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밤에 내리는 비가 몹시 처연하다. 계절을 바꾸는 아픔은 이때가 가장 심하지 싶다. 다른 환절기에 비해 마음도 분주하다. 무언가 마무리해야 할 것 같고 이것저것 정리도 하고 싶어진다. 오늘 처음 입고 나선 겨울 양복저고리 깃을, 엄지와 검지 끝에 넣어 비벼본다. 분명 여름옷을 그냥 입은 것이 아니다. 한겨울 영하의 날씨보다 입동 언저리에 부는 바람이 훨씬 더 칼 같다. 봄이 뭐라 해도 늦가을에 튀어나오는 엉뚱한 생각이 한층 다양하다. 살아온 긴 세월을 돌아보는 횟수도 그렇고, 살아갈 날을 헤아려 보는 빈도도 그렇다.
시샘이라는 변형된 애착이 가슴을 뜨겁게 달구고, 가슴에 사무친 증오가 후회와 부딪히면서 불쑥 냉랭한 바람을 일으킨다. 쥐꼬리만 한 가을의 자락을 움켜진 동장군이 한걸음 앞서간 여름의 뒤통수를 겨누고 있다. 상반된 모습의 세상사가 지척에서 서로를 노려보며,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궤도를 따로 도는 것이 신기하다. 불쑥 모든 것이 맞닿아 있다는 깨달음이 고개를 든다. 아둔한 머리가 쥐어짠 어리석은 상념들이 어지럽게 흩날린다.
어릴 적 성인전에서 본 마귀의 그림이 생각난다. 사지 모두가 거의 직각으로 꺾여 있고, 탈춤 추듯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한 시커먼 놈의 머리엔 뿔이 달리고, 손엔 장비의 장팔사모 같은 창을 들었다. 어머니는 늘 마귀 이야기로 어린 나를 겁박하셨다. 기도를 게을리 하거나, 복사 때문에 일찍 일어나기를 힘들어 할 때면 어김이 없었다. 잘못하는 것은 모두 마귀의 꼬임 때문이고, 그놈에게 끌려가는 곳은 지옥이라는 협박이었다. 산타클로스처럼 알고도 속는 마음엔 늘 일말의 두려움이 함께 꿈틀대고 있었다.
어머니 꾸중과 교황님의 말씀이, 가을과 겨울의 경계와는 달리 아귀가 꼭 맞아있다. 경제든 정치든, 필요한 분야면 어디든지 거침없는 충언을 던지시는 교황님의 매력에 이끌린다. 단지 오늘 기사의 단편적 언급을 보고 하는 말이 아니다. 바로 우리나라, 이 땅에 보내시는 것이라 느끼는 가르침을 수도 없이 만난다. 쌍수를 든다. 박수를 보낸다. 속이 시원하다. 그리고 감사드린다.
가난과 폭력에 시달리는 남미와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소식은 Vatican News의 단골 기사다. 중동과 서남아시아, 난민과 종족 분쟁 등, 지역과 소재가 다양하다. 그 모든 고통과 슬픔을 어루만지고 실질적 도움으로, 또 하느님의 사랑으로 보듬어야 할 교회의 임무를 깨닫고 또 깨닫는다.
마귀의 인간 파괴는 질투 때문
화요일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집전한 미사의 강론에서, 교황은 이날의 독서인 지혜서 말씀을 인용했다. 악마는,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이유로 시기심에 불타서 인류를 파괴하려고 한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마귀는,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것을 시샘하여 세상에 증오와 죽음을 심었다는 것이, 이날 강론의 중심 내용이었다..
교황은 이날 제1독서인 지혜서의 말씀 중에서도 특별히 첫 번째 구절에 관해 이야기한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당신의 모습을 닮은 청렴결백한 존재로 창조하셨다. 그러나 악마의 시기로 인해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다."
교황은 육화하기를 거부한 오만한 천사의 질투가 인류를 파괴하게 된 경위를 설명한다. "형제자매로서 평화롭게 사는 우리 마음속에 시기와 질투, 경쟁의식 등이 들어오는 방식으로 시작됩니다. 여기서부터 서로 싸우고 파멸시키려는 악한 마음이 싹트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에게 상처 주는 험담
교황은 신자들과 나눌법한 대화를 상상하면서 강론을 이어간다. "그렇지만 아버지, 저는 누구도 상처 준 적이 없습니다." “안 그랬다고? 네가 한 험담이 어떤 것인지 아느냐? 네가 나쁘게 이야기한 그 사람을 너는 상처준 것이다. 야고보 사도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해 보거라.”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혀는 무시무시한 무기입니다. 험담과 중상모략이 사람을 죽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내면의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카인과 아벨은 형제였습니다. 그러나 카인의 시기와 질투가 동생을 죽였습니다. 매일 저녁 뉴스를 통해 보는 전쟁과 파괴, 전쟁으로 인해 얻은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베를린 장벽붕괴 기념일
교황은 지난 9일에 지나간 베를린 장벽붕괴 기념일에 관해 이야기한다. 전쟁의 공포, 나치, 그리고 비 순수혈통 민족을 고문한 사람들에 관한 것이었다.
“이 모든 것 뒤에는 우리가 이런 일을 하게 하는 누군가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유혹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고해성사를 볼 때 사제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아버지, 저는 이런저런, 그리고 여러 가지 다른 이유로 인해 유혹을 받았습니다.’ 누군가가 당신의 마음을 움직여 잘못된 길로 이끌고 갑니다. 누군가가 우리의 마음에 멸망과 미움을 심습니다. 오늘 우리는 분명히 말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미움의 씨를 뿌리고 망하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뉴스를 들으면서 때때로 그것이 증오와 파괴, 전쟁과 테러의 공격에 관한 이야기라는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많은 어린이들이 마실 물이 없고 교육이나 건강관리를 받지 못해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갑니다. 여기에 필요한 돈은 파괴하는 무기를 만드는 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하겠지만, 저와 당신들의 마음 안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귀의 질투와 증오가 심어주는 것입니다. 마귀가 왜 질투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마귀는 우리 인간의 본성을 부러워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에게 오신 것을 마귀는 참지 못하여 질투하는 것입니다.”
진흙탕 정치
“그것이 마귀가 인간을 파멸시키는 이유입니다. 그것은 마귀가 품고 있는 질투의 원천이며, 우리 안에 들어있는 사악한 유혹의 뿌리입니다. 그것은 전쟁과, 굶주림과 세상 모든 재난을 일으키는 주범입니다. 이것이 인간을 파멸시키거나 미움의 씨를 뿌리는 일반적인 기준은 아닙니다. 정치에서 조차도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그렇게 합니다. 이는 정치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행태로, 거짓말과 진실을 섞어 다른 이들을 헐뜯어서 상처주고 쓰러트리는 경우를 흔히 봅니다. 이것은 국가의 이익을 위하는, 건강하고 깨끗한 정치적 경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종류의 정치인들은 자기보다 더 유능한 것이 두려워 모욕적인 말로 반대편을 약화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점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합시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왜 그렇게 미움이 넘칠까요? 화해할 수없는 가정, 이웃, 직장, 정치 등등……. 마귀는 미움의 씨를 뿌리는 존재입니다. 죽음은 악마의 시기와 질투로 인해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 악마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저 죄악이며, 천상세계의 악인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에게 화를 내는 마귀를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을 읽으면 우리에게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가 분명해집니다.”
교황은 우리의 마음이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으로 자라게 되기를 하느님께 기도하며 강론을 마무리한다. “예수님은 인간의 본성이 육체와 싸우고, 그 싸움에서 마귀와 죄악을 물리쳐 이기리라고 믿으십니다. 이런 믿음이 시기하는 자, 거짓말쟁이, 미움의 씨를 뿌리는 자들에게 휘둘리지 않을 힘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출처: Vatican News, 12 November 2019, 13:42, 번역 장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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