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창조의 복음

MonteLuca12 2020. 5. 24. 08:32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세상이 바뀌고 내가 사는 모양도 바뀐다. 늘 그렇게 살아온 인생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간단하지 않은 변화를 느낀다. ‘국면 전환’이다.

 

‘시원섭섭하다’라는 표현이 꽤 괜찮다. 기도하고 매달리고 머리악을 쓰며 덤벼들어 밀어냈건만 결정의 순간이 다가오자 흘깃흘깃 뒤를 돌아본다. 아깝고 아쉽다. 섭섭하고 야속하다. 다 썩은 동아줄로만 여겼던 것이, 오라기 속에 질긴 고래심줄을 감추고 있었다. 미련한 자의 미련이 그렇게 유세를 떤다. 한 줌, 손에 쥔 것에 마음을 쓸어 담고 고개를 돌린다.

 

시간이 멈췄다가 더디게 제 길을 찾는다. 유난히 망설이는 여름을 걱정한다. 반갑지 않은 것을 기다릴 리가 없다. 매 맞을 순서를 세고 있는 두려움 같은 것일지 모른다. 달음질 출발선에서 숨통을 누르고 요동치는 심장의 저항 같은 것일 수 있다. 이제부터는 그 세상을 살아야 한다. 들여놓는 발이 살짝 흔들린다.

 

일강(River Ill)의 백조 (스트라스부르크)

"창조의 복음"이 회칙의 의미를 여는 열쇠
 
5년 전 5월 24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의 두 번째 회칙인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를 반포했다. 턱슨 추기경은 회칙에 붙여진 부제에 관하여 설명한다. 피조물을 돌보는 것과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와의 연관성,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가졌던 피조물에 대한 정신이 그 안에 담겼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피터 턱슨 추기경은 ‘찬미받으소서 주간’ 동안 '세계가톨릭기후운동‘이 후원하는 웹 세미나의 초청 연사다.

[역자 주] 교황은 지난 5월 17일 주일 부활 삼종기도에서 신자들에게 「찬미받으소서」 반포 5주년을 맞아, 회칙이 인준된 날로부터 이전 주간을 ‘찬미받으소서 주간’으로 지낸다며, 이 주간이 오는 5월 24일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처: 바티칸 뉴스, 2020년 5월 18일)

교황청 「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을 위한 부서」 장관인 피터 턱슨 추기경은 ‘창조의 신학’이라고 불리는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두 번째 장을 해설한다. 추기경은 “공동의 집을 돌보는 것에 관한”이라고 붙여진 이 회칙의 부제가 어디서 온 것인지, 피조물을 돌보는 것과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드리는 흠숭이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에 관해 설명한다.

턱슨 추기경은 마지막으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관점에서 피조물의 의미를 분석한다. 인간과 모든 피조물 사이에 맺어진 형제적 관계에 관한 해석이다.
 
창조의 복음
 
턱슨 추기경은 「찬미받으소서」 제2장을 해설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하는 ‘창조 복음’이 가지는 의미를 밝히다. 추기경은 복음의 문학적 장르가 가지고 있는 목적은 하느님의 위대한 역사(役事)를 선포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느님의 役事가 구세사에 담긴 이야기든, 현세적 삶의 인간행복에 관한 것이든 상관없이 그것은 언제나 ‘기쁜 소식’, 즉 ‘복음’이라고 말한다.
 
생태학의 그리스도교적 이해
 
“교황님은 복음의 관점에서 창조를 언급하심으로써 인류에게 편익을 제공하는 하느님의 위대한 창조 업적을 깨닫게 해줍니다. 이 깨달음이 회칙 전체를 이해하는데 실마리가 될 것입니다. 생태계를 보호하고 지구를 돌보는 일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것임을, 이 회칙은 전반에 걸쳐 일깨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회칙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하느님 창조사업의 계획과 목적이 인간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모든 피조물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었습니다.”
 
덧붙여 그리스도인에게 모든 피조물에서 하느님의 창조의도를 알아차리라고 권고한다.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집이 되도록 창조하셨다는 것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회칙의 부제가 “공동의 집을 돌보는 것에 관한”이라고 달린 이유라고 말한다.
 
예배와의 관계
 
“공동의 집을 돌보는 것은 피조물이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피조물을 하느님의 업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피조물이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흠숭하는 것에 적합한 상태인지를 생각해야 할 단계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를 인식하고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모든 것을 하느님께 드리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정원’에서 인간이 맡아야할 임무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히브리어로 사용된 단어 ‘정원’은 ‘봉사’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통해 인간이 하느님께 드리는 ‘봉사’라는 뜻으로도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창조하실 때 인간의 일로 맡겨주신 모든 것은 하느님을 흠숭하고 하느님께 봉사하는 방식을 나타내 줍니다.”

모든 인간의 행위가 궁극적으로 하느님을 흠숭하는 것과 연결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추기경은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추진하는 사업이나 지구를 사용하는 것이 하느님을 흠숭하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과 무관하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구는 현재와 미래의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
 
“창조가 하느님의 업적이라는 사실에서 우리가 찾아낼 수 있는 세 번째 요소는, 특정한 부류의 인간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피조물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간적 측면만이 아니라 시간에 관해서도 적용됩니다. 지금 우리가 필요에 따라 피조물을 잘 관리해야 하는 것과 똑같이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서도 공을 들여 돌봐야 합니다. 세대를 걸쳐 연결되는 연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조는 묵상으로 이어진다
 
“‘창조 복음’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만드신 묵상으로 연결시켜줍니다. 성인은 피조물을 자신만의 기도와 명상의 도구로 보았습니다. 또한 수도회의 형제들이 하느님을 흠숭하는 도구로 피조물을 이용하도록 권고했습니다.”
 
피조물은 하느님의 현존을 나타낸다
 
이런 식으로 프란치스코 성인은 지혜서에 탐닉하였고, 피조물이 하느님의 모습을 투영한다고 설파하신 바오로 사도의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말한다. 이어서 시편 19장을 인용한다.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창공은 그분 손의 솜씨를 알리네.” 피조물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에 관해 이야기해 주고 그분의 현존을 드러내 보여주는 능력을 지녔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고 결정적 내용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피조물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묵상하는 수단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피조물을 돌보는 것이 가지는 의미에 관해 많은 것을 가르쳐줍니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을 우리가 잘 관리하고 보존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줍니다.”
 
형제자매인 피조물
 
“성인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피조물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우리의 형제이고 자매입니다. ‘언니 햋님’이 있고 ‘어미인 땅’‘누나 달’이 있습니다. 그 분은 ‘친족’(kinship)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과 우리의 관계를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피조물과 우리는 '친족관계'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역자 주] 최민순 신부님 역, ‘태양의 찬가’에 사용된 단어와 표현을 인용하였음.
 
턱슨 추기경이 처음부터 주장한 것은 이것이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동산(정원)에 사람을 소개하셨을 때, 아담에게 주신 히브리어 명령문의 사전적 ​​의미는 “그것을 지켜라!”였다.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창세 2, 15) ‘돌보다’(care for it)라는 단어가 ‘지키다’(keep it)와 같은 뜻으로 쓰였다고 추기경은 말한다. “이 단어는 하느님께 반문하는 카인의 대답에 사용된 ‘keeper’와 같은 것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형제간의 관계는 인간과 피조물 사이의 관계를 반영합니다. 피조물은 우리의 친족입니다. 형제를 지켜주듯 돌보고 지켜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형제를 옹호하고 그들의 생명을 지켜줍니다. 우리는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보호합니다.”

출처: Vatican News, 22 May 2020, 17:46, 번역 장주영

https://www.vaticannews.va/en/church/news/2020-05/cardinal-turkson-laudato-si-gospel-of-creation.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