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는 떠나기 전 기분이고, 커피는 콩 갈 때의 향기다. 군사도로 미시령 밑엔 제법 큰 미군부대가 있었는데, 그곳은 우리 본당 공소 중 하나였다. 교중미사가 끝나면 복사하러 거기 가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신부님의 지프를 타는 재미를 놓칠 수 없었고, 미사 장소인 식당을 휘감는 코코아 냄새는 촌놈들이 절대 알 수 없는 특권층의 경험이었다. 도시락에 찐 우윳가루만 아는 혀가 처음 맛본 코코아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먹는 것이 아니었다. 슈호프는 수용소에 들어와서 그걸 절실히 느꼈다. 음식을 먹을 때는 그 진미를 생각하며 먹어야 좋은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이 조그마한 빵 조각을 먹듯이 먹어야 한다. 조금씩 입 안에 넣고 혀 끝으로 이리저리 굴리며 양쪽 볼에서 침이 흘러나오게 한다. 그렇게 하면 이 설익은 빵이 얼마나 향기로운지 모른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중에서)
솔제니친의 이 소설을 열심히 읽었다. 작품 속 배경이 내 공감을 끌어내기에 꼭 맞기도 했지만 상황을 묘사하는 현란한 글솜씨에 사로잡혔었다.
자세히 보면 교황님께서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말씀을 유난히 많이 하신다. 가난한 이들, 취약한 어린이와 여성들, 이민자들… 부활시기에도 교황님의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이반 데니소비치' 처럼 밥을 먹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지 생각해 본다. 교종 프란치스코, 그분 뜻의 한줄기 끝이라도 잡고 싶다.
며칠 지난 것이지만 성주간과 부활에 밀려 미뤄 두었던 기사를 싣는다. 아주 가끔 한국가톨릭교회의 소식을 Vatican News에서 볼 기회가 있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가 내린 낙태죄의 헌법불합치결정에 관한 기사다. '약자 중 약자'에 관한 문제이니, 당연히 교황님의 관심사다.
한국교회, 낙태죄 헌법불합치결정에 대한 유감
한국헌법재판소 4월 11일 66년 만에 대부분의 낙태에 대한 나이 제한을 완화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관련 법안을 2020년 말까지 개정하라고 명령했다. 이 헌법불합치결정은 최종적인 것으로 항소할 수 없지만 현재의 규정은 대체입법이 되거나 철회될 때까지는 효력을 가진다.
모든 생명은 언제나 지켜져야 한다
"국가는 어떤 상황에서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 할 책임이 있다. 잉태의 순간부터 모든 생명은 인간으로서 지켜져야 하고 인간으로서의 품위가 존중되어야 한다." 서울대교구장 염안드레아 추기경은 부활 메시지에서 가톨릭 교회는 낙태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토요일 저녁 「파스카성야미사」에서 낭독된 메시지에서 서울대교구장은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생명 경시" 풍조를 등에 업고 법원이 이런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여성단체와 의료단체가 판결을 환영했지만 신심단체와 종교단체를 포함한 반대자들은 실망과 후회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낙태는 1953년 이래로 한국에서 불법이었지만 규제를 위반한 것에 대한 유죄판결은 거의 없었다. 24주 이내의 임신이나 유전적 질병, 산모에 대한 심각한 위험 또는 강간에 의한 임신 등의 의료적 이유로 낙태가 허용되었다.
현행법에 따르면 여성은 불법적인 낙태로 최대 1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으며 의사는 불법으로 낙태수술을 할 경우 2년 형을 받을 수 있다.
죽음의 문화와 유혹에 대항하자
염추기경은 국회의원들에게 후속 입법 절차가 신중하게 이루어질 것을 촉구함과 동시에 천주교 신자들에게 죽음보다 생명을 먼저 선택할 것을 호소했다.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는 생명을 위해 확실하게 봉사하고 희생해야 합니다. 다양한 사회적 장애와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엄격하게 죽음의 문화와 유혹을 거절해야 합니다."라고 메시지를 통해 말하고 있다.
부활 메시지를 끝내면서 추기경은 "우리가 앞장서서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들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지금 여기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계시다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한국천주교회의 심각한 우려
4월 11일 별도의 성명을 발표하면서 「한국천주교주교회의」(CBCK)는 모든 인간의 생명을 지키고 낙태를 거부하고 출산을 결심한 여성과 부부들을 계속해서 지원하겠다고 다짐하면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주교들은 이번 결정이 수정되는 순간부터 태아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보호되어야 하고 그 존엄성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점과, 원치 않는 임신의 책임에 대하여 자신을 변호할 능력이 없는 존재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낙태가 자궁에서 무고한 인간의 생명을 죽이는 죄이며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재확인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낙태로 인한 정서적, 정신적, 육체적 상처로 고통받고 화해와 치유가 필요한 여성들에게 문호가 개방될 것이라고 밝혔다 .
출처: Vatican News, 18 April 2019, 10:43, By Robin Gomes / 번역 장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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