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하느라 시간가는 줄 모른다. 기억이 만나는 지점에서 모이면 세월을 뛰어넘어 그 시절로 자연스레 돌아간다. 예외 없이 모두 떠버리가 된다. 우리식 표현대로 같은 ‘고아원 살이’는 군대의 그것보다 훨씬 더 소재가 풍부하다. 지루하지 않고 진력이 나지도 않는다. 그 마음 안에 담겨있는, 우리를 맺어준 공동의 기억이 평생을 꺼내 나누는 사랑의 샘이 되었다.
눈부신 햇살 속의 기억보다는 은은한 달빛 기억이 내겐 더 소중하다. 어김없이 바다와 이어진 추억들이다. 그 둘의 합작품이 어린 마음에 열망의 파도를 일으켰다. 내일을 그리는 화판이 되고 미래를 꿈꾸는 희망의 길을 놓아주었다. 그 기억 속엔 은총이 가득하고 잊을 수 없는 사랑이 듬뿍 담겨있다.
‘먼동이 트듯 나타나신, 달과 같이 아름다운 분’의 마음을 그린다. 성모어머니와 ‘엄마’가 거기에 함께 계신다. 그 기억은 내 생명의 버팀목이다. 내 삶과 영원을 이어주는 다리이다. 남은 인생이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추억하며 살기에도 그리 길지 않다. 아낌없이 꺼내 부지런히 반추할 만큼 많은 기억들이 끊임없이 샘솟는다. 그것은 나이를 따라 늘어나는 특별한 은총이다.
전염병의 팬데믹 중에 맞은 성체성혈대축일 미사가, 우리시간으로 어제 오후 4시 45분부터 교황님 주례로 베드로 대성당에서 봉헌됐다. 조배와 강복을 위해 현시됐던 성체를 모신 성광의 모습이, 많이 남지 않은 기억의 한자리를 차지했다. 조촐한 잔치처럼 그렇게 거행된 미사의 강론이 Vatican News에 신속히 올라왔다. 한 주를 시작하는 마음에 ‘기억’의 의미를 진하게 새겨놓는다.
조배를 위해 현시된 성체
아련한 기억을 되살리는 성체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미사를 집전하며 성체성사가 우리의 기억을 되살려주고 기쁨을 전하는 사람으로 변화시킨다고 말했다. 교황은 베드로대성전의 중앙제단에서 대축일 미사를 봉헌했다. 약 50명의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참례한 이 미사는 성체조배로 이어졌고 마지막에는 성체강복이 거행되었다. 길고긴 이야기 속으로 우리를 끌어들이는 기억 교황은 강론을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수많은 선물을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억은 나무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흙과 같습니다. 우리에게 기억이 없다면 뿌리가 뽑힌 나무와 같을 것입니다. 스치는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과 같은 신세가 될 것입니다.”
“기억하는 것은 가장 강한 끈으로 우리 사이를 묶어주고 우리들의 이야기를 완성해 갑니다. 기억 속에서 우리는 길고긴 이야기의 주인공 중 하나가 됩니다. 우리의 기억은 개인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과 우리, 우리와 이웃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입니다.” “성경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와 주님과의 관계가 입과 입을 통해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게 하는 성사 “기억의 고리가 끊어졌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우리의 기억이 얼마나 짧을 수 있는지 하느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말과 징표를 기념하는 성사를 세우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먹을거리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맛본 것을 쉽게 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스스로 빵이 되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분의 향기를 머금은 그 빵은 진실로 살아있는 빵입니다.”
“성체성사는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실제적 사건입니다. 미사성제를 통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사건이 우리 앞에서 재현되는 것입니다.” 고아였을 적의 기억 교황은 성체성사를 통하여 우리의 약화된 기억이 치유된다는 것을 세 가지 관점에서 강조해서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의 성체와 성혈이 우리가 고아라고 생각했을 적의 기억을 치유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애정결핍과 실망의 쓰라린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들을 사랑해줄 것으로 믿었던 사람들이 고아가 된 것 같은 슬픔을 안겨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고통보다 훨씬 더 큰 사랑으로 우리에게 기억을 불어넣어 치유해주십니다.” “성체성사는 고아가 되었다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가져다주며, 그 사랑은 고아가 되어 입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해줍니다. 그리고 성령의 위로로 우리의 마음을 채워주십니다.” 부정적인 기억 “성체성사는 또한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와 오류로 인해 생겨난 부정적인 기억들을 치유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눈에 우리 하나하나가 모두 귀중한 존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두가 당신과 같은 식탁에서 음식을 나누기에 합당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너그럽기 때문만이 아니라 진정으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아름답고 선한 모습을 보시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성체 안에는 우리의 부정적인 기억에 대한 항체가 들어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슬픔의 병을 이겨낼 수 있는 면연력을 갖게 해줍니다.” 교황은 성체가 우리를 하느님의 전달자로 변화시킨다고 말한다. 기쁨을 전하는 사람이 되게 만든다는 뜻이다. 닫힌 기억 마지막으로 성체성사가 치유해주는 것은 우리의 닫혀있는 기억이다. 교황은 우리의 기억에 상처가 생기면 다른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의심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 결과 우리는 잘못된 자신감으로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두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 봉착하든 모두 다 해결할 수 있다는 오만한 희망에 사로잡히는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것이 환상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오직 사랑만이 뿌리에서부터 그 두려움을 치유할 수 있고, 우리를 가두는 이기심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부서지기 쉬운 무기력한 빵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 모습으로 우리 이기심의 껍질을 부수고 마음의 벽을 무너뜨리고 마비된 심장을 풀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친히 미천한 빵이 되심으로써 우리가 쓸모없는 것들에 생명을 낭비하지 말 것을 가르쳐주셨다고 말한다. “성체성사는 우리의 물질적 굶주림을 만족시키고 봉사하고자 하는 우리의 욕구를 불러일으킵니다.” 연대의 사슬 교황은 성체성사가 연대의 끈으로 모든 사람을 이어준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강론을 마무리했다. “예수님께서는 성체를 통하여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