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마르지 않는 샘

MonteLuca12 2020. 5. 8. 14:53

눈을 감는다. 눈꺼풀이 만들어놓은 막의 중앙을 비추는 빛이 점점 퍼져나가 둥근 꽃타래 같은 모양을 이룬다. 그 빛무리가 은은히 비추는 막을 뚫고 튀어나올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순간, 잠시 숨이 멎는다. 갑자기 떠오른 단어가 정막을 깬다. 짧은 고독의 막이 걷힌다.

 

늘 지나는 산책로 길목에 비둘기 한 마리가 앉아있다. 오늘은 내가 몇 걸음을 돌아간다. 그 애의 평온한 아침을 깨고 싶지 않은 배려다. 거기서 얻은 작은 기쁨을 비집고 아침 미사 중에 나를 깨웠던 단어가 떠오른다.

 

‘특별’이라는 함정에 빠져 살았다. 먼저도, 우선도 내가 정한 ‘특별’의 순서다. 그것은 내 영혼을 옭아매는 강박이다. 과욕과 집착의 원천이고, 부담을 키워가는 자양분이다. 자랑거리를 만들고 싶은 얄팍한 속셈이고, 내 곁에 마음을 잡아두려는 음흉한 심계(心悸)다. 신앙도 사랑도 치열한 자리다툼의 늪에 빠져버렸다.

 

내 심장에 눌어붙어 떨어지지 않는 그놈을 털어내려 애를 쓴다. 힘들고 아프다. 답이 뻔한 기도를 생각한다. 내게 ‘특별’한 은총 주시기를 청하려는 의향이 담겼다. 그와 함께 피어오르는 생각에 기도를 접는다. 그분께서 흘리신 피는 특별하나, 거기서 흘러나오는 사랑은 지극히 평범한 곳을 적실거란 생각 때문이다.

 

38번째 바티칸 박물관 미술품을 바오로 6세 교황님의 강론 말씀과 함께 감상한다.

 

니콜로와 조반니, 12세기 말, 최후의 심판, 바티칸 박물관, 미술관, © Musei Vaticani​

 

하느님의 자비는 마르지 않는 샘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확실한 원의를 가지고 세상에 가져오신 자비의 샘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로운 마음은 열정을 다해 저희를 찾으십니다. 저희를 찾으실 때까지 쉬지 않고 애쓰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변함없이 너를 사랑하고 있다. 내가 온 것은 너를 위해서이다. 네가 누구인지 깨닫게 해주기 위하여, 네가 얼마나 무능력하고 비참한지를 알게 해주기 위하여 온 것이다. 그러나 내 아들아! 믿음을 잃지 말거라. 너의 고통을 내가 씻어주겠다.”

 

우리가 예수님께로 다가갑시다. 그분은 당신을 희생하여 거룩한 제물이 되신 분입니다. 주님의 사랑에 취하여 그분께 우리를 내어드립시다.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께 청합시다. 전능하시고 지선하신 하느님께 의탁하여 우리의 영혼이 새로워지게 합시다.

 

“주님, 저희를 구원하소서. 당신 홀로 저희에게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주시는 분임을 믿나이다.”

 

(바오로 6세 교황, 강론, 1964.9.20)

 

출처: Vatican News, 번역 장주영

https://www.vaticannews.va/en/vatican-city/news/2020-05/beauty-art-faith-consolation-vatican-museum-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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