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키시스(Catechesis)

깨어 있어라

MonteLuca12 2019. 6. 5. 10:39

 

밤바다가 전혀 조용하지 않다. 어디서 쏘는 것인지 굉장히 밝은 빛줄기가 세 개는 되나보다. 발전시설이 넉넉하지 않은 시절임에도 엄청난 양의 전기를 태워 소방차 물 쏘듯 하늘과 바다 속으로 쏟아 붓는다. 차분히 정해진 경로를 따라 가거나, 시간을 정해 놓고 꼭 봐야 할 곳을 찾아다니는 것도 아니다. 정신 나간 놈 널뛰듯, 조자룡 헌 창 쓰듯 제멋대로 天宮과 海表 사이에서 휘둘러 댄다. 마루와 앞마당을 갈라주는 유리문을 통과한 빛이, 방과 마루의 경계를 정해 놓은 창호지를 뚫고 들어와, 온 식구가 필통 속 연필처럼 나란히 누워있는 우리집 방을 허락도 없이 훑고 나가버린다. 벽에 걸린 십자가는 천장 가운데로 순간 이동했다가 제자리로 돌아가고, 그 밑에 걸린 예수성심 상본이 벽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렸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고상을 찾아 올라간다. 커다란 눈깔사탕 무늬처럼 뱅글뱅글 감긴 모기향 끝에서 얌전하게 피어오르던 연기가, 개업점포 앞의 풍선인형 인사하듯 직각으로 허리를 꺾는다. 어린 내가 주로 사용하는 청자색 요강은 밝은 눈을 한번 깜빡이고, 등대 쪽으로 난 작은 창이 방 전체를 휘감아 한바퀴 돌고 자리에 가서 붙는다.

 

거기에 비하면 등대의 불빛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나이로 말하면 손자 뻘 되는, 이름도 이상한 그 놈이 추는 광란의 춤을 멈추게 할 보름달을 기다린다. 흐릿한 이 노인의 불빛은 영금정 돌 틈에 모여 사는 작은 게들의 머리 위로 힘없이 떨어진다. 엉덩이까지 늘어뜨린 긴 머리 소녀 같은 성게의 가시가 유난히 까맣다. 바위에 지천으로 붙어사는 섭들과 더불어 얘네들은 동네친구다. 안개가 짙게 낀 날, 등대 할머니가 바다에 떠있는 자식새끼들을 목놓아 부를 때면, 이 녀석들은 장난을 멈추고 숨을 죽인다. 분위기가 가라 앉은 걸 눈치챘다.

 

세월이 좋아진 것이리라. 그들이 잠수함과 무장공비 찾기를 그만두고 바닷가에 쳐졌던 철조망을 걷어냈다. 할머니와 동네친구들은, 이제야 자기네 세상이 왔다고 만세를 부르다 말고, 일대를 가득 메운 장사꾼들에게서 역한 술냄새를 맡는다. GPS와 짝을 맞춘, 똑딱선들은 안개도 어둠도 무섭지 않다. 산봉우리에서 맥없이 보내는 할머니의 눈빛도, 간신히 내뱉는 쉰 목소리도 관심 밖이다. 젊은 놈 만나 함께 사는 것이 신나서, 바다 위 어느 곳이든 뛰어다닌다.

 

주정뱅이들의 고함과 생선 굽는 연기에 질려, 죽마고우들이 정든 동네를 떠난다. 60년 넘게 걔네들을 지켜본 할머니는 한없이 슬프다. 좋은 곳에 가서 잘 살거라.” 눈물을 훔치고 희미한 눈으로 턱 밑을 지나가는 통통배를 바라보며 한마디 뱉는다. 니들 잘나서, 혼자 잘 큰 줄 알지? 고얀 놈들 같으니라고!"

 

水竹居 (수죽거; 한가로운 삶), 夷亭 朴詠茂(아오스딩) 作

 

「주님의 기도」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에 대한 교황님의 교리교육 세번째 부분이다이탈리아어 원문을 번역한 영문텍스트를 필자가 우리말로 중역한 것임을 밝힌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3)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최악의 시험을 당할 때에도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기도하시기 위해 겟세마니에 가셨을 때, 당신의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극심한 고독과 홀로된 외로움을 경험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죄를 당신 홀로 책임지고 어깨에 짊어지셨습니다. 시험이 너무 혹독하여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고 맙니다. 결코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사랑을 갈구하지 않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함께 있기를 청하십니다. 그날 밤 예수님은 죽도록 깊은 슬픔을 느꼈던 것입니다. 여기에 남아서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마태 26,38) 우리가 알고 있듯이, 제자들은 두려움에 지쳐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고뇌가 닥쳐올 때 당신과 사람들을 버리지 말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시지만, 우리는 잠들어 버립니다. 반면 우리에게 시험이 다가올 때, 하느님께서는 한눈팔지 않고 지켜보십니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가장 끔찍한 순간에,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그리고 가장 괴로운 순간에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감시하시고, 우리와 함께 싸우시며, 항상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할 때우리 아버지라고 외웁니다. 아버지는 자기 자녀를 버리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극심한 슬픔 속에서 몸부림치시던 그 밤은, 육화하신 예수님께서 보내신 지상생활의 마지막 마무리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역사에 점철된 고난의 깊은 구렁 속으로 우리를 찾으러 내려오십니다.

시련 중에도 우리가 위안을 받는 것은, 그 고통의 골짜기가 예수님께서 건너가신 이후로는 더 이상 황폐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독생성자가 계심으로 축복받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시험과 유혹으로부터 저희를 지켜 주십니다하지만 실제로 유혹을 받는 상황이 되면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홀로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우리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의 십자가를 대신 지셨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함께 지고가자고 우리를 부르신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에 온전히 자신을 내맡기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갑시다.(1)(2)

(1)Vatican News, "Pope Francis General Audience of 1 May 2019," Vatican News, last modified May 1, 2019, https://www.vaticannews.va/en/pope-francis/papal-audience/2019-05/pope-francis-general-audience-1-may-2019.html.

 

(2)Virginia Forrester, "Holy Father Addresses 'Our Father' at General Audience (Full Text)," Zenit, last modified May 1, 2019, https://zenit.org/articles/holy-father-addresses-our-father-at-general-audience-full-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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