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수정된 양식으로 집전된 세례의 유효성

MonteLuca12 2020. 8. 9. 20:09

면죄부 팔아서 지은 성당이란 비아냥이 들린다. 성지순례의 희소성이 이렇게 헤지지 않았을 적에 베드로 대성당을 찾은 여행자들이 수군대던 소리다. 놀라운 인간의 재능과 거기에 담긴 정성을 고따위로 폄하하는 못난 의도를 도저히 봐줄 수가 없다. 그것이 그토록 목청을 높여 부르짖던 ‘개혁’의 까닭이란 말인가?

 

딴에는 늘 구태를 멸시했다. 잘난 체하며 의연(依然)을 비방했다. 알량한 소신으로 설정해둔 기준에 날을 세워 무차별 칼질을 서슴지 않았다. 격식은 타파되어야 하고 허례는 무시되어야 한다고 소리쳤다.

 

못마땅한 것투성이 세상을 한탄하던 혀가 탄력을 잃었다. 꼰대 짓도 쪼그라든 의욕에 끼여 비집고 나올 틈을 잃었다. 대충 넘어가야 얹혀 사는 ‘잉여자원’의 눈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좋은 게 좋고, 맘에 안 들어도 꿀꺽 삼키는 지혜는 이맘때쯤 써먹으려 아껴두었던 것이다.

 

관대함과 허술함의 차이를 분간하지 못한다. 관용과 편협을 혼동하며 산다. 하느님 백성의 규율은 사랑의 계명처럼 변할 수 없는 준엄한 가치를 가졌다는 생각이 느슨하게 풀렸다. 무심코 지나친 전례의 양식이 자구(字句) 하나에도 간과할 수 없는 엄격한 규범이 있다는 교회의 가르침을 받아든다. 직무에 숙달된 기능공처럼, 신앙은 그렇게 숙련을 자랑하는 기술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번뜩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면죄부를 쓰고 있었던 건 아닐까?

 

세례를 받는 새로 태어난 아기

임의로 수정된 양식으로 집전된 세례의 유효성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다음과 같이 수정된 양식으로 집전된 세례는 유효하지 않다는 교의를 확인했다.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세례를 줍니다.” (We baptize you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Spirit.)
 
위와 같은 양식의 유효성에 관한 교황청의 답변은, 임의대로 수정된 양식으로 집전된 세례성사는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는 교회가 규정한 전례 규범에 따라 세례예식을 다시 거행하여야 한다고 답했다. 아울러 세례예식의 절대성은 여하한 조건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이것은 세례의 유효성에 관해 제기된 두 가지 질의에 대하여 신앙교리성이 발표한 공식적인 답변으로, 지난 6월말 프란치스코 교황이 승인하여 지난 목요일(6일) 발표되었다. 질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대부와 대모,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가족과 친구, 공동체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세례를 줍니다.”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mother, of the godfather and of the godmother, of the grandparents, of the family members, of the friends, in the name of the community we baptize you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Spirit.”)
 
[역자 주] 기사는 질의가 ‘두 가지’라고 적고 있다. 2008년도에 제기되었던 질의를 보면 (1) 세례의 유효성 (2) 무효일 경우의 조치 등 두 개의 내용으로 질의가 구성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답변’을 보면 기사의 표현이 명확해진다.
 
세례를 베푸시는 분은 그리스도
 
이 답변을 위하여 발표된 「교리 공지」(Doctrinal Note)를 통해 신앙교리성은 이렇게 설명한다. “이번 경우는, 세례의 공동체적 의미를 강조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수정된 성사의 양식이 도입된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가족과 예식에 참례한 이들을 포함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또한 사제에게 영적인 권한이 집중되어 부모와 공동체는 배제되는 듯한 「로마 예식서」(Rituale Romanum) 양식의 느낌을 피하기 위해 양식을 수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답변을 설명하는 문헌 「교리 공지」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Sacrosanctum Concilium)을 인용해 이렇게 말한다. “누가 세례를 줄 때에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다. 예식거행을 주관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교리 공지」는 부모, 대부모 그리고 공동체가 모두 다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부름을 받는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 점에 관하여 공의회 문헌에 명시된 것은 이렇다 “전례 거행에서는 누구나 교역자든 신자든 각자 자기 임무를 수행하며 예식의 성격과 전례 규범에 따라 자기에게 딸린 모든 부분을 또 그것만을 하여야 한다.”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제28항)
 
교회 일치에 입히는 상처
 
“이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목적 동기와 관련된 오래된 유혹의 사례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것은 성전(聖傳)에 의하여 계승되어온 양식을, 더 적합한 것으로 여겨지는 다른 축문으로 대체하려는 시도에 관한 것입니다. 사목적 동기부여에 대한 의지는, 그것이 무의식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주관적 편향성과 조작하려는 의도가 숨어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트렌트 공의회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칠성사에 관한 어떠한 조치도 교회에게 주어진 권한이 아니라고 천명했습니다. 사제를 포함한 그 누구도, 전례에 관한 것을 보태고 빼거나 변경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힙니다.”
 
[역자 주] 트리엔트 공의회 교부들은 성서만을 하느님 계시의 유일한 원천이라는 루터의 주장에 맞서, 성서와 함께 성전(거룩한 전통)도 같은 계시의 원천으로 똑같이 존중돼야 함을 분명히 했다. 또 오로지 믿음만으로 구원된다는 루터의 주장에 대해 믿음이 구원의 시작이요 기초이지만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믿음과 함께 선행이 따라야 한다고 가르쳤다. 아울러 하느님 은총만으로 강조해 성사를 부인한 루터에 맞서 교회의 7성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기원을 두고 있음을 명확히 했다. 공의회는 특히 성체성사와 관련, 미사 성 변화 때 빵과 포도주가 모양은 그대로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실제로 변화된다는 '실체변화' 교리를 채택하고, 고해성사에서의 비밀고백과 보속 등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확정했다. 이 밖에 연옥, 대사, 성인과 유해공경, 성화상 공경 등 그간 논란의 여지로 남아 있던 여러 문제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도 체계화했다. (가톨릭평화신문 제722호, 2003.05.04.)
 
공의회는 이렇게 단정한다. “성찬례의 양식을 임의대로 변경하는 것은 단순히 규범(positive norm)을 위반하는 전례적 오용이 아닙니다. 그것은 교회의 일치와 동일성을 해치는 것이며, 가장 심각한 경우에는 성사의 효력을 무효화시킵니다. 사목활동은 본래 위임을 받은 대로 충실하게 전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역자 주] Positive norm: 원칙적으로 모든 것을 금지하고 예외적으로 규제하거나 금지되지 않는 사항을 나열하는 규범
 
세례와 관련된 종전의 질의응답 (2008년 8월, 출처: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황청 문헌)
 
[의문]
1. “나는 창조주와 구세주와 성화주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세례를 줍니다.” (I baptize you in the name of the Creator, and of the Redeemer, and of the Sanctifier.)와 “나는 창조주와 해방자와 보호자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세례를 줍니다.” (I baptize you in the name of the Creator, and of the Liberator, and of the Sustainer.)라는 양식으로 주어진 세례가 유효한가?
2. 이러한 양식으로 세례 받은 사람이 완전한 정식으로 다시 세례 받아야 하는가?
 
[답변]
제1 의문에 대하여: 아니다.
제2 의문에 대하여: 그렇다.

출처: Vatican News, 06 August 2020, 12:00, 번역 장주영

https://www.vaticannews.va/en/vatican-city/news/2020-08/cdf-baptisms-with-arbitrarily-modified-formulas-are-not-valid.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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