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조르노 파파

동서양을 잇는 다리

MonteLuca12 2019. 5. 6. 00:04

나보다 머리 하나 더 키가 큰 옥수수 밭에 서있다. 이곳에 존재하는 것은 내 머리카락보다 촘촘히 심어진 소들의 겨울 여물과, 밤하늘을 빼곡하게 뒤덮은 별들과, 그 사이에서 방황하는 내 영혼뿐이다. 갑자기 그 하늘 판에 별똥별 하나가 획을 긋는다. 그리고 잠시 후 개미떼 같이 총총하던 별무리가 일제히 우박처럼 쏟아져 내린다. 황급히 몸을 피한 곳이 눈설지 않다. 언젠가 한 여름을 보낸 곳이다.

 

한기가 느껴지는 바닥에 엎드렸다. 구름이 가는 것인지 달이 오는 것인지 분간이 안된다. 고향집 앞바다와 설악의 준령이 자리를 바꾼다. 이 바꿈질을 몇 번 반복하더니 파노라마가 되어 내 머리 주위를 휘감는다. 그 앞으로 갑자기 튀어나온 건 예수님의 십자가다. 키레네 사람 시몬이 대신 지고 있다. 수많은 군중도 성경에서 본 모습 그대로다. 그들 틈에서 수도복을 입은 누나를 봤다. 내 생명의 고향, 어머니의 자궁이 잘려 나와 바람에 밀려 쉬지 않고 굴러간다. 자꾸자꾸 멀어져 간다. 심한 현기증에 눈을 뜰 수가 없다. 뒹굴고 발버둥쳐도 몸은 일으켜지지 않는다. 순간 천둥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 놀라서 떠진 눈꺼풀 사이로 성체등의 불빛이 파고든다. 가까스로 일어나 앉아 정신을 차리려 애쓰는 등뒤로 어두운 그림자가 지나가며 말을 흘린다. 그냥 사는 거다.”

 

꿈은 꾸었는데 잔 것 같지 않다. 배가 아파온다. 변기에 앉아 멀건 물을 쏟아냈다. 하루 반나절을 굶어 수척한 얼굴이 거울 속에 있다. 그 거울이 넥타이 매는 일을 도왔다. 서둘러 밀린 일을 마무리하고 휴가를 냈다. '서울의 봄', 민주국가를 향한 젊은 용트림이 종로를 막았다. 사이를 뚫고 가야하는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숙인다. 오늘은 함께할 수가 없다. 십여 년 전 하루를 잡아먹던 거리가 고속도로 덕에 4시간으로 줄었다. 대문을 열어 주시는 분이 어머니가 아니다. 병 수발들러 와 계신 이모 보다 앞서서 들어간 방엔 넋을 잃은 아버지가 어머니 곁을 지키고 있다.

 

한 통의 편지가 내 앞으로 배달되었다. 학교에서 온 것이다. 뜯지 않고 설합 가장 깊숙한 곳에 밀어 넣었다. 나는 그날 주님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아직도 가끔 답을 기다리는 꿈을 꾼다.

 

교황님은 불가리아에 가셨다. 소식과 기사가 쏟아진다. 강론을 못 들어도, 교리교육이 아니라도 교황님을 통해 그 나라를 아는 것이 재미있다.

불가리아는 동서양을 잇는 다리
교황은 불가리아에 도착하여 소피아시의 관료, 시민사회대표 및 외교단과 만나는 첫 공식행사를 가졌다지리적으로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는 동쪽의 흑해와 서쪽의 아드리아해 사이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교황은 첫 연설에서 불가리아를 동양과 서양의 다리라고 말한다. 이런 여건으로 인해 다양한 문화와 인종, 문명과 종교가 만나 수세기 동안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땅이다교황은 아타나스 부로프 광장 (Atanas Burov Square)에 도착한 직후 대통령, 관료, 외교단을 대상으로 연설하면서 불가리아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다양성은 독특한 정체성을 존중하는 것과 합해져 기회와 풍성함의 원천이 됩니다. 절대로 갈등의 근원이 될 수 없습니다."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를 기리며
교황은 2002 5월 성 요한바오로 2세가 불가리아를 방문했을 때, 요한23세에 대해 언급한 사실을 상기시켰다나중에 성인이 되신 요한23세가 교황사절로 소피아에서 10년간 봉사한 경력을 이야기한 것이다. 교황은 또한 슬라브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했고 유럽의 공동 수호성인이 되신 치릴로와 메토디오 성인에 대해 말했다. "성인들은 교회와 국가와 민족 간의 유익한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화합과 형제적 만남의 영감을 주신 분들입니다."

역사의 특별한 순간
교황은, 자유와 주권을 박탈했던 전체주의 정권이 종식된지 30주년이 되는, 불가리아 역사의 특별한 순간을 기념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최근 수십년간 200만 명이 넘는 불가리아 국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조국을 떠나 이주한 결과 발생된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이주의 바람이, 출생률 하락을 일컫는 인구통계학적 겨울과 합해져서 많은 마을과 도시의 인구감소와 공황 상태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격려와 초대
교황은 불가리아의 젊은이들이 이 땅에서 품위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젊음의 에너지를 투자하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여건을 지도자들이 끊임없이 만들어 줄 것을 당부했다교황은 또한 이주의 환상에 젖어 있는 모든 불가리아 국민들이, 자기들을 향해 다가오는 이들에게 눈과 마음을 닫지 말고 손을 잡을 것을 간곡하게 요청했다. 교황은 말한다"우리는 불가리아 동포들 간의 호의를 통해 유익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종교가 인간존중의 문화를 발전시키고 모든 형태의 폭력과 강압을 거부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같은 논리로 종교를 조작하고 착취하려는 사람들은 뜻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출처
: Vatican News, 05 May 2019, 11:00, 번역 장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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