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도 더 지나 재개된 미사에 참례하는 나는 벙어리다. “아멘”이란 응답조차도 해설자가 대신한다. 과거 라틴어 미사에서 복사하던 생각이 되살아난다. 그 당시 모든 신자가 함께 할 수 있었던 계응(啓應)은 이것뿐이었다.
“Dominus vobis cum!”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Et Cum Spiritu tuo!”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
나는 성체를 모실 수 없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하느님 백성의 확실한 인호가 새겨진 그들의 영혼은 양식이 부족하여 굶주리는, 지독히 가난한 이들이었다. 공소의 열심한 신자들을 처음 만난 것은 아주 어린 시절이다. 내 인생의 이력에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여섯 살이 채 못 되어 시작한 복사 덕에 얻은 기억이다.
방학이면 한 달간 파견됐던 공소는 주로 산골 오지 마을이었지만 해안가 공소도 한번 갔었다. 신부님을 만날 수 없는 사람들, 성제와 성체에 목말라있는 사람들, 그들 앞에서 한 달에 한번 올리는 거룩한 제사는 진정한 천상잔치였다.
내 치장 속에 그 숭고한 선물의 가치를 티끌처럼 묻어두었던 허물이 드러났다. 본질과 지엽을 혼동했던 어리석음이 부끄럽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져온 뜻밖의 시련,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섭리가 놀랍다.
신령성체(神領聖體; Spiritual Communion)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주)의 ‘위기상황에서의 신앙생활’ 두 번째 기고문은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긴급 상황과, 미사에 참례하지 못하는 어려움 속에서 ‘신영성체’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역자 주]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Federico Lombardi): 교황청 공보실장을 지낸 예수회 소속 신부다.
“연로하신 분들은 어렸을 적에 교리를 배우면서 ‘신령성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겁니다. 이는 미사에 참례할 수 없어 거룩한 성체를 모시지 못하는 상황에서 하느님의 제단에 자신을 봉헌하신 예수님과 영적으로 일치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신령성체’는 미사 중 성체를 영할 때뿐만 아니라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도 예수님과 지속적으로 일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교회의 관습입니다. 영성체를 대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의미에서 영성체로 연결시키고 영성체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성체강복이나 다른 기도 시간에 참례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신령성체’가 필요한 상황이 과거지사로만 인식되는 것은 최근 수십 년 동안 그에 대한 실제적인 경우를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미사에 참례하여 영성체하는 것은 그 자체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강조되다 보니 다른 전통적인 봉헌의 방법들이 무색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 번의 예외적인 상황을 경험하면서 ‘신령성체’에 대해 다시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011년 마드리드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 때의 일입니다. 밤에 갑작스럽게 몰아닥친 폭풍으로 인해 행사장에 설치된 천막 대부분이 쓰러졌습니다. 그 안에는 2백만 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폐막미사에서 영할 성체를 축성하기 위하여 제병을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교황님이 집전하신 이날 미사에서 축성된 성체는 극히 적었고 아주 소수의 참석자들만이 영성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속상해했습니다. 마치 세계청년대회가 실패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행사를 마무리하는 순간에 핵심적 전례가 빠져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이해시키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물리적으로 성체를 영하는 것이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예수님과 일치하고 그분의 몸인 교회와 하나가 되는 유일하고도 필요불가결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황님께서는 오늘 아침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평일 미사를 봉헌하시면서 당신과 함께 기도하는 신자들을 격려하셨습니다. 그 자리에 함께 있지 않더라도 ‘신령성체’를 통하여 참례하는 이들을 향해 보내신 당신의 마음이었습니다. 교황님은 오랜 세월동안 훌륭한 영적지도자들이 가르쳐온 전통적인 방식을 알려주셨습니다. 이 방식은 우리의 할아버지와 부모님들께 친숙한 것입니다. 그분들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성당에 갔습니다. 그 중 일부는 매일 같이 미사에 참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모두 자신들의 일상생활 안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하느님과 일치하는 방법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교리를 배울 당시의 기억들 중에는 ‘성체거양’을 하는 신부님의 사진이 담긴 상본이 있습니다. 시계를 보면 시간이 생각나는 것처럼, 그 상본을 볼 때마다 세계의 여러 나라와 여러 대륙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사제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당시에는 아침에만 미사가 있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의 희생제사가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기억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우리는 언제나 그분과 영적인 일치를 이룰 수 있고 그분의 희생제사에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령성체’는 성체를 영할 수 없을 때 성체를 모시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에서 마음으로부터 영성체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열망에는 자신의 삶을 예수님과 일치시키려는 마음과, 특히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바치신 그분의 희생제사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원의가 담겨 있습니다.
“‘영성체의 단식기간’이 길어지면서 자주 영성체하던 많은 신자들이 성찬례를 통해 얻던 영혼의 양식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점점 더 많이 받고 있습니다. 진정 예외적이고 특이한 방법의 단식을 신자들에게 강요하는 부담을 받아들인 것은 교회 자신이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팬데믹으로 인해 격리와 박탈, 고통을 감내해야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동병상련의 처지를 인식하고 연대할 수 있는 표징을 마련한 것입니다.”
“단식은 일단 박탈이나 부족의 느낌이 들지만 성장의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불가피하게 오랫동안 서로 떨어져있는 배우자의 사랑이 그로 인해 더욱 돈독해지고, 순결하게 성장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처럼, 영성체의 단식기간은 성장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신앙이 성장하고, 하느님의 선물인 성체에 대한 열정이 더 욱 커지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성체성사의 혜택을 누릴 수없는 사람들과의 연대가 확대되고, 성체를 받아 모실 수 없게 만드는 부주의한 습관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성체성사가 주 예수님의 놀라운 선물임을 깨닫게 해 주어 더욱 열망하게 만듭니다. 무상으로 제공되기 때문에 사소하거나 진부한 것이 아님을 새롭게 이해하여 그 열망이 지속되게 만듭니다. 이것은 이 시련의 시기가 우리에게 전해준 또 하나의 가르침임에 틀림없습니다.”
출처: Vatican News, 27 April 2020, 18:00, 번역 장주영
https://www.vaticannews.va/en/vatican-city/news/2020-04/spiritual-communio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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