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흑과 백을 구분하지 않는 하느님

MonteLuca12 2020. 6. 11. 20:21

그렇게 풀어주시는 섭리를 헤아리지 못했다. 바랐던 것에 덤까지 얹으셨다. 조바심치고 안달하는 애송이의 어리석음을 나무라지 않고 품어주신 분께 염치와 면목이 없을 따름이다.

 

불평등과 차별이 못마땅했다. 불만을 품고 투덜대기를 반복했다. 기도의 응답을 의심했고 믿음의 뿌리까지 흔들렸다. 막막하고 지루한 날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지나온 세월이 짧지 않다. 삶도 신앙도 무미건조한 마음 한구석에서 메말라가고 있었다.

 

때론 충격이 필요하다. 그것은 각성을 이끌어내는 특효약이다. 구름을 뚫고 전혀 딴판 같은 곳으로 솟구쳐 오르는 비행기처럼 사고의 지평을 뒤집는다. 그래도 꿈쩍하지 않는 인간의 뚝심(?) 같은 것을 본다. 뇌 속에 눌어붙어 결코 떨어져 나가지 않는 원초적 본성이다. 그토록 애달프게 사랑과 연대를 외쳐대는 와중에도 그것의 작용은 멈출 줄 모른다.

 

결코 모범적이라거나 평범하다고 말할 수 없는 한 흑인의 죽음이 던져주는 파장이 작지 않다. 선과 악을 가르는 기준이, 정의와 불의를 자리매김하는 권위가 혼란스럽다. 사건의 현장,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고메즈 대주교님의 강론을 통해 이 사건이 교회에 던지는 메시지를 듣는다.

 

매달리는 손을 절대로 뿌리치지 않으시는 분의 처분을 또다시 기다린다. “사랑의 샘 예수 성심 오늘날 우리 돌보시며 구원의 신비 그 사랑을 사무쳐 알게 하옵소서!” (성가 205번)

 

“플로이드를 잊지 말자!” - 인종차별에 대한 새로운 약속을 촉구
 
로스앤젤레스의 고메즈 대주교는 조지 플로이드의 장례식에 맞춰 미사를 봉헌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인종차별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갖도록 촉구한다.
 
로스앤젤레스 대교구의 교구장인 호세 H. 고메즈 (José H. Gomez) 대주교는 LA대성당에서 생중계된 미사 중에 조지 플로이드의 삶을 기억했다.

“플로이드의 죽음은 우리에게 슬픈 기억을 불러일으킵니다. 여전히 흑인들에 대한 불평등이 상존하는 현실상황과 제도 안에 깊숙이 스며있는 인종차별을 보면서 우리가 가야할 길이 요원하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LA대성당은 교구 내의 모든 본당들과 동시에 8분 46초 동안 종을 울렸다. 이는 조지 플로이드가 목이 눌린 채 엎어져있던 시간이다. 영원한 안식에 들게 된 그를 추모하기 위한 의미를 담은 것이다.
 
미국 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이기도 한 고메즈 대주교는, 5월 25일 경찰이 살해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영혼을 위해 기도했다. 대주교는 미국을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와 기회의 땅이 되도록 만드는데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 줄 것을 촉구했다.
 
화요일 휴스턴에서 거행된 플로이드의 장례식에 맞춰 거행된 미사에서 고메즈 대주교는 그의 죽음을 가슴아파하면서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 안 된다고 말했다.
 
미국 전역의 종교 지도자들과 종교단체들을 분노하게 만든 플로이드의 사망은 그들을 행동에 나서도록 만들었다. 그들은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다른 소수민족에 대한 인종차별과 각종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경찰의 개혁 노력을 촉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플로이드를 위해 기도하며,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구호 아래 진행되는 저항운동 중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미국의 주교를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인종차별과 차별적 대우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고메즈 대주교는 강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우리가 목적의식을 새롭게 가져야할 때입니다. 미국을 모든 사람에게 자유와 기회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다시 헌신해야 할 필요가 우리에게 생겼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흑인이나 백인을 구분하시지 않습니다. 세상사람 모두가 그분의 자녀일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피부의 색깔에 상관없이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이 진리를 우리 사회에 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과 가톨릭교회의 의무입니다.”
 
고메즈 대주교는 교구 공동체가 형제자매로서 같은 마음으로 함께 걸어 나가자고 촉구하면서 자녀들에게 희망을 주고 미담이 가득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자고 호소한다. “사랑과 배려의 공동체를 이루어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유대 속에서 살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대주교는 이런 말로 강론을 마무리한다. “미국을 건국한 선조들은 모든 인종과, 종교,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존엄하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꿈꾸었습니다. 미국 국민 모두는 그 꿈을 따라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출처: Vatican News, 10 June 2020, 12:57, 번역 장주영

https://www.vaticannews.va/en/church/news/2020-06/los-angeles-archbishop-gomez-floyd-mass-racism-united-state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