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둘레길로 단장된 낙산의 성벽을 가본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나는 어려서 낙산 기슭에서 살았다. 그곳은 내 인생 제2막의 무대였다. 눈만 뜨면 보고 살던 그 성벽이 그렇게 크고 긴 줄 몰랐다. 옛날엔 그저 우리가 사는 공간과 그 옆에 딱지조개처럼 붙어있던 집들을 가르는 담장일 뿐이었다. 그 담이 나를 바깥 세상과 떼어놓고 있다는 생각은 아예 해본 적도 없고, 그토록 엄한 규칙생활도 저 너머 동네에 대한 동경의 싹조차 내 마음 안에 틔우지 못했다. 비무장 지대를 가르는 우리의 철책선이 통일의 심볼로 승화된 베를린 장벽처럼 터지는 날을 살 수 있을까? 아메리카 대륙 허리에는 어쩌자고 그렇게나 큰 담이 새로 올라가고 있는가? 교황님의 마음 속엔 예루살렘의 분쟁과 함께 그런 것들이 걱정으로 쌓여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