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피난 중의 휴식

MonteLuca12 2020. 5. 3. 09:26

잠이 덜 깬 눈을 비비고 일어난다. 침대 끝에 앉아 정신을 가다듬는다. 회전목마가 멈추었지만 아직도 돌고 있는 머릿속 구성품이 멈추기를 기다린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삶의 현장을 향해 빠져나가려 안간힘을 쓴다.

 

묵상하고는 거리가 멀다. 같은 침묵 속에 있으나 사변의 범주가 딴판이다. 진창 먹어대고, 흥청 놀아대던 무리들이 남기고 간 쓰레기더미처럼 머리가 복잡하다. 광란이 훑고 간 뒷골목에 너저분한 잔해들이 흩어져 있다. 밀려드는 회한에 치를 떤다.

 

그새 찾아온 여명이 씻으러 가야하는 길을 밝힌다. 그 빛의 꼬리에 희망이 붙어있다. 후회를 접고 절망을 턴다. 또 살아 보는 거다. 오늘은 그래도 할 일이 있다.

 

일하는 사람들의 수호자이신 요셉성인의 축일에 생소한 기도를 만났다. 130년도 더 된 기도를 새기기가 쉽지 않았다. 하루 종일 주무르다가 내 멋대로 옮겼다. 나를 지켜주시는, 나의 수호성인께 기도드린 지가 얼마나 됐던가? 송구한 마음을 오늘에서야 바친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예술” (ART THAT COMFORTS), 서른세 번째 성화는 레오 13세 교황님께서 요셉성인께 바치신 기도와 함께 전시되어 있다.

 

페데리코 바로치, "체리의 성모님"으로 알려진 <이집트로 피난 중의 휴식>, 캔버스에 유화, 1570-73, 바티칸 박물관, 미술관, © Musei Vaticani

 

 

오, 복되신 요셉이시여!

저희의 고통을 당신께 맡기나이다.

간구하오니,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의 도우심을 전구해주소서.

 

성가정의 충실한 보호자시며,

하느님의 간택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기르신 아버지시여,

저희를 보호하소서.

 

사랑 지극한 아버지, 모든 잘못과 타락의 고통에서 저희를 지켜주소서.

지극히 용맹한 수호자,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도록 저희를 도와주소서.

 

고령에도 불구하고 어린 예수님의 생명을 위험으로부터 구해주셨으니,

하느님의 성교회를 적들의 올무에서 건져내시고 모든 역경에서 구해주소서.

 

주님의 품 안으로 저희를 이끄소서.

임종하는 이의 수호자, 당신의 모범을 따르게 하소서.

당신의 도움에 힘입어 거룩한 삶을 살다가, 행복한 임종을 맞게 하소서.

천국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전구하여주소서.

 

아멘.

 

(레오 13세 교황, 성 요셉께 바치는 기도, 회칙 「쾀쾀 플루리에스 (Quamquam Pluries」, 15 August 1889)

 

[역자 주] “Quamquam Pluries”이미 여러 번에 걸쳐라는 뜻의 라틴어다. 이 회칙은 성 요셉 신심에 관한 것으로, 레오 13세 교황은 "성 요셉이 가장으로서 권위를 가지고 관리하신 성가정이야말로 그 안에 교회를 싹틔우고 계시다면서 성 요셉은 마리아의 남편이며, 예수님의 아버지이시므로 가톨릭교회 위에 가장권을 가지고 계시다고 밝혔다. (참조: 가톨릭신문, 3086, 2018. 3. 18)

 

출처: Vatican News, 번역 장주영

https://www.vaticannews.va/en/vatican-city/news/2020-05/beauty-art-faith-consolation-vatican-museum-3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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