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키시스(Catechesis)

순수한 바람

MonteLuca12 2019. 6. 6. 10:34

 

저녁 식사자리에서 농담으로 주고받은 말이 씨가 되었다. 비행기 타는 것이 귀찮다는 푸념으로부터 기와집을  짓기 시작했다. 중고차를 사서 끌고 다니다가 돌아갈 때 팔아도 손해가 없겠다는 의견이 제일 비현실적인 것이었지만, 술안주 역할은 톡톡히 했다. 코치를 타는 방안을 제치고 암트랙을 이용하기로 결정하자 마자, 우리는 새로운 계획의 첫 단추를 끼웠다. 내일 아침 출발하는 일정을 몇시간 앞두고 과감하게 바꾼 것이다. 멀쩡하게 살아있는 항공권을 취소하고 기차표를 예약했다. 모험을 선택한 용사의 웃음을 밤하늘로 쏘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광화문 앞을 지나가기로 계획된 자전거 행렬이 안국동에 이르렀다. 예상치도 못한 난감한 사태가 벌어졌다.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파출소에 잡혀 들어간 우리는 단체로 준비한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죄를 지었으니 그런 것 같긴 한데, 그게 뭔지도 몰랐다. 세상 참, 광화문 앞으로 자전거 통행이 금지되어 있단다. 별놈의 법이 다 있다. 한껏 멋을 내어 똑같이 입은 옷이 죄수복 같아 보인다. 말이 대학생이지 세상물정 모르는 풋내기 신학생들의 심장이 바짝 쪼그라들었다. 대신학교에 올라가서 처음 가는 야유회 장소를 행주산성으로 정하던 날, 우리 열명만 따로 자전거를 타고 가겠다며 부린 고집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용기와 무모는 한 끗 차이다. 두시간이면 가는 편의를 헌신짝 버리듯 팽개친 우리는, 캐나다와 미국 국경에 세 시간째 앉아있다. 오전 8시경에 토론토를 출발한 기차가, 두시간 거리인 여기에 도착해서, 오후 1시가 되었는데 아직 움직이지 않는다. 안국동 파출소에 갇혀 있을 때 생각이 난다. 그땐 떨고 있었고, 여기선 지루해서 몸살이 난다. 앞으로 12시간을 더 가야 한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것 같다. 이튿날 새벽 1시가 넘어서 펜실베니아 역에 내렸다. 훈방 조치의 조건에 따라 자전거를 질질 끌고 광화문 앞을 지나가느라,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애타게 기다리는 친구들을 상봉한 일과 아주 많이 닮았다.

 

억척을 떨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행주산성까지 가는 자전거 길이 멋지게 뚫렸다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거길 가보고 싶은 생각이 눈곱만큼도 안 생긴다. 비행기 타는 것이 재미없다고 고생을 자처한 기백은 눈 녹듯 사라지고, 먼 길을 가는 것이 귀찮아 들어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마귀가 덤벼들어도 싸울 용기가 남아있을까? 저희를 버려두지 마시고, 구해 주십시오. 기도문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주님의 기도」가 큰 위안이다.

 

惟拯我於惡  (유증아어악;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夷亭 朴詠茂(아오스딩) 作

 

「주님의 기도」 두번째 부분의 네 개 주제 중 마지막 “악에서 구하소서”에 대한 교황님의 교리교육을 세번에 나누어 싣는다이탈리아어 원문을 번역한 영문텍스트를 필자가 우리말로 중역한 것임을 밝힌다

 

악에서 구하소서 (1)

이제 우리는주님의 기도의 일곱 번째 청원에 이르렀습니다.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마태 6,13b).

이 기도 속에는 유혹이 다가올 때 벗어나게 해 달라고 비는 것뿐 아니라, 악에서 구해주시기를 바라는 청원이 들어있습니다. 원본에 사용된 그리스어 동사는 매우 강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를 잡아서 물으려고 덤벼드는 마귀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1베드 5,8 참조) 이 구절에서 베드로 사도가 악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을 보십시오.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 이 기도는 바로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건져내 주시기를 하느님께 애원하는 것입니다

저희를 버려두지 마십시오저희를 구해 주십시오. 이 이중 청원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바치는 기도의 본질적 특징이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에 우선하여 이 기도를 아버지께 바치라고, 당신의 제자들에게 가르치십니다. 특히 악마가 자신을 위협하는 상황에 직면할 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철없는 어린아이의 유치한 기도라기 보다는, 부모에게 가지는 자식의 순수한 바람입니다. 이 기도가 어려움투성이인 삶의 고통을 잊어버릴 만큼, 하느님의 부성에 심취할 수 있도록 만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기도」의 마지막 구절이 없다면, 죄인들과 박해받는 사람들, 실망한 사람들과 죽어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이 마지막 청원은, 피해 갈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가 드리는 기도입니다.

우리 삶 안에 악마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역사서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실패한 모험의 기록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처참한 목록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분명히 아닌, 역사의 주름을 비집고 조용히 스며드는 신비스러운 악마가 있습니다. 마치 독을 가진 큰 뱀처럼 조용히 침투합니다. 어떤 날은 그들의 존재가 하느님의 자비보다도 더 분명하게 보이기도 해서, 하느님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1)(2)

(1)Vatican News, "Pope Francis General Audience of 1 May 2019," Vatican News, last modified May 1, 2019, https://www.vaticannews.va/en/pope-francis/papal-audience/2019-05/pope-francis-general-audience-1-may-2019.html.

 

(2)Virginia Forrester, "Holy Father Addresses 'Our Father' at General Audience (Full Text)," Zenit, last modified May 1, 2019, https://zenit.org/articles/holy-father-addresses-our-father-at-general-audience-full-text/.

 

 

'카테키시스(Catechesi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주경  (0) 2019.06.08
마지막으로 바친 기도  (0) 2019.06.06
깨어 있어라  (0) 2019.06.05
항상 우리와 함께  (0) 2019.06.04
하느님은 우리 편  (0) 2019.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