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뿌연 먼지가 인다.
세상이 분주하게 돌아간다.
덩달아 마음이 산란해진다.
복잡하게 얽힌 감정이 속에서 들끓는다.
땀을 뻘뻘 흘리며 쫓아다녀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야 사는 것 같다.
터지고 깨져도 엎어져 뒹굴며 엉키는데 이골이 났다.
망연자실,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까맣게 멀어져 간다.
모두가 떠난 자리와 몽땅 묻힌 기억을 아쉬워한다.
흔들던 손이 아래로 처진 팔 끝에 힘없이 매달린다.
먼지바람 일으키며 지나온 신작로가 흐릿하게 사라졌다.
야트막한 경사를 타고 이어지는 오솔길로 들어선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발걸음을 되는대로 옮겨간다.
땅만 보고 걷는 마음에 오만 생각이 스친다.
어제 일과 케케묵은 옛날 기억이 뒤엉킨다.
허전함과 알 수 없는 기대가 짝을 이뤄 솟구친다.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땀 때문이었다.
앉은 채 즐겼던 달콤한 오수의 행복을 끝낸다.
덥지 않았던 여름이 여기서 끊어질까 조바심치는 현실로 돌아온다.
본당의 쇄신에 관한 내용을 담은 훈령이 얼마 전에 반포되었다. 우리 신앙생활의 터전에 관한, 우리의 이야기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여러모로 생각하게 된 신앙공동체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교황청 성직자성은 지난 7월 20일 새 훈령을 발표했다. 이 훈령의 명칭은 「교회의 복음화 사명을 위한 본당 공동체의 사목적 회심」이다. 성직자성 장관 베냐미노 스텔라 추기경은 이를 본당 구조의 쇄신을 통해 시대상황에 맞는 선교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것이라는 취지의 설명을 했다. 이 훈령은 성소부족의 문제, 복음선포에 대한 평신도의 사명 등을 다루고 있다.
본당은 '집들 사이에 있는 집'
본당을 설명하는 말로 이 훈령은 시작된다. 본당은 하느님 백성 가운데 영원히 살아계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본당의 본질적 사명은 다름 아닌 복음화이다. 세계화, 디지털화된 세상은 그 안에 흩어져 있는 영역을 연결하는 방식을 바꾸어버렸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본당은 더 이상 단순한 지리적 공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실존적 공간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유연성'이 본당에도 필요해진 것이다. 교회가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신자들에게 봉사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맥락에 의한 것이었다.
선교사명의 쇄신
이 훈령은 본당 조직의 선교적 사명에 관한 쇄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쇄신은 자기 자신에 대한 방어논리나 경직성에서 벗어나, 영적 역동성과 사목적 변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본당이 하느님의 말씀선포와 성사적 삶을 통한 사랑의 증거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남의 문화’는 모든 사람에게 대화와 연대의 밑그림이 되어야 하고 모든 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의 촉진제가 되어야 한다. 이런 쇄신을 통해 본당공동체는 진정으로 '어우러져 사는 터전'으로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이 훈령은 본당이 사랑을 통한 믿음의 증거자가 되기를 촉구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관심을 가지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모든 신자들은 복음화의 능동적인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본당 차원에서 사목적 쇄신을 통하여 선교사명에 매진하기 위해서는 사고방식의 변화와 내적 쇄신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변화는 유연하고 점진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모든 쇄신의 목표가 상명하달식의 강요나 성직자 중심의 사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동체 각각의 실상에 맞게 진행되어야 한다.
교구의 조직과 기구의 역할
훈령의 2부는 앞부분에서 교구의 부서들에 관해 다룬다.
이 문제에 관해 훈령은 우선적으로 동일 지역에 사는 이들의 환경적 동일성과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인접성을 중요한 요소로 삼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를 위해 본당 간의 연합, 또는 통합과 분할에 관련된 특별한 조치에 관하여도 훈령은 언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본당의 상위 단위인 지구(감목대리구)와 개별 지구를 묶은 사목구의 역할에 대한 내용도 다루고 있다.
본당 공동체의 목자인 ‘본당신부’ (본당 사목구의 주임)
훈령은 본당 공동체의 사목적 위임에 관하여 통상적인 것과 예외적인 방법을 밝히고 있다.
가장 먼저 공동체의 사목책임자인 본당신부의 역할에 관해서 강조한다. 본당 사목구의 주임인 본당신부는 본당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지 반대로 섬김을 받는 사람이 아니다. 그의 임무에는 영혼을 돌보는 일에 전념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본당의 주임은 반드시 사제서품을 받아야 한다. 거기에 예외는 있을 수 없다.
본당 사목구의 주임은 본당 재산의 관리책임자이면서 교회법적으로 본당을 대표한다. 본당신부는 임기를 정해놓고 임명되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맡겨진 영혼들을 안정적으로 돌보기 위하여 공동체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훈령은 지역 주교회의의 개별법이 제정된 교구에서는 주교가 확정된 기간을 정해 본당 사목구 주임을 임명할 수 있지만, 5년 이하의 기간은 허용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본당신부는 만 75세가 넘으면 사목구 주임의 직무에서 사퇴할 것을 표명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를 가진다. 그의 임기는 교구장 주교가 사퇴를 수리하고 공식적으로 해임이나 전임의 발령을 내기까지는 유효하다. 모든 경우에 사퇴의 수리는 “정당하고 상응한 이유에” 근거해야 하며, 이로써 직무의 기능적 개념에 의한 사퇴 수리는 피해야 한다.
축성생활자들의 증거하는 삶과 평신도들의 헌신적 봉사의 사명
교황청 성직자성이 발표한 이 훈령은 본당 공동체 내의 축성생활자(수도자)들과 평신도들의 사명에 관한 내용도 다루고 있다.
축성생활자들의 존재 이유는 근본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증거자가 되는 것이다. 평신도는 교회의 복음화 활동에 참여하는 직분을 받은 사람들이다. 본당 공동체 안에서 봉사하는 사명을 부여받은 평신도들은 복음에 따라 살면서 일상 속에서 이웃을 위한 아낌없는 헌신을 통해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한다.
평신도는 고정적으로 제대 위의 봉사인 독서와 시종의 직무를 맡을 수 있다. 평신도에게 부여되는 이러한 직무는 소정의 양성과정과 합당한 예식을 거쳐야 한다. 이 직무를 받은 평신도는 가톨릭교회와 완전한 교감을 유지해야 하며 개인적으로는 다른 이들에게 모범이 되는 생활을 해야 한다.
평신도가 특별한 상황에서 수행할 수 있는 직무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반드시 주교의 ‘신중한 판단’에 따라 부여되어야 하는 이 특별한 직무에는 말씀전례와 장례예식 거행, 세례를 집전하고 혼배성사를 보조하는 등의 직무가 포함된다. 필요성이 인정되고 교황청의 허가가 있을 경우에는 성당이나 경당에서 강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미사 중에 강론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공동 책임을 가진 교회 조직들
훈령은 교회운영의 공동책임을 맡은 본당의 조직에 관해서도 언급한다. ‘재정위원회’는 주임신부의 자문기구로 세 명 이상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본당의 재산을 관리하는 것은 교회와 시민사회의 복음화를 위해서 중요한 분야이다. 또한 이를 통하여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교황청 성직자성은 교회의 재산이 본당 사목구 주임의 소유가 아니라 본당에 귀속되는 것임을 재확인한다. 본당 재정위원회는 공동책임과 투명한 운영의 문화를 기반으로 하여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을 돕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훈령은 자문기구인 ‘사목위원회’의 설치 필요성도 강조하고 있다. 사목위원회는 단순히 관료적 조직과 같은 것이 아니다. 복음화의 대상인 동시에 능동적 주체인 하느님 백성의 구심점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복음화의 사명은 세례와 견진을 통하여 모든 신자들이 선물로 받은 성령의 은사인 것이다.
사목위원회의 핵심 기능은 본당의 사목적 활동과 자선사업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는 교구의 사목지침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러한 계획이 실천에 옮겨지기 위해서는 주임신부의 승인이 필요하다.
봉헌예물은 성사의 대가가 아니다
훈령의 마지막 장은 성사 거행과 관련한 봉헌예물에 관해 이야기한다.
예물은 전적으로 봉헌자의 자유의사에 따른 봉헌행위이다. 마치 세금이나 요금처럼 강제로 부과되어서는 안 된다. 훈령은 사제들이 돈을 사용함에 있어 도덕적인 모범을 보여야한다고 말한다. 검소하게 살아야하며 투명하게 본당재산을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제들의 이런 모습을 보고 평신도들은 기꺼이 본당에 필요한 것을 내놓게 되고 결국 그것은 자기들의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관련문서
이번 훈령은, 앞서 반포된 두 훈령의 후속 성격을 지니므로 관련 내용을 참조할 수 있다.
▲1997년 교황청 성직자성, 평신도평의회, 신앙교리성, 경신성사성, 주교성, 인류복음화성, 수도회성, 교회법해석평의회가 공동으로 반포한 「평신도의 사제 교역 협력 문제에 관한 훈령」
▲2002년 교황청 성직자성이 반포한 「본당 공동체의 목자이며 인도자인 사제」
출처: Vatican News, 20 July 2020, 12:01, 번역 장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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