 보이는 부귀영화를 자랑스러워하거나 좋아하지 말고, ‘참 빛이신 예수님을 선택하십시오.” 

위를 올려다볼 용기
교황은 다시 무덤에 간 여자들의 모습 이야기로 돌아왔다.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으로 숙이자…"(루카 24, 5) 이 복음말씀은 그들이 위를 올려다볼 용기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똑같은 짓을 하는지 교황은 상기시킨다우리는 스스로를 침울한 상태에 가두어, 자신을 주님을 향해 열기 보다는 마음 속 어두운 곳에 홀로 남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일어나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내가 어느 높이에 있는지 몰랐다는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인용하면서 교황은 주님만이 우리를 일으키실 수 있다고 말한다. ”묘지만 바라보고 있는가, 아니면 살아 계신 분을 찾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라고 교황은 제안한다. 

주님과 함께 우리는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부활은 믿는 이들이 더 이상 묘지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그들은 살아 계신 분을 만나러 나갔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에서도 어디로 갈 것인지 물어야 하는 근거입니다. 우리는 자주 문제가 있는 방향으로만 가게 됩니다. 계속해서 죽은 자들 속에서 살아 계신 분을 찾고 있습니다. 살아 계신 분이 우리를 변화시키도록 맡기지 못하고 후회와 비난, 상처와 불만 같은 것만 캐내면서 살고 있습니다."

교황은 마지막으로 권고한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의 바다에 쓸려가지 않도록, 죄의 모래톱에서 서성이지 않고, 좌절과 두려움이라는 암초에 부딪히지 않을 은총을 청합시다. 모든 경우에, 모든 일에 우선해서 부활하신 주님께 우리를 맡깁시다. 그분은 반드시 우리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출처: Vatican News, 20 April 2019, 21:52번역 장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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