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페이스북’ 친구

MonteLuca12 2020. 4. 21. 17:08

‘문명의 이기’라는 칭호는 사뭇 진부한 느낌을 준다. 삶의 일부라고 하는 것도 매우 편협한 평가다. 우리의 정신과 몸이 거기에 흠뻑 빠졌다.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삶의 요소가 되어버렸다.

 

다양한 세상을 만들어내는 재주는 ‘호모 사피엔스’가 받은 특은이다. 시공의 제약을 거부한다. 현세와 내세를 넘나들고 무의식과 영적세계의 경계를 부숴버린다. 주로 정신세계의 영역에서 다루어지던 이야기가 평범한 일상을 점령해버렸다.

 

일컬어 ‘가상의 세계’는 실재(實在)하는 인간의 삶터로 바뀌었다. 어물어물하는 순간에 바이러스처럼 우리가 사는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눈 깜짝하는 순간에 우리의 머리를 타고 넘는다. 노소를 불문하고 거센 파도에 밀려 투우장 같은 싸움판에 끌려 나간다.

 

야누스의 얼굴과 같아 평가가 엇갈린다. 싫은 부분을 가리고, 친해지고 나면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 거리를 뛰어넘어 친구를 맺어주고, 사랑을 나누는 통로를 제공한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도 좋은 도구 노릇을 할 것이다.

 

가상의 공간에서 나누는 온정의 이야기가 예쁘다. 바티칸 뉴스 ‘삶의 이야기’ 섹션에 실린 파키스탄 청년의 호소를 듣는다.

 

아이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모습 (부활대축일)

가난한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기쁨

 

[Sr Bernadette Mary Reis, fsp 저]

 

파키스탄의 모바일 데이터 및 디지털 서비스 공급업체에서 판매사원으로 일하는 비키 유사프(Vicky Yousaf)는 3개월 전부터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이 일에서 큰 기쁨을 얻는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떤 교통을 겪을지 몰라 밤잠을 설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키 유사프는 가난한 아이들이 배를 곯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저는 이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밤이 되면 얼마 남지 않은 돈 때문에 낙담하게 됩니다. 가족들도 먹고 살아야하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좋은 일을 하시리라 믿습니다.”

 

‘페이스북’ 친구

 

어떤 이들은 페이스북이라는 가상공간에서 친구 맺기에 익숙해져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이곳은 서로가 만날 수 없는 사람들끼리도 친구가 될 수 있고 익명성도 확실하게 보장되는 가상의 세계이다. 교회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주 ‘가상교회’가 될 위험에 대한 염려를 표명한 바 있다.

 

문제는 가상으로 맺어진 우정이 실제적인 관계로 바뀔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빅터 유사프를 만났다. 우리는 지난 4월 5일에 페이스북에서 친구를 맺었다. 그는 메신저를 통해 절망적인 메시지를 보내왔다. “저의 메시지를 당신 나라의 정부와 주교님께 전해주십시오. 우리 모두는 당신과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일자리도 찾을 수 없고 먹을 것도 없습니다. 이런 저희들의 현실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형적으로 마음을 울리는 메시지였다. 바티칸 뉴스가 벌이고 있는 캠페인, 「난민의 여정에 함께 합시다(Share the Journey)」를 통해서도 누구나 가상의 친구가 될 수 있다.

 

비키의 부모와 동생

평범한 사람

 

빅터 유사프는 35세의 청년이다. 그는 파키스탄의 시알코트에 살고 있다. 그의 부모 수라이야(Suraiya)와 유사프 마시(Yousaf Masih)는 60세 동갑내기다. 빅터는 33살 된 윌슨과 서른 살의 캄란이라는 두 동생이 있다. 동생 중 한 명은 사립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면서 교회음악을 녹음하는 일을 한다. 그는 쟈론과 샤론이라는 두 아이를 두고 있는 가장이다.

 

“파키스탄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를 포함하여 대부분 가난하고 글을 모릅니다.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빅터는 정부가 운영하는 학교에 갔다. 그러나 그는 아이들을 사립학교에 보내 교육시키고 있다. 그의 부모는 빅터와 동생들을 기르면서 항상 착하게 살라고 당부했고 성경을 가르쳤다.

 

파키스탄의 모바일 데이터 및 디지털 서비스 공급업체인 텔레노(Telenor)에서 영업사원으로 근무하는 빅터는 월18,000 파키스탄 루피를 받는다. 미화로 약 110달라 정도 되는 액수다. 그 월급으로 그는 자신의 가족을 부양하고 아들을 교육시키고 있다.

 

하느님의 부르심

 

3개월 전, 빅터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느꼈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마련해 주라는 요청이었다. 먼저 가족들이 그를 돕기 시작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그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들은 매일 음식을 먹을 수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얼마나 더 그들을 도와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가족도 돌봐야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안 되는 돈을 들여 음식을 마련해서 가난한 아이들에게 먹여주는 일은 큰 기쁨입니다. 이들을 도울 수 있어 우리는 행복합니다. 그러나 돈이 부족합니다.”

 

아이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기 전에 기도하는 비키 형제

비키의 꿈

 

나는 지금 기자로서 육하원칙에 따라 질문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마지막으로 하는 질문은 빅터의 꿈에 관한 것이다. 그의 대답은 무엇일까? 빅터의 꿈은 인류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고 언젠가는 교회에서 일하는 것이다.

 

비키가 보내온 편지

만일 우리가?

 

“우리 각자 시간을 내어 페이스북을 통해 친구들을 사귀면 어떻겠습니까? 우리를 떼어놓는 수천 킬로미터의 거리는 우리를 하나로 묶는 신비 앞에서 녹아 버릴 겁니다. 비키! 당신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조만간 도움의 손길이 당신에게 답지하여 바오로사도께서 말씀하셨던 그 기쁨을 계속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 (사도 20, 35) 많은 사람들이 그 기쁨을 경험하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자기들에게 주신 선물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출처: Vatican News, 20 April 2020, 17:30, 번역 장주영

https://www.vaticannews.va/en/world/news/2020-04/vicky-yousaf-pakistan-feeding-poor-children-coronaviru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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