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자 거리엔, 업무 차 출장 온 직장인들을 위한 비즈네스 호텔들이 운집해 있다. 골목골목 비싸지 않은 선술집이 즐비하고 철길 밑 포장마차는 하루의 회포를 푸는 직장인들의 대화로 시끌벅적하다. 이웃나라지만 해외나들이가 쉽지 않았던 시절,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지는 젊은 새내기 직장인의 눈에, 일과 후 젊은이들의 삶은 우리네 그것과 다르지 않게 비쳐진다.
그곳의 새벽은 우리보다 훨씬 일찍 열린다. 50분 가까이 실재하는 시간차를 무시하고 같은 시간을 쓰기 때문이다. 지난 밤 흘려놓은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차의 소음 때문에 잠에서 깼다. 이미 동이 튼 거리에 엊저녁 가득 찼던 사람들의 자리를 차지한 무리가 눈에 든다. 까마귀들의 향연이 열리고 있다. 청소차가 대충 훑고 지나가는 이유를 해석한다.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도 흘린 음식을 먹고 사는 새를 보는 것이 이제는 어색하지 않다. 그 녀석들도 사람의 발걸음을 개의치 않는데 길들여져 있다. 늘 다니는 산책로에 오늘따라 유난히 까마귀들의 울음소리가 가득하다. 경사를 맞아 특별한 모임을 갖는지 모른다. 아니면 사람들이 넘겨주는 먹거리가 신통치 않아 대책을 숙의하는 것일 수도 있다.
코로나의 여파가 여러 갈래로 퍼져나간다. 지난 세대 동안 새롭게 튼 둥지를 리모델링하라는 제안서가 날아든다.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고통스런 삶에 대비하는 설계의 풍조가 확연히 드러난다. 수북이 쌓이는 전단지를 미뤄두고 돌아앉는다. 요즈음 부쩍 늘어난 의탁하는 마음이 이끌고 가는 곳을 향한다.
오랜만이다. 52번째로 감상하는 바티칸 미술품은 우리를 바라보시는 성모님의 눈길이다.
비탈 다 볼로냐, 성모님과 아기 예수, 바티칸 박물관, 미술관, © Musei Vaticani
당신의 고통과 시련을
동정 성모마리아께 맡겨 드리십시오.
기쁨과 위안까지도 의탁하고
어머니의 전구를 구하십시오.
어머니께서 자비로운 눈길로 고통 중에 있는 당신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외아들 예수님의 인자한 얼굴을 바라보며 살아가십시오.
이제와 영원히 그분의 품안에 머무르시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제24차 세계 병자의 날 담화, 2016)
출처: Vatican News, 번역 장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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