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조르노 파파 65

교황님의 관심사

휴가는 떠나기 전 기분이고, 커피는 콩 갈 때의 향기다. 군사도로 미시령 밑엔 제법 큰 미군부대가 있었는데, 그곳은 우리 본당 공소 중 하나였다. 교중미사가 끝나면 복사하러 거기 가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신부님의 지프를 타는 재미를 놓칠 수 없었고, 미사 장소인 식당을 휘감는 코코아 냄새는 촌놈들이 절대 알 수 없는 특권층의 경험이었다. 도시락에 찐 우윳가루만 아는 혀가 처음 맛본 코코아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먹는 것이 아니었다. 슈호프는 수용소에 들어와서 그걸 절실히 느꼈다. 음식을 먹을 때는 그 진미를 생각하며 먹어야 좋은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이 조그마한 빵 조각을 먹듯이 먹어야 한다. 조금씩 입 안에 넣고 혀 끝으로 이리저리 굴리며 양쪽 볼..

본조르노 파파 2019.04.24

천사들의 월요일

부활 지나 두번째 맞는 아침이다. 인고의 계절 끝자락에 내 마음은 엠마오로 향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제자들을 흉내낸다. 눈을 뜨며 무의식적으로 짧은 기도를 읊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떠오른 기억이다. “Benedicamus Domino!” 그것은 내가 탯줄 떼고 11년 6개월만에 처음 들은 기상 나팔이다. 이른 새벽, 엄청나게 넓은 침실을 온통 뒤덮고도 남았던 이 기도의 계송(啓誦)은 우리 '침실장' 형님의 우렁찬 목소리에 실려 있었다. 같이 늙는다는 말이 이래서 생긴 것일까? 그때 고3 형님은 ‘삼촌’ 같았다. 어린 동생들 보살피러 중간중간 끼어 있던 ‘삼촌’들과 함께 살던 8호 침실은 80명을 수용하는 집단 숙소였다. 신학생이 되었다고 어제의 오줌싸개가 늘 해오던 짓을 하루아침에 그만둘 리 없..

본조르노 파파 2019.04.23

부활장엄강복

“Urbi et Orbi” 교황님의 장엄강복을 뜻하는 말이다. 字句 대로는 ‘도시와 전세계에’라는 의미의 라틴어이다. 그야말로 교황님은 전 세계를 아우르는 분임을 실감하게 한다. 전통에 따라 오늘 베드로 광장에서 전세계의 사람들에게 보내신 부활 메시지와 축복은 온통 인류가 안고 있는 고통과 어려움에 관한 것이다. 굳이 남의 골치 아픈 문제로 걱정하실 필요가 있나 싶다. 그렇다고 해결될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교회가 무엇인가? 이 세상 속에서 교회가 할 일은 어떤 것인가? 우리와는 도무지 연결되지 않는 교황님의 부활 메시지가 그런 의문을 갖게 한다. 80년 전 스페인의 젊은이들은 정치, 사회적으로 혼란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섰다. 뿐만아니라 무신론자들의 공격으로 부서진 교회의 본 모습을 찾기 위..

본조르노 파파 2019.04.22

어디로 갈 것인가?

부활성야미사도 「파스카성야미사」로 전례용어가 바뀌었다. 이번엔 옛 것이 좋고 편하다는 뜻이 아니라, 알아 두어야 하겠다는 다짐이다. 「망예수부활」이란 용어를 잊지는 않았다. “오 복된 탓이어라” (Felix Culpa) 나는 부활찬송의 이 구절을 좋아한다. “참으로 필요한 죄, 그리스도의 죽음이 씻은 죄, 너로써 위대한 구세주를 얻게 되었도다.” 내가 오늘 짓고 있는 죄를 선조 아담의 원죄에 붙여 넣고 싶다. 부활의 의미가 천 배는 뻥튀기 될 것 같다. 교황님은 부활이 묘비를 걷어내고 무덤의 돌을 굴려서 치우는 것을 기념하는 축제라고 말씀하신다. “복된 탓”에 매달리는 억지를 부릴 때가 아니다. 돌 치우러 가자. 주님께서 부활하셨으니까… 넘어지면 일으켜 주실테니까... Vatican News에 실리는 교..

본조르노 파파 2019.04.21

세상의 모든 십자가

그놈의 속물근성은 나이와 역주행이다. 이놈에게 필요한 영양공급원이 넘쳐난다. 교만과 욕심, 미움과 질투, 잘난체와 자랑질… 제멋대로 떠들면 말이 되고 가짜 뒷담화가 사실로 둔갑하는 것을 어찌하랴? 늙은 것들이 더하다. 십자가는 나만 지고 흉측한 놈은 떵떵거리고 사니 배알이 뒤틀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고 분하다. 십자가를 앞에 두고 그렇게 떠들었다. 말로만 사순시기, 입으로만 성주간을 보냈나 보다. 금년에는 조금 더 특별하게 지내자고 마음먹었던 '마흔날'이었다. 그것 밖에는 못된다. 그 속물이 누구냐? 이 세상에 널려 있는 십자가, 누구나 예외없이 모두가 지고 있는 십자가, 그걸 다 모아 골고타 언덕까지 메고가신 분이 있다. 오늘부터 다시 생각하자. 내가 진 십자가는 도대체 무엇인지? 교황님이 가르쳐..

본조르노 파파 2019.04.20

'기름부음' 받은 이들

외출 외박이 허락된 것은 꽤 나중의 일이다. 성주간이 시작되는 날, 갇힌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바깥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가고 오는 데 이틀을 잡아먹는 거리 보다도 도무지 집까지 가는 것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시절이었다. 그래도 나는 갈 곳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몸에 밴 성주간의 ‘예절’은 딱히 새로울 것이 없었지만 생전 처음으로 남의 성당에서 살아본다는 것은 떨리는 경험이었다. 그보다 외박을 하고 있다는 것에 마냥 신났다고 해야 옳다. ‘성체건립대례’, 옛 용어가 늘 친근하다. 그런데 성유축성미사는 뭐라했는지 기억에 없다. 많은 이들이 ‘사제서품식’에서의 감동만 가슴에 품고 신품성사의 지고한 가치를 생각하는 데에는 소홀하다. 우리의 목자들은 이 미사에서 성품에 올려졌을 때의 서원을 갱신..

본조르노 파파 2019.04.19

십자가 위에서

보릿고개 곳간 비듯 새벽미사 참례하는 숫자가 슬금슬금 줄더니 급기야 어제 아침에 작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성당 뒤 켠 반쪽의 전등이 꺼진 것이다. 하필 성삼일을 하루 앞둔 날 이런 일이 생겼다. 성당이 그렇게 큰 것도 아닌데 내가 봐도 너무 휑하다. 게다가 복사하는 아이 둘과 전례봉사자를 빼고 나면 내가 제일 영계다. 앞으로 10년 뒤엔 앞쪽 전등이라 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런저런 쓰잘데없는 걱정에 분심투성이의 엉터리 미사를 했다. 오늘 ‘성목요일’은 사제들의 축일이다. 성체성사와 함께 신품성사를 세우신 날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모든 신부님들께 축하인사를 해야 할 텐데 오늘은 별로 내키지 않는다. ‘사제들의 인사적체’라는 엉뚱한 이야기가 있다. ‘부주임 사제’의 범위를 넓힌 것은 이런 맥락과 ..

본조르노 파파 2019.04.17

아, 노틀담!

루이자는 윌이 떠나고 나서야 그가 생전에 쓴 편지를 파리 시내에 앉아 읽는다. “반드시 프랑 부르주아 거리의 카페 마르키에서 크루아상과 커다란 카페 크렘을 앞에 놓은 채 읽을 것.” (소설 『미 비포 유』의 에필로그 중에서) 지극한 사랑으로 전신마비의 삶을 보살펴준 여인이 파리에 살 수 있도록 사랑의 보답을 하고 애절한 내용을 담아 거기서 받게 맞추어 보낸 편지다. 30년도 더 전에 파리 복판에서 길을 잃고 당황한 적이 있다. 출장 중에 주일을 만나 성당에 갔다가 겪은 일이다. 분명히 호텔로 돌아올 길을 머릿속에 그려 두었는데 어쩜 그렇게 골목골목이 다 똑같을까? 대가가 컸지만 미사는 궐하지 않았다. 지금도 생각난다. 적잖게 어두운 성당 안이 요즘 여의도의 벚꽃 길처럼 온통 하얗다. 쉽게 만날 수 없는 ..

본조르노 파파 2019.04.17

예수님은 아마추어

아내가 친하게 지내는 언니는 프로 가수처럼 노래를 잘 한다. 그녀의 신청곡 1번은 일본가요 「고이비토요」다. 다들 구성지게 부르는 그 노래의 맛을 느끼고 싶어 청해 듣느라 난리다. 가사의 의미를 알고 나니 왜 그리 애절하게 들렸는지 이해가 된다. “연인이여, 곁에 있어 주세요. 추위에 떨고 있는 제 곁에 있어 주세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절규를 담고 있다. 오늘 교황님 말씀 때문에 뜻밖의 단어 공부를 했다. 원래의 의미 외에 ‘어설프고 풋내나는 사람’을 빗대어 쓰는 단어 ‘아마추어’가 라틴어 ‘아마톨’(amator)에서 나왔단다. ‘사랑하는 사람’, ‘애인’이란 뜻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amator’의 사랑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애매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인지, ‘나를 사랑하는 분’인지 확인..

본조르노 파파 2019.04.16

영적 세속성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소식과 가르침에 관심이 깊어진 것은 교황권고 「복음의 기쁨」을 읽고 나서다. 나는 그때 꾸르실료에서 교구울뜨레야를 준비하고 있었다. 울뜨레야의 주제도 「복음의 기쁨」을 공부하면서 선택했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갈라 5, 6) 단지 행사의 품위를 높이고 멋을 내기 위한 주제가 아니길 바랐다. 그래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진지한 토론을 거쳐 정했다. 그리고 우리의 봉사가 형식의 너울을 뒤집어쓴 채 본질을 놓친다면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코린 전 13,1)에 불과할 것이란 걱정을 했었다. 돌이켜보면 아쉽고 부끄러운 것투성이다. 교황님은 「주님수난성지주일」 강론에서 ‘영적 세속성’에 관한 말씀을 하신다. 생소한 단어라 우리말 용어를 찾는데 시간을 많이 썼다. 용어보다 내용에 ..

본조르노 파파 2019.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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