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돌봄'과 '관상'

MonteLuca12 2020. 9. 20. 17:35

언제 또다시 만날 수 있을까? 스치는 시간마다 지나는 자리마다 ‘추억 쌓기’에 분주하다. 꽤나 많이 돌아 다녔다는 자랑이 무색하다. 이제야 처음으로 디뎌보는 땅위에서 설레기 시작하던 가슴이, 심장의 거친 박동을 밖으로 토해낸다. 순례자의 발길이 끊긴지 제법 되어 보이는 낯 설은 치명자의 순교 터는 흩뿌린 초가을 비에 촉촉이 젖어있다.

 

먼 바다 길을 달려와 책가방 맨 소년의 등굣길을 가로막고 휘몰아치다가, 거기서 삶의 여정을 마무리하던 바람이 싣고 온 것이 있었다. 태백 준령 너머에 사시던 조상들의 이야기와 그분들의 비릿한 피 내음을 배달했다.

 

순교로 신앙을 지키신 신앙의 선조들이 이 땅 곳곳에 묻혀 계신다. 그분들의 선혈이 우리의 산하를 흐르고 있다. 천지를 덮은 하느님의 영이 바람결에 날려 내가 사는 곳으로 다가오신다. 순교자성월의 하순으로 돌아가는 모퉁이에 ‘코로나 주의’라고 쓰여진 푯말을 만난다. 수선탁턱(首先鐸德) 안드레아 신부님과 순교자들의 축일이, 그 경고문에 막힌 골목 안쪽에서 조용히 지나간다.

 

인간의 손이 파헤친 땅 곳곳에 믿음의 얼이 담겨있다. 중간을 지나 돌아보는 9월은 순교자와 함께 우리 ‘공동의 집’을 생각하는 달이다. 태초로부터 이어온 하느님의 선물은 대대손손 물려주어야할 소중한 재산이다.

 

[주] 교황님은 성명을 통해,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9월 1일)부터 시작하여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10월 4일)까지 한 달여 동안 이어지는 ‘창조의 계절’ 동안 피조물에 대해 깊게 성찰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구와 그 안에 담긴 자원을 소중하게 여기고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저질러지는 죄를 반성하자는 당부입니다. 또한 가난한 나라가 짊어진 채무탕감 같은 ‘정의의 회복’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도록 노력할 것을 호소하십니다. (Vatican News, 01 September 2020)

 

관상과 돌봄으로 생명과 지구를 수호
 
매주 수요일 일반알현을 통한 교리교육에서 교황은, 오늘날의 상황을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에 비추어 설명한다. 온 세상이 전염병의 대유행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이때에 우리가 서로 돌보는 것이 중요하고 ‘공동의 집’인 지구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인간과 피조물 간의 관계를 바로 세우고 재정립하는 방법은 ‘돌봄’과 ‘관상’, 두 가지라고 교황은 말한다. 이날 주간 일반알현은 교황청 사도궁 내 산 다마소 안뜰에서 열렸다.
 
서로 돌보기
 
교황은 일반알현에 참석한 신자들에게 오늘날과 같이 전염병이 만연하는 상황에서는 상대의 처지를 잘 살피고 서로가 돌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장 가난한 이들과 병자와 노인을 돌보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우리가 도와야합니다. 마땅히 받아야할 인정과 보수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만 그들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이러한 관심과 돌봄은 ‘우리 공동의 집’에 대해서도 기울여져야 합니다. 모든 형태의 생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돌보도록 맡기신 생태계의 건강이 우리의 건강을 지켜줍니다."
 
관상이 가장 좋은 해결책
 
교황은 ‘우리 공동의 집’을 잘못 사용하는 것에 대한 최선의 해결방안은 '관상'이라고 말한다.

[역자 주]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묵상(meditation)과 관상(contemplation)을 구분하여 왔다. 요사이 관상은 향심기도(Centering Prayer)나 예수 호칭기도처럼 거룩한 단어나 짧은 기도문을 반복하는 형태의 기도를 포함하여 이야기하지만 십자가의 성요한은 “묵상은 기도와 영성적 습관의 의도적인 온갖 행위와 훈련”인 반면 “관상은 고요한 형태의 묵상이며 훈련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출처: 
김홍일(성공회 사제, 디아코니아훈련센터), 묵상기도와 관상기도 소개)

 
“깊은 관상이 없다면 우리는 균형을 잃고 전형적인 인간중심주의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역할을 지나치게 중요시함으로써 다른 모든 피조물들의 절대적 통치자로 군림하는 것입니다.”
 
교황은 계속해서 말한다. “창조에 관한 성경 본문의 왜곡된 해석이 이러한 오해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런 잘못으로 인해 인간은 지구를 질식시킬 정도로 착취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중심에 있다고 믿음으로써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해버린 것입니다. 조화로운 하느님의 창조계획을 엉망으로 만들고, 결국 우리는 생명의 관리인이라는 소명을 잊어버리고 약탈자로 변해버렸습니다.”

우리 ‘공동의 집’을 돌보는 사명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구의 자원을 잘 이용해야 하지만 착취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의 사명은 ‘우리 공동의 집’을 돌보는 것입니다.”
 
“가장 가난한 우리 형제들과 ‘어머니인 지구’는 우리 때문에 생긴 피해와 불의로 인해 신음하며 다른 삶의 방법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관상적 차원에서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교황은 말한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것의 본질적인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교황은 원고에 없는 이야기를 즉흥적으로 이어간다. “자연과 피조물을 관상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자기들의 풍요로움에 도취되어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관상하는 방법을 모릅니다. 자연을 착취하는 사람은 결국 사람을 착취하고 그들을 노예화 합니다. 이것이 ‘보편적 법칙’입니다.”
 
“관상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은 건강을 악화시키고 손상시키는 것들을 쉽게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형태의 생산과 소비습관을 장려하고, 이를 널리 보급함으로써 ‘공동의 집’에 대한 존중이 보장되는 새로운 경제성장 모델을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피조물의 관리인
 
“관상과 돌봄의 방식에 따라서 ‘공동의 집’을 관리하는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생명과 희망을 지키는 수호자가 됩시다. 이것은 미래 세대를 위하여 ‘공동의 집’을 보호하고 보존하기 위하여 필요한 노력입니다.”
 
교황은 특별히 토착원주민들에 대하여 언급한다. “우리 모두는 그들에게 감사해야 할 빚을 지고 있습니다.”
 
또한 토착원주민들의 자연적, 문화적인 가치와 그들의 영토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운동단체들, 협회들, 시민단체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우리 사회가 현실적으로 그분들의 헌신적 활동을 언제나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심한 방해를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러한 현실을 평화적으로 혁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히 ‘돌봄의 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황은 교리교육을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 같은 임무는 일부 특정인들에게 맡겨진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부여된 임무입니다. 우리 각자는 모두가 피조물을 돌보는 일에 참여해야 하며, 선물로 주신 피조물을 통해 하느님을 찬미해야 합니다. 관상과 돌봄으로 우리는 ‘공동의 집‘을 지키는 수호자가 될 수 있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 주시기를 당부합니다.”

출처: Vatican News, 16 September 2020, 10:41, 번역 장주영

www.vaticannews.va/en/pope/news/2020-09/pope-francis-become-guardians-of-life-and-earth-by-contemplatio.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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