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을 열어 배달된 사진을 펼쳐본다. 발길을 기다리는 휑한 그곳의 모습이 무척이나 낯익다. 얼마나 됐는지 뻔한 날짜를 다시 헤아려본다. 이럴 수도 있나 싶어 놀라 헝클어졌던 그때의 마음이 제법 많이 가라앉았다. 이렇게 빨리 습관이 드는 경우가 흔치않았던 것 같다. 모두가 예외 없이 함께 겪는 일이라 그럴 것이라 믿는다.
소식을 전하고, 마음을 나누는 이기(利器)를 달고 산다. 그 평범한 생활도구가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깨닫는다. 우리가 만나는 곳을 ‘가상’의 ‘공간’이라 말하지만, 둘 다가 아니라는 생각을 바꾸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없을 적부터, 모든 것이 사라질 때까지 우리를 묶어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믿음과 희망, 우정과 사랑을 이어주는 고리를 찾아낸 것이다.
거기엔 소식이 있고 위로가 실린다. 미소로 반기는 얼굴이 떠오르고 통경하는 기도소리가 쟁쟁하다. 마음 상할 일은 아예 없고 서운할 이유가 있을 수 없다. 형식과 꾸밈이 통하지 않고 자랑과 투정이 끼어들지 못한다. 저녁 9시, ‘격려의 외침’을 기다린다. “울뜨레야!”
‘거기’가 있기에 만나는 것이 많다. 용어도 생소한 ‘가상 중창’(Virtual Choir)이 그중 하나다. 그렇게 바치는 짧은 기도가 넓은 세상의 반향을 일으킨다. 감히 의미 깊은 시구(詩句)를 우리말로 해석해보았다. 중요한 것은 기도라 믿는 용기가, 부끄러움을 밀어내는 위안을 불러주었다.
이 노래는 흑사병이 유럽 전역을 휩쓸고 있을 때, 포르투갈 코임브라(Coimbra)에 있는 성 글라라 수녀원의 수녀들이 작곡한 노래로 알려져 있다.
1317년 포르투갈은 전염병으로 황폐화된 상태였다. 코임브라에 있는 성 글라라 수녀원의 수녀들은 주변에 널리 퍼진 전염병으로 인해 매우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 수녀들의 불안과 공포가 극도로 심해지자 원장수녀는 수도원 안에서의 공동생활을 해제하고 전염병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수녀들이 갈 수 있도록 허락했다. 수녀들이 수녀원을 떠나려던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 문 앞에는 걸인이 서있었다. 그의 표정은 수녀원에 모셔져있는 성 바르톨로메오 상의 모습과 아주 흡사했다. 걸인은 기도가 적힌 종이를 수녀들에게 주면서 매일같이 이 기도를 바치면 몹쓸 전염병으로부터 보호될 것이라고 말했다. 거기에 적힌 기도문이 「Stella Coeli Extirpavit」㈜이다. 수녀들은 그의 말대로 이 기도를 바쳤고 전염병은 수녀원을 비켜갔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그 지역에서 전염병이 종식되었다.
이 기도는 유럽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고 많은 기도서에 수록되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 성무일도서’의 부록에도 실려 있다.
[역자 주] “하늘의 별이신 성모님께서 없애주신다.”라는 뜻의 라틴어
Stella Coeli Extirpavit
지극히 거룩하신 바다의 별이시여, 저희를 몹쓸 전염병에서 보호해주소서.
구세주의 어머니시여, 그리스도의 존경받는 모친이시여,
예수님께서 당신의 간청을 거절하지 않을 것임을 믿사오니 저희의 애원을 전구해 주소서.
사랑하올 예수님, 당신 어머니의 전구를 들어 허락하시어 저희를 구원하소서.
◯ 천주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기도합시다
한없이 자비로우신 하느님.
언제나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주시는 우리의 아버지.
당신께서는 백성들의 고통을 가엾게 여기시어
‘파괴의 천사’에게 더 이상 당신 자녀들을 괴롭히지 말라고 분부하셨나이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별이신 성모님을 교회의 어머니로 정해주시고,
세고에 신음하는 저희가 사랑 가득한 성모님의 손길을 놓치지 않도록 지켜주셨나이다.
저희를 위협하는 마귀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지극한 자애로 자녀들을 돌보시는 어머니의 품을 떠나지 않도록 보살펴주소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대천사 라파엘의 전구를 들으시어
모든 병고와 급작스런 죽음에서 저희를 해방시켜주소서.
당신의 자비로 파멸의 구렁에서 저희를 구원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출처: sspx.org/en/news-events/news/stella-coeli-extirpavit-prayer-our-lady-times-pestilence-56625, 번역 장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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