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깊은 곳에 회귀하고 싶은 본능이 가라앉아 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못다 이룬 꿈에 대한 아쉬움이며, 고이 간직하고 싶은 추억을 놓치고 싶지 않은 애석함이다.
돌아가려는 마음은 한편 미래형이다. 기다림에 부푼 가슴이고, 벗어나 다가가고 싶은 갈망이다. 그래, 결국 돌아가는 것이다. 먼 길 잘못된 길을 따라 갈지도 모르는 것이 두려울 따름이다.
우리에게 ‘박해’는 익숙한 단어다. 낯익어서 오히려 느낌이 무디어진 말인지도 모른다. 그 말은 자연스레 ‘신앙의 선조’라는 관념에 엮여있다. 우리에겐 박해의 피가 흐른다. 생명도 신앙도 피로 맺은 관계다. 모두가 ‘혈육’인 것이다. 박해에 관한 교황님의 가르침을 듣는다.
가하는 피와 당하는 피가 같은 혈관에 섞여있다. 거기엔 사랑과 함께 피 묻은 원한이 사무쳐있다. 아무리 풀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 앞에서 허우적댄다. 한여름 낮잠에서 깨어, 이유 모를 투정에 밉상이 된 어린아이처럼 몸부림을 친다. 여기서 단칼에 해결될 일이 아님을 알면서 괜한 몽니를 부린다. 손톱만큼의 오차도 없이 돌아가는 세상이 참으로 희한하다.
돌아가고 싶다. 그때가 그립다.
돌아가야 한다. 그곳이 기대된다.
박해받는 그리스도인
‘국제 종교 폭력 희생자의 날’㈜을 지내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했던 그리스도인들의 박해에 관한 말을 돌아본다.
[역자 주] 유엔총회는 작년 5월 28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본회의를 열어 8월22일을 '종교 또는 믿음에 근거한 폭력 행위 희생자를 위한 국제 기념일'로 지정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3월 교황에 즉위한 이래 그리스도인의 박해에 관한 주제를 가지고 여러차례 이야기한 바 있다.
교황은 선출된 지 한 달 조금 넘었을 때부터 이런 말을 여러 번 반복해서 했다. “초대교회인 1세기 때보다 지금 더 많은 순교자가 있습니다.”
지금 더 많은 순교자
교황은 첫 순교자인 성 스테파노에 대해 강론하면서 순교에 관해 이야기한다. “스테파노의 죽음은 ‘비난’이 가져온 비극이었습니다. 성인은 ‘비난의 희생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스테파노 성인에서 시작하여 우리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큰 용기를 가지고 같은 방식으로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순교자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초기 1세기보다 더 많은 순교자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비난에 시달리고 핍박을 받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미워하고 믿음을 증오하는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기도 합니다. 교리를 가르쳤다는 이유로, 혹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나눠지고 있다는 이유로 살해되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그들은 비방을 당하고 박해를 당합니다. 순교자의 시대인 오늘날, 고통 받고 있는 그들은 우리의 형제자매들입니다.“
오늘날의 박해
이 강론이 있은 후,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2014년 3월 4일 강론에서도 교황은 이 내용을 되풀이한다.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따르면 무엇을 얻을 것인지 질문했을 때 예수님께서 하신 답변을 상기시키다.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은 박해를 포함하여 많은 것을 받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한다.
“그래서 우리는 말과 모욕으로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이 말하던 바로 그 비난과 투옥 같은 일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잊어버립니다. 60년 전, 공산주의자들에 의하여 강제노동 수용소, 나치 수용소에 갇혔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너무나 많은 이들이 감옥에 갇혔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훌륭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저는 오늘날 교회에는 초대교회보다 더 많은 순교자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단죄받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를 질 수가 없습니다. 잠시 생각해 봅시다. 다 잘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접어야합니다. 많은 형제자매들이 박해 때문에 함께 모여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박해로 인하여 복음서나 성경도 가질 수 없는 형편에 놓여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박해받는 이들을 잊지말자
2016년 크리스마스 다음 날 맞은 성 스테파노의 축일에도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반복했다.
“오늘날에도 교회는 세상 곳곳에서 빛과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가혹한 박해를 감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순교라는 가장 큰 희생을 치르기도 합니다. 수많은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학대와 폭력을 견뎌야 하고, 예수님 때문에 미움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오늘날의 순교자들이 1세기의 순교자들 보다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초대교회인 1세기의 역사를 보면 이곳 로마에서 일어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잔혹한 과거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말씀드리거니와 오늘날에도 그와 같은 잔인함에 시달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핍박을 받으며 고통스런 삶을 사는 그들을 기억하고 사랑과 눈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위로의 마음을 전해야 합니다. 어제도 이라크의 신자들은 박해가 극심한 와중에, 파괴된 대성당에서 예수성탄 대축일을 지냈습니다.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잃지 않는 그들은 복음에 충실한 신앙인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신앙의 일상에서 경험하는 순교
2019년 9월 25일 일반알현에서 교황이 한 말도 다시 들어본다. 교황은 그 자리에서도 다시 한 번 성 스테파노의 순교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늘날에는 교회공동체의 생활이 시작될 때보다 순교자가 더 많습니다. 오늘날의 순교자들은 특정 지역에 국한하지 않고 세상 곳곳에 있습니다. 우리의 교회는 순교자로 가득하고 그들의 피로 흠뻑 젖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피는 씨앗’ (테르툴리아누스, 호교론, 50, 13)이며 하느님의 백성의 성장과 풍요를 보장합니다. 순교자들은 단지 ‘성인’이 아닙니다.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7, 14)라는 묵시록의 말씀처럼 깨끗해진 살과 피를 가진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들은 진정한 승리자들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 주님께 청합시다. 어제와 오늘의 순교자들을 바라보면서 그리스도를 따르며 온전한 삶을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그 삶은 복음에 충실한 우리의 일상생활이며 순교를 받아들일 수 있는 은총입니다.”
오늘의 순교자
교황은 지난 4월 28일에 봉독된 독서를 통해 스테파노 성인의 순교를 묵상하면서 현대적 박해의 사례와 지난 세기 ‘쇼아’㈜에서 사망한 사람들을 이야기를 모두 인용했다. 스테파노 성인을 살해하는데 사용 된 것과 같은 동일한 역학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죽어 마땅하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역자 주] Shoah (השואה): ‘홀로코스트’를 가리키는 히브리어로 제2차 세계 대전 중 아돌프 히틀러가 이끈 나치당이 독일 제국과 독일군 점령지 전반에 걸쳐 계획적으로 유태인과 슬라브족, 집시, 동성애자, 장애인, 정치범 등 약 1천1백만 명의 민간인과 전쟁포로를 학살한 사건을 의미한다.
“오늘날의 순교자들에게도 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판사들이 이미 판결을 받은 사람들에게 정의를 찾아주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아는 아시아 비비 (Asia Bibi)의 이야기를 생각해봅시다. 그녀는 자기를 비난하고 사형에 처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뜻에 따라 재판을 받았기 때문에 감옥에 갇혀 10년을 보냈습니다. 여론을 이끌어내는 가짜 뉴스의 사태에 묻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스테파노 성인의 순교를 생각나게 하는 아주 흡사한 모습입니다. 대중을 선동하는 주장이 정의로운 것으로 바뀌면서 강경한 여론을 이끌어냅니다. '옳소! 죽여야 합니다! 사형에 처해야 합니다!” 자신들에게 껄끄럽고 자기들의 주장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동원되는 전형적인 방법입니다.“
3월 27일 강론에서 교황은 어떤 주교에게서 들은 또 다른 구체적인 예를 인용한다.
“무신론적 독재를 겪은 나라의 주교님이 제에게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아주 구체적으로 상황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중 하나는 부활달걀에 관한 것입니다.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전날 무엇을 먹었는지 확인해야했습니다. 아이들 중 몇몇은 달걀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아이들이 그리스도교 신자인지 확인하는 조치가 이어졌습니다. 그 나라에서는 부활주일에 달걀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는지 감시하고 찾아내서 죽이려고 합니다. 박해는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박해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교황은 우리가 마음에 간직해야 하는 단어는 박해가 아니라 축복받은 사람들의 행복이라는 점을 상기시켜준다. 교황은 지난 4월 29일 일반알현에서 ‘참 행복’에 대해 이야기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 5, 10)
박해의 원인은 ‘참 행복’에 뿌리를 둔 그리스도인들의 삶이라고 교황은 설명한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온유한 사람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자비로운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리스도로 인해 박해를 받는 사람들은 행복할 것입니다. 결국 그 박해는 하늘에서 기쁨과 큰 보상을 받는 공로가 될 것입니다. ‘참 행복’의 길은 부활로 이끄는 길입니다. 세상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통하여 하느님께로 인도해주는 구원의 길입니다. 이기심에 따라 움직이는 육신의 삶이 성령께서 인도하는 영원한 생명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 박해로 고통받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는 현실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들의 시련이 곧 끝날 것을 희망하면서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박해로 고통 받는 이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오늘날의 순교자들이 1세기 초대교회의 순교자 보다 더 많습니다. 그 형제자매들의 고통을 마음으로 함께 나눕시다. 우리는 그들과 한 몸의 지체들입니다. 온 세상 모든 신자들은 교회이신 그리스도의 몸에서 흘리시는 피를 통하여 하나의 몸이 되었습니다.”
교황은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면서 이날의 교리교육을 마쳤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받는 박해이므로 예수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라고 강조한다.
“박해 속에는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시는 예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박해는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예수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기회이며, 우리가 굳건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성령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다른 이들로부터 박해를 받을 때 낙담하지 말고 복음에 충실한 삶을 꾸준히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 여정에서 우리를 지켜주고 이끌어주시는 성령께 모든 것을 맡기십시오.
출처: Vatican News, 22 August 2020, 14:10, 번역 장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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