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이야기가 남의 것인 줄 알고 산다. 코앞에서 터지는 변고를 지뢰 피하듯 아슬아슬 빠져나가는 것이 곡예사의 삶을 닮았다. 언제까지 그렇게 견디어낼 수 있을지 불안은 끊이지 않는다.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미사가 다시 중지됐다. 우리 본당에 국한된 일이긴 하지만 지루한 바이러스의 그림자가 일렁이며 떠나가질 않는다. 방심의 잘못이 아니고 부주의를 탓할 일도 아니다. 살펴주고 배려하는 것은 오로지 인간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예쁜 짓일 뿐이다. 인정사정없이 돌아가는 세상의 일들이 도무지 곁을 내주지 않는다.
부활을 지내고 나서 열흘이나 지나 가까스로 참례한 거룩한 잔치가 성체와 성혈 대축일에 와서 막을 내린다. 잠시이기를 바라며 이방인처럼 다른 공동체에 더부살이할 채비를 한다. 다행히 교황님께서 신자들과 함께하는 성체성혈 대축일 미사를 사도좌 베드로 대성전에서 집전하신다는 소식이 전달됐다. 절묘하다. 이것도 섭리다. 성체성사의 신비를 새롭게 새기는 기회가 이렇게 찾아왔다.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6월 14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 있는 베드로사도좌에서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미사를 집전하고, 이어서 성체조배와 성체강복을 거행한다.
약 50명 정도의 제한된 신자들만 교황과 함께 참례하게 될 이 미사는 로마시간 주일 9시 45분(한국시간 오후 4시 45분)부터 바티칸 미디어를 통해 생중계될 예정이다.
교황 프란치스코와 성체성혈대축일
교황은 재작년 로마 외곽의 오스티아 산타 모니카 성당 앞 광장에서 축일 미사를 집전한데 이어, 작년에는 로마 카살 베르토네에 있는 ‘위로자이신 성모 마리아 성당’ 광장에서 미사를 집전한 바 있다.
교황 즉위 초기인 2013년부터 2017년까지는 라테라노의 성 요한 대성당에서 성체성혈 대축일 미사를 봉헌한 후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까지 성체거동을 했었다.
축일의 기원
성체성혈 축일의 기원은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코르닐롱山 수도원 출신의 성녀 율리아나로부터 시작됐다. 성녀의 제안을 받아들인 리에주의 주교는 1247년 교구의 축일로 성체성혈 대축일을 도입한다.
몇 년 후, 1263년에 이탈리아를 순례하던 한 보헤미아인 사제는 신비적 체험을 하게 된다. 성체 안에 예수님이 실재하시는지에 대한 의심에 시달리고 있던 이 사제가 볼세냐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중에 일어난 일이다. 축성하고 나서 조각낸 성체에서 몇 방울의 성혈이 흘러내린 것이다. 바로 이듬해인 1264년, 우르바노 4세 교황은 칙서 「이 세상에서 건너감」(Transiturus de hoc mund)을 통해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제정하고 온 교회가 지내는 축일로 확대하였다.
교회의 가르침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은 빵의 형상 안에 실재하시는 그리스도를 묵상하는 날이다. 거룩한 성사 안에 영광스럽게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축일이다. 그리스도의 실제적 현존에 대한 진실은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확인되었다. 1551년 트리엔트 공의회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관련 조항을 통해 성체성사에 관한 교리를 정립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가톨릭 신앙을 요약하여 선포한다. “우리 구세주 그리스도께서 빵의 형상으로 내어 주시는 것은 참으로 당신의 몸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하느님의 교회는 항상 이러한 확신을 지녀 왔으며 본 공의회는 이를 다시금 선포하는 바이다. 빵과 포도주의 축성으로써 빵의 실체 전체가 우리 주 그리스도의 몸의 실체로, 포도주의 실체 전체가 그리스도의 피의 실체로 변화한다. 가톨릭 교회는 이러한 변화를 적절하고도 정확하게 실체 변화(transsubstantiatio)라고 불러 왔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가톨릭교회 교리서, 1376)
출처: Vatican News, 08 June 2020, 17:35, 번역 장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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