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바티칸 박물관 관람 - 35

MonteLuca12 2020. 5. 4. 14:40

그를 처음 만났던 날이 분명하지 않다. 꽤 멀리 찾아 돌아갔지만 거기서 기억이 엉켜 풀리질 않는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은, 거기서 찾고 싶은 의미를 아까워하는 마음에 밀려 냄비 속의 수증기처럼 갇혀버린다.

 

대단한 만남은 아니었다. 산꼭대기에서 흘러 내려 바다에 이르는 강물의 여정과도 같이, 길고도 긴 세월을 지쳐오며 스쳤던 인생들 중 하나였다. 처음부터 눈에 띈 존재가 아니었고 적잖이 긴 세월동안 관심을 둔 사람도 아니었다. 새록새록 뇌리에서 피어오르는 것은 그가 내 삶에 꽂아준 예쁜 꽃잎이다. 내 심장의 피를 따뜻하게 데워준 온정의 손길이다.

 

아무도 알지 못하고 태어난 세상, 얼마나 넓은지 모르고 살아온 땅, 그 안에 무엇이 숨쉬고 있는지도 모르는 천지에 내가 아직 서있다. 가야할 곳이 희미해지고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이 무너져 내린다. 한 번씩 불어 닥치는 광풍에 희망의 불꽃이 흔들리고 사랑의 온기가 싸늘하게 식는다.

 

벌거벗은 채 광야에 홀로 버려진 내 모습을 본다. 모래 바람에 눈을 감는다. 고독과 절망이 모든 것을 집어삼킬 무렵, 그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를 처음 만난 곳이 여기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따뜻한 그의 손이 아직도 나를 붙잡고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 (그리스도의 생애 시리즈 중에서); 태피스트리(직물공예), 양모와 실크 및 은사; 1783-1784; 바티칸 교황궁의 두 번째 로지아, Apartments of the Papal Representative, Manufacturer: San Michele; artist: Anthony van Dyck (1599-1641); cartoon: Pier Paolo Panci; tapestry maker: Giuseppe Folli, © Musei Vaticani

 

 

부활하신 우리의 목자

장구한 인류의 역사 속에서

지치지 않고 우리를 찾아다니신 분

 

세상의 광야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당신의 형제자매들을

한시도 잊지 않으셨다

 

수난의 흔적들과 자비 가득한 사랑의 상처들로

우리를 건져내시어

생명의 길로 이끌고 가신다

 

당신께서 가신 그 길을 따라오라

우리를 부르신다

 

그분은 오늘도

온갖 죄악으로 만신창이가 된 수많은 영혼들을

당신의 어깨에 짊어지셨다

 

(교황 프란치스코, 부활 우르비 엣 오르비 메시지, 2017. 4. 16)

 

출처: Vatican News, 번역 장주영

https://www.vaticannews.va/en/vatican-city/news/2020-05/beauty-art-faith-consolation-vatican-museum-34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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