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키시스(Catechesis)

하느님은 우리 편

MonteLuca12 2019. 6. 4. 05:53

 

 

성산대교의 북단 램프를 돌아 올라가면서 말문을 떼신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습니다.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저녁이면 부평까지 회장님을 뵈러 가는 것이 계절을 건너왔다. 건설 중에 교각이 무너져 통행이 막혀버린 행주대교가 원망스럽다. 돌아서 가는 길이 족히 30분은 더 잡아먹는다. 회장님의 기분이 조금 나아 보인다. 워낙 낙천적인 성격 때문이라고 하고 싶지만, 부담 드리지 않겠다고 애쓰시는 마음이 빤히 읽힌다. 엉망이 된 장을 대신하기 위해 매달려 있는 부속들이 침대둘레를 덮고 있다. 아직 안심할 상황이 못된다. 돌아 가자고 일어서는 신부님이 차에서 했던 말씀을 되풀이하신다. 재생되는 음질이 좋지 않다. 힘이 빠진 것이 아니라 만감에 짓눌려 음량이 크게 떨어진 걸 나는 알고 있다.

 

입주를 앞두고 집을 보러 온 김에 성당을 찾아갔다. 소문에서 들은 비닐하우스는 머리 속 그림 그대로다. 촉이라는 것이 참 신기하다. 길 건너 컨테이너 앞에 서 있는 건설 노동자를 내 눈은 짚어냈다. 이건 성령의 은사인가? 생면부지의 나에게 다가오는 그분의 눈빛은 꿈에서 만난 사람 확인하려는 것처럼 번뜩인다. 이사한지 한 주 밖에 안되어 짐을 풀지도 못한 집에서 손님치레를 했다. 서너 명 온다더니, 상자에서 조기 두름 꺼내듯, 꾸역꾸역 모인 본당식구가 열댓은 됐다. 얼이 빠진 아내의 손에 들려 있는 건 내게 추가로 달아 줄 별이다. 신부님 부임 후 임시로 구성했던 사목회를 개편해, 정식으로 출범시키기 위한 예비소집이라는 걸, 나는 정말 몰랐다.

 

잠결에 전화벨 소리를 들었다. 예사롭지 않은 시간이다. 엊저녁 신부님은 부평에서 피정 중인 주일학교 교사들에게 고해성사를 주러 가셨다. 늘 바쁜 나에게 동행을 기대하지 않은 건 서로가 안다. 그냥 알려주신 거다. 이 시간에 갈 수가 없지만, 가서 의미가 없다는 것도 서로 알고 있다. 늦은 겨울 밤 얼어버린 자동차가 시동과 동시에 광란의 후진을 하며, 바로 뒤에 담배를 물고 있던 회장님을 덮쳤다. 성전신축의 중차대한 소명을 받고 출범한지 두 달 만에 새로운 사목회는 선장을 잃었다.

 

폐허가 된 내 집을 보고 고쳐 세워라." 프란치스코 성인이 십자가 상의 예수님에게서 받은 요청이 우리 공동체에 내려졌다. 우리는 거기에 마음의 성전을 지었다. 그 성전은 「십자가 현양」으로 봉헌되었다. 성가광영”(聖架光榮), 그것은 십자가의 승리를 뜻한다. 그 십자가는 죄인들에게 비치는 구원의 희망이다. 그 안에 시메온 회장님의 미소가 담겨있다.

 

勿使我遇試  (물사아우시; 우리를 시험에들지 않게 하소서),  夷亭 朴詠茂(아오스딩) 作

「주님의 기도」 두번째 부분의 네 개 주제 중 세번째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에 대한 교황님의 교리교육을 세 번에 나누어 싣는다이탈리아어 원문을 번역한 영문텍스트를 필자가 우리말로 중역한 것임을 밝힌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1)

이제 「주님의 기도」의 끝에서 두 번째 청원인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마태 6,13)까지 왔습니다. 이 말은 유혹을 당하지 않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유혹에 떨어지지 않게 하소서라는 의미의 번역도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차분하게 시작합니다. 이 기도는 하느님의 위대한 사업이 우리 가운데서 이루어지기를 바라게 만듭니다. 그리고 나서 자기의 삶을 돌아보고, 매일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청하게 합니다. 그 다음엔 이기심으로 오염되기 일쑤인 우리 인간들 간의 관계로 넘어갑니다. 그것은 용서를 구하고, 용서해 주는데 관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끝에서 두 번째 청원에 나오는 하느님 아버지와의 우리 대화가, 우리의 자유의지와 마귀의 덫 사이에 벌어지는 대립의 드라마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양상이 나타납니다.

알려진 바와 같이, 복음에 그리스어 원본의 표현을 정확히 번역하기가 어렵습니다. 현대의 언어로 번역된 성경이 모두 약간씩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한가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습니다. 본문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하든 간에, 하느님은 절대로 인간을 유혹에 빠트리는 분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자녀들의 인생 여정에 덫을 놓거나 함정을 파 두신 것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런 종류의 해석은 우선 본문 전체의 문맥으로 보아 모순되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하느님의 모습과도 거리가 멉니다. 「주님의 기도」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어떻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를 함정에 빠뜨릴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인간과 경쟁하면서 질투하거나 인간을 시험하는 것을 즐기는 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많은 이교도들의 신에서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자신의 서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유혹을 받을 때에나는 하느님께 유혹을 받고 있다하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의 유혹을 받으실 분도 아니고, 또 아무도 유혹하지 않으십니다.”(야고 1,13) 오히려 그것과는 정반대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마귀의 우두머리가 아니며,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대로 생선을 달라는 자녀에게 뱀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루카 11,11 참조) 악마가 우리의 삶에 나타날 때 하느님은 우리를 위해 싸워서 자유롭게 해 주시는 분입니다. 하느님은 항상 우리를 위해 싸우시지우리의 반대편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이십니다. 이같은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것입니다.(1)(2)

(1)Vatican News, "Pope Francis General Audience of 1 May 2019," Vatican News, last modified May 1, 2019, https://www.vaticannews.va/en/pope-francis/papal-audience/2019-05/pope-francis-general-audience-1-may-2019.html.

 

(2)Virginia Forrester, "Holy Father Addresses 'Our Father' at General Audience (Full Text)," Zenit, last modified May 1, 2019, https://zenit.org/articles/holy-father-addresses-our-father-at-general-audience-full-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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